사고(accident)
2022년 어느 날.
다들 업무에 집중해 말소리 하나 없이 타자 치는 소리만 조용히 울리던 본사 사무실.
그날은 다소 흐리긴 했지만 모든 게 평소와 같은 그냥 평범한 날이었다.
그러던 중 조용한 적막을 깨고 전화 한 통화가 시끄럽게 울렸다.
아마 그 전화가 아니었다면 평소와 다름없이 시간은 조용하고 천천히 흘러 하루가 마감되었을 것이었다. 그날을 평범하지 않은 날로 변하게 만들어 버린 그 전화는 광업소에서 온 전화였다.
전화를 받은 안전 담당 직원에서부터 시작된 소란은 소속부서인 안전관리부서를 거쳐, 이내 본사 내 전체 사무실로 퍼졌다.
"무슨 일이에요?"
"그게.. 사람이 묻힌 것 같다."
자세한 사정을 물어보니 갱내의 한 작업장에서 갑작스레 죽탄*이 돌출되었고, 이후 그 작업장에 있던 사람들이 서둘러 대피를 했는데도 확인해 보니 사람 한 명이 보이지 않는단다.
"안 보이는 사람이 누구라는데요?"
"관리자가 안 보인대. 지금 다시 확인 중이야"
"관리자요? 현장에서 작업하는 작업원이 아니고요?"
알고 보니 작업장에 이상징후가 보이기 시작해 작업원은 이미 철수한 뒤였고, 작업장을 확인하고 안전조치를 결정하기 위해 관리자들이 작업장에 진입하던 중 일어난 일이었다.
"구조작업은요?"
"아직."
구조를 바로 하고 싶지만 한 번 쏟아진 죽탄은 잠잠해지기 전까지 손을 댈 수가 없다. 혹시 모르는 갑작스러운 추가 돌출이 생긴다면 구조하던 인력들도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속은 타들어가지만 발만 동동 구르며 기다리는 것 밖엔 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영겁 같은 시간이 지나고 기세가 잠잠해진 틈을 타 서둘러 시작된 구조작업. 하지만 기세가 조금 잠잠해졌을 뿐 죽탄은 계속해서 흘러나왔고, 구조 진행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밤을 새워 죽탄을 파내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사투에 사람들은 점점 지쳐만 갔고, 점차 지나는 시간에 처음에 그나마 갖고 있던 희망도 반비례해 사라져 갔다. 나도 구조 진행상황을 몇 번이나 확인했는지 모르겠다.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혹시 아직 발견 기미는 없는지.
결국 24시간으로도 모자라 30시간이 훌쩍 넘는 기나긴 시간이 지나서야 죽탄 속에 웅크린 채 발견이 되었다.
그분의 아버지도 광산에서 종사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광산에서 일하면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을 하셨던 것일까. 캄캄한 갱에서 밖으로 나온 아들의 모습을 한번 살펴보고는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하셨다고 한다.
내가 광업소에 출장을 갔을 때 그분과 같이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다. 한적한 식당의 동그란 테이블에 앉아 한 손에 든 고기집게로 고기를 내 앞에 놓아주며 웃으시던 모습, 같이 술잔을 부딪쳐 기울이던 모습이 기억난다. 같이 웃음 지으며 즐거운 자리였기 때문인지 그날의 기억은 더더욱 잊히지 않고 생생하게 남아 있게 되었고, 그렇기에 사고소식은 내 마음을 더더욱 아프게 했다.
그분과 같이 넘기던 술 잔을 평생 기억에서 잊지 못할 것 같다.
* 죽탄 : 지하수 등 수분이 섞여 슬러리(slurry)화 된 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