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버티고 있어 줄래요?(5)

불안장애의 연애기 5

by 류아민

자갈돌에 부딪혀 유리 깨지는 소리가 사방으로 퍼졌고 테이블 위에 있던 빈 초록색 병들은 날카로운 단면을 보이며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아이는 술병이 깨지는 소리와 남자의 욕설 섞인 고함소리에 놀라 땅으로 주저앉아 귀를 감쌌다. 곧이어 비명에 가까운 울음을 터트렸다. 여자는 플라스틱의 빨간색 의자를 옆으로 집어던지며 필사적으로 남자에게 맞섰다. 일어날 때 허벅지에 부딪힌 은색의 둥그런 테이블이 휘청이며 음식들이 바닥으로 우르르 쏟아졌다. 아이는 손으로 귀를 막은 채 깨진 소주병의 파편들이 있는 자갈돌 위로 몸을 웅크렸다. 아이의 부모로 보이는 그들은 그 누구도 아이의 안위를 살피지 않았다.


"아.... 아아..."


나와 그 아이는 닮아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귀를 막고 웅크리고 있는 게 전부였다. 큰 소리에 가게 사장님이 뛰어와 그 두 사람을 말리는 듯했다.


"아이고! 아이고! 여기서 왜 이러세요! 그만, 그만! 불도 있는데 애도 보고 있잖아요!"


사장님의 다급한 외침에도 그들은 그만 둘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마음에 안 들면 죽여! 죽이면 되잖아!"

"이게 그래도 따박따박 말대답이야! 이걸 확!!"


사람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남자가 머리 위로 손을 치켜든 모양이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온몸이 떨리고 기어서라도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온몸에 힘이 들어가 움직일 수 없었다. 이윽고 내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와의 두 번째 만남만에 큰 소리와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된 내 모습을 보이고야 말았다.


나는 예상하지 못한 큰 소음에 반응한다. 길을 건너다 오토바이나 스포츠카가 내는 굉음에 소스라치게 놀라 주저앉기도 하고 천둥이나 번개가 치는 날엔 다른 익숙한 소음을 일부로 만들어내 신경을 돌려야 안심이 된다. 누군가가 지르는 고함소리는 내 불안의 버튼이며 가까이서 생기는 폭력적인 상황에서는 아무런 사고도 못할 정도로 큰 불안이 나를 잠식한다.


어릴 때부터 이러진 않았다. 뛰어놀기 좋아하고 활발하고... 딱 그 나이 때 보이는 평범한 아이였다.

하지만, 분노하면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욕을 하고 물건을 집어던지며 폭발해버리는 엄마를 옆에서 말리고 또 말리면서 조금씩 마음의 병이 축척되었다. 그 결과 소리에 예민하고 관계에 예민하고 예상치 못한 소음에 공포를 느끼고 폭력적인 상황에 극도로 불안을 느끼는 내가 만들어졌다.


내 정신력이 강했다면, 내가 조금 더 이성적인 사람이었다면 내가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처음엔 이런 생각들로 내가 나를 공격하다 결국 우울증까지 겪었다. 여러 상담사를 거쳐 내가 낸 결론은,

난 나를 보호하지 못했다. 공포를 느끼는 극한의 상황을 어떻게든 껴안으려 했을 뿐 나를 지키지 못했다.

'내가 나를 보호하지 못하면 그 누구도 나를 보호하지 못한다.' 이 단순한 사실을 나 자신에게 적용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가 빨리 저 상황을 끝내고 다시 집게가 부딪치는 소리와 조개들이 익어가는 소리만 들리길 바랐다.


그때, 귀를 막고 있는 내 두 손위로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그 손은 무릎에 머리를 박고 있던 내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는 내 눈을 바라보면서 조용조용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내가 아민 씨 옆에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요."


신기하게도 그 말에 조금씩 안정감을 찾아갔다. 미친 듯이 뛰었던 심장박동이 서서히 낮아지고 불규칙하게 쉬었던 숨이 천천히 돌아왔다. 그는 자신의 의자를 내쪽으로 당겨 앉았고 난 그에게 바짝 붙어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내 손을 꽉 붙잡은 그는 나에게 어떠한 질문도 어떠한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저 괜찮다는 듯 안심하라는 듯 맞잡은 손을 다독일 뿐이었다. 가게 안에서의 일은 옆 가게 사장님도 와 그들을 쫓아내고 나서야 일단락이 되었다.


"음, 아민 씨 괜찮으면 우리 드라이브 갈래요?"


조개구이집을 나온 후 그가 망설이면서 꺼낸 말이었다. 이미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이제 두 번 본 게 다인 그 사람의 차를 타고 그가 정한 목적지로 간다는 건 또 다른 공포심이었다.


"아... 그게... 저..."

"친구나 부모님한테 제 차 번호판 찍어서 보내요."


그는 나를 차 앞으로 데려다줬고, 나는 그의 눈치를 보며 번호판을 찍어 가장 믿는 친구에게 전송했다.

[나, 그때 말한 그 사람이랑 데이트하는데 혹시 오늘 안으로 내가 연락 없으면 신고해줘]라는 메시지도 함께.

친구에게서 답장이 왔다. [미친년, 데이트나 잘하고 와]라고.


나는 친구의 반응에 피식 웃었다. 나는 길게 심호흡하고 그의 차 조수석 문을 열고 몸을 밀어 넣었다.

그의 차 안에서 시원한 향이 났다. 생각보다 차 안은 깨끗했고 뒷좌석에는 라이언 캐릭터의 담요와 목베개가 있었다. 단정하고 깔끔한 그의 모습처럼 차도 깔끔했다.


"오늘 세차하고 왔어요. 원래 데리러 가려고 했거든요. 그래도 이렇게 제 차에 타 줘서 고마워요. 아, 뒤에 있는 담요는 혹시 추우시면 덮으시고 목베개는 목 불편하시면 쓰세요."

"네, 고마워요. 라이언 좋아하시나 봐요?"

"아하하, 33살 먹은 남자 취향이 좀 그렇죠?"


멋쩍게 웃는 그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다. 아마도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나는 옅게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그럼, 출발할게요."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스멀스멀 기어들어오는 불안을 애써 내리누르며 나를 세뇌시켰다.

'괜찮다, 괜찮다. 나쁜 사람 아닐 거다. 내 선택을 믿자.'


"음, 혹시 가고 싶은 곳 있어요? 조개구이집은 제가 정했으니까 드라이브는 아민 씨가 아는 곳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는 문득 일하면서 답사로 갔었던 공원이 떠올랐다. 크고 넓어서 꼭 다시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아, 그럼 해운대에 있는 **공원으로 갈까요? 이전에 행사 준비 때문에 답사 갔던 곳인데 꽤 괜찮았거든요."


그는 알겠다며 네비에 주소를 찍었다. 그는 창문을 반쯤 열어주고는 말했다.


"조금만 가면 해수욕장이라서 밤바다가 예뻐요. 천천히 갈 테니까 구경해요."


그의 행동은 나를 계속 미소 짓게 했다. 힘든 일이 있거나 불안이 올라오면 밤하늘을 보거나 밖에 나가 산책을 한다고 했던 내 말을 기억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배려로 조용히 그리고 편안하게 공원에 도착할 때까지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역시 늦은 시간이라, 공원 주차장에는 차가 별로 없었다. 그는 입구와 가까운 곳에 주차를 했다.


"아 역시 좀 어둡네요. 아민 씨 괜찮아요?"

"네, 답사로 몇 번 와봐서 여기는 어두워도 저기 산책로엔 조명이 길 따라 켜져 있어서 괜찮아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자창 옆으로 나있는 입구로 걸어갔다. 나는 그의 한걸음 옆에서 천천히 걸었다.

입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양파 모양의 조형물이 있었다. 처음 봤을 땐 색색의 길쭉한 곡선 모양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었다.


"여기 처음 왔을 때 저 양파 모양의 조형물이 되게 예뻐서 선생님들하고 사진도 찍었어요. 바닷길 따라서 산책로 걷는데 여기만큼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곳도 없더라고요. 일 때문에 왔는데도 참 좋았어요."


나는 답사 때를 떠올리며 듣기 싫어할지도 모를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조잘거렸다. 그만큼 이곳은 나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고 그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조금 지루해 보였고 길 따라 노란 조명이 예쁘게 켜진 주변을 둘러보지 않은 채 땅만 쳐다보며 걸었다.


"여기 별론 가요?"


내 질문에 그는 흠칫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순간 조개구이집 안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 이 사람과의 인연도 오늘까지인 것 같아 힘이 빠졌다. 이제 나에게 그동안 즐거웠다며 작별의 인사를 건네겠지... 아쉬워졌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꽤 멀리 걸어왔던지라 다시 돌아가는 길이 막막하게 느껴졌다.


"아민 씨 우리 꽤 멀리 걸어온 것 같은데 다시 돌아갈까요? 사람도 이제 없는데..."

"그럴까요? 필중 씨는 여기 어떠셨어요? 너무 많이 걸어서 힘들었죠?"

"아니요, 괜찮아요. 여기 좋긴 한데 좀 걸었더니 발이 아파서, 하하!"


그는 살짝씩 다리를 절고 있었다.


"아, 혹시 평소에 어떤 신발 신어요?"

"사실 이런 신발은 1년에 한 번 신을까 말까에요. 보통은 스니커즈나 운동화를 신거든요. 아민 씨랑 데이트한다고 좀 꾸몄는데 역시 힘드네요. 다음번에 편하게 신고 다시 와요."


그의 직업을 생각하면 둥근 코의 에나멜 로퍼는 신을 일이 없을 것 같긴 했다. 계속 땅을 보고 걸었던 이유가 발이 불편해서였다니. 걷기 싫다 말도 못 하고 따라왔을 그를 생각하니 귀엽기도 했고 안심되기도 했다.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 다시 걸었다. 그는 최대한 괜찮은척했지만 고통이 느껴질 때마다 인상을 찡그리며 다리를 절었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해요. 발 아픈 줄도 모르고 걷자고 했네요."

"아니에요. 제가 먼저 드라이브 가자고 했는데요, 뭐. 이렇게 넓을 줄은 몰랐지만..."

"그렇죠. 제가 걷는 걸 좋아해서..."

"그래도 잘 됐어요. 차 안에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여기가 좋을 것 같긴 해요."


그는 가던 걸음을 멈췄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를 돌아봤고 그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가 두 번밖에 못 봤지만, 저는 확신이 들었어요. 아민 씨, 저랑 만날래요?"


그의 말대로 그는 확신에 찬 눈빛이었다. 흔들림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받아들일 준비도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고백에 나는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가 싫은 건 아니지만, 아니 오히려 편안하고 좋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를 남자로서 보고 있는지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내가 만든 경계선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고 나를 대하는 그의 조심스러움에 고맙다고 느끼고 있었을 뿐이었다.


"아... 저..."

"아마 아민 씨는 좀 당황스러우실 것 같아요. 전 SNS로 본 순간부터 좋았거든요. 그때는 얼굴만이었지만 만나보니 좋은 사람인 것 같아서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아직 모르겠어요. 다정하고 따뜻하신 분인 건 알겠지만..."

"음, 저는 보이는 게 전부인 사람이에요. 숨기고 척하고, 그런 건 잘 못해요. 아직 절 못 믿으시겠지만 행동으로 보여드릴게요. 그러니까 조금만 마음 열어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이 사람의 눈빛에 약한 것 같다. 처음 봤을 때 보여줬던 절실함도 그렇고 오늘도... 하지만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에게 미움받지 않을 자신이.


"SNS 통해서도 그렇고 아까도 보셨다시피 저 불안장애가 좀 있어요. 우울증도 있고요. 의심도 많고 잘 못 믿어요. 뭐든 다 확인해야 안심이 돼요. 그러다 보니 소유욕, 집착, 질투, 독점욕도 많아요. 한두 번은 웃으면서 넘어가겠죠. 그러다 그게 반복되면 지쳐요. 저도 연애해봐서 알아요. 좋았던 적이 없어요."

"그걸 다 안고 갈 수 있어서 고백하는 거예요. 아까 저도 처음엔 좀 놀랐어요. 인터넷으로 찾아보긴 했는데 실제로 그렇게까지 반응할 줄은 몰랐거든요. 그런데 그때도 든 생각이 지켜주고 싶다였어요. 무서워하지 않게 힘들어하지 않게 옆에서 지켜줄게요. 계속 의심하고 확인해요. 의심 들지 않게 믿을 수 있게 다 보여줄게요. 그러니까... 우리 만나봐요."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너무나 분명하고 단호한 고백이었다. 이렇게까지 나를 원했던 사람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의 고백은 울림이 컸다. 하지만 나는 바로 답할 수는 없었다. 한쪽 구석에서 스멀스멀 고개를 드는 의심이 지워지지 않았다. 앞서 말한 0.1%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럼...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언제까지 드리면 될까요?"

"이 길이 끝날 때까지요."



이전 04화거기, 버티고 있어 줄래요?(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