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하나가 되는 방법
웨딩홀 투어를 하고 근처 카페를 찾았다. 시간이 괜찮아 계약서를 작성했더라도 일정기간 내에는 취소를 할 수 있기에 조금 더 신중하기로 했다.
웨딩홀에서 그와 의견이 좀 달랐다. 나는 홀 투어 전부터 점찍어 둔 곳이 있었고, 그도 보면 좋아할 거라 확신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멀고 택일을 받았던 시간보다 1시간 후였던 탓에 그의 머릿속에서는 완전히 배제된 듯했다.
"오빠 나는 여기는 좀 그런데, 천고가 너무 낮아서 답답해."
"나는 여기가 좋아. 자기가 좋아하는 블랙홀이기도 하고 주황색 촛불들이 차분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잖아."
"내가 생각하는 곳은 한층에 탈의실이랑 웨딩홀, 폐백실, 뷔페가 다 있어서 하객분들 동선도 어렵지 않고 더군다나 홀이 하나라 시간 타임별로 뷔페를 이용할 수 있어서 하객이 섞이지 않아."
"여기도 동선 어려울 게 뭐 있어. 우리 홀 옆에 뷔페랑 폐백실 있고 아래층에 탈의실 있고 에스컬레이터 타고 올라오면 바로 우리 홀인데?"
"그러니까, 탈의실이 밑에 있잖아. 드레스샵에서 엄마들 메이크업받고 웨딩홀 와서 한복으로 갈아입으셔야 하는데 불편하지. 우리도 옷 갈아입어야 하고. 그리고 다른 홀과 뷔페 이용시간도 겹칠 텐데 식당 안이 넓은 것도 아니고 다 섞이잖아."
"섞이면 어때서 그래. 한복이 문제면 결혼식 전에 한복을 각 집에 갖다 드리자. 그러면 메이크업샵에서 갈아입고 바로 홀로 오시라 하면 되잖아. 우리야 결혼식 끝나고 갈아입는 건데 뭐 어때."
"엄마들 챙겨줄 사람이 없잖아 그럼. 내 수모님은 우리 짐이랑 나 챙기는 것도 힘드실 텐데? 어떻게 봐달라 그래."
"우리 쪽은 누나가 있고 자기 쪽은 오빠가 있잖아. 알아서 챙기겠지."
"그래도..."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등받이에 등을 탁, 붙였다. 순간 짜증이 올라왔다. 저 태도는 내가 답답하다는 그만의 제스처였고 나는 일찍부터 그걸 알고 있었다. 그는 컵 안에 든 커피를 스트로로 쭉 빨더니 다시 상체를 기울였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 자기가 원하는 홀은 여기보다 10분이나 더 걸리는 곳이야. 길이 막히면 그것보다 더 걸리겠지? 대관료는 20만 원 싸다고 해도 택일 시간에서 1시간이나 늦다고. 택일을 왜 받았는데 되도록 좋은 날, 좋은 시간에 하자고 받은 거 아냐?"
"그렇긴 한데, 그래도 나는 혼잡해서 욕먹는 거보다는 여유 있는 게 낫다고 봐."
"자기 지인 결혼식 때 봤잖아. 어차피 신랑 신부는 정신없어서 누가 내 손님인지 다 몰라. 방명록 보고 나중에 인사하면 된다고. 코로나라서 하객도 많이 못 와. 내 친구들도 이미 몇 명 못 온다고 했고. 자기도 친구 없어서 올 사람 없잖아. 그럼 대부분 다 부모님 손님들이야."
"그러니까 더 중요하지! 난 욕먹기 싫어. 되도록이면 완벽하게 하고 싶다고."
"자기야, 우리 결혼식이잖아. 결혼 준비 내내 욕먹기 싫다는 말만 하는데 완벽한 건 없어.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해도 어차피 욕먹게 되어 있어."
"뭐?"
"좋은 곳에서 하면 돈지랄한다고 욕할 거고 저렴한 곳에서 하면 이런대서 하냐 욕할 거야. 주차장은 어디든 욕할 거고 뷔페가 맛이 있든 없든 욕할 사람들은 욕 한다고. 그 사람들을 다 만족시킬 수 없어. 우리는 그냥 우리가 만족하는 결혼식을 하면 돼."
기운이 쫙 빠졌다. 구구절절 그가 하는 말이 맞다. 나도 지인 결혼식에 갔을 때 좋은 소리 한 기억이 없었다. 결혼 준비를 하는 동안 난 양가 어른들께 욕먹기 싫다는 생각만 했다. 내 결혼식인데도 나는 배제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결혼식이 하기 싫었다. 형식적인 의례보단 적은 돈으로 살림살이를 야무지게 꾸리는 게 더 중요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뿌린 만큼 거둬들여야 하는 부모님들은 결혼식은 무조건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여러 번 결혼식은 하기 싫다는 의사를 내비쳤지만, 부모님들은 완강했다.
"하아... 진짜 너무 힘들다. 일도 바쁜 기간이라 매일 야근에 집에 와서도 새벽까지 일하는데, 주말에는 결혼 준비한다고 쉬지도 못하고 양가 어른들은 본인들 욕심대로 압박하고. 이게 우릴 위한 결혼인 거야?"
"자기 힘든 거 알아. 겉으로는 우리를 위한 행사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부모님들을 위한 행사라고 하잖아. 내 자식 이렇게 장성하게 키워서 결혼시킨다고 자랑하는 자리라고 생각하자."
"하... 알았어..."
나는 수첩 한가득 쓰인 비교분석표를 뒤적거렸다. 이것도 직업정신이라면 직업정신인지 담당자가 했던 말의 대부분을 기록했다. 택일, 거리, 대관료, 뷔페, 수용인원, 주차 등을 살펴보니 그가 말한 홀이 적당했다.
"자기야, 식을 하기만 하면 돼. 부모님들이 축의금 거둬들이는 게 목적인 거니까 무사히 식만 끝내자는 마음으로 준비하자."
"그래도 이왕 하는 거..."
"그만. 이왕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우리 너무 스트레스받아서 안돼."
뭐든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나를 그는 늘 이렇게 컨트롤했다. 그가 없었다면 난 또 지하로, 더 깊은 지하로 땅굴을 파서 숨었을 것이다. 어쩌면 결혼식을 엎었을지도 모른다.
"알았어. 그럼 그냥 홀은 오빠가 좋은 곳으로 하자. 스드메는 다 내가 좋은 걸로 했으니까."
"응. 홀 때문에 부모님들이 뭐라고 하면 내가 다 정했다고 하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
"응. 뭐라 하시면 다 오빠가 정했다고 할 거야."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웃었다. 뾰로통에 있는 내 볼을 꼬집었다. 그렇게 또 풀린다.
그래도 부모님들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나에게 뭐라 하셨다.
'남자가 뭘 알아. 그런 건 여자가 알아서 해야지.'
'하나부터 열까지 꼭 같이 해야 하니?'
'걔가 생각 없이 굴면 너라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한복이 참... 이런 것밖에는 없니?'
'할 거면 좀 좋은대서 하지 보는 눈들이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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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준비했지만 역시나 욕은 들었다. 난 멘털을 잡기 위해 그 모든 말을 다 그에게 한 것으로 생각했다.
우습지만 조금은 효과가 있었다. 적어도 결혼 준비하면서 양가 때문에 울지는 않았으니까.
'남자는 생각이 짧다.', '이런 건 여자가 해야 한다.', '남자가 무슨 결혼 준비에 신경을 쓰냐, 여자가 알아서 하는 거지' 이런 편견부터 버렸으면 좋겠다. 부모님들의 그런 말들이 결혼에 대한, 결혼 생활에 대한 책임감을 경감시킨다.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하게 그와 함께 준비했다. 혼자 나가는 법이 없었고 뭐든 그와 공유했다.
필요하면 평일에도 만나 논의를 했고 주말에는 거의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그도 그런 나에게 불평 한번 없이 맞췄다. 대신 너무 피곤한 날에는 미리 말해 서로에게 휴일을 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TV 드라마에 단골 대사로 나오던 '결혼 준비 나 혼자 해?'라는 말은 할 필요가 없었고 부모님들의 불평불만도 서서히 줄었다.
예약을 확인하고 업체와 협의가 필요한 건 거의 그가 도맡아 했다.
나는 MR과 청첩장, 식전영상 제작, 그 외 문서화하거나 물건을 구매하는 등 사람을 대면하지 않는 것들은 플래너와 논의해서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우리의 결혼식을 준비할 수 있었다.
결혼식장으로 걸어 들어가기까지 느낀 건, 남자도 다 할 줄 안다는 것이다. 꼼꼼한 사람은 더 잘하겠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고 귀찮아 미루지만 않으면 크게 싸울 일이 없다.
아, 한 가지 덧붙이자면 말 안 해도 알아주길 바라지 말자. 딱, 봐도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서로가 원하는 부분을 정확히 말해줘야 이해하고 움직인다.
이건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대신 말을 예쁘게 하자. 결혼 준비에 스트레스받는 건 너나 나나 똑같다.
가구와 혼수도 그와 함께 골랐다. 숫자 계산이 느린 나는 몇 시간을 공들여야 하는 일을 그는 단시간에 끝냈다. 문과와 이과의 차이인 것 같다. 내 나름대로 필요한 혼수목록과 예산을 정해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인터넷가와 매장가를 비교해서 매장에 방문했을 때 최소한의 지출을 위해 담당자와 협의했다.
난 그 옆에서 실시간으로 비교할 수 있는 기능적인 부분을 질문하면서 구매할 제품을 정했다.
생각해보면 그와 나는 서로가 더 많이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체력적으로 힘든 일을 하는 그, 정신적으로 힘든 일은 하는 나.
누구 하나 더 편하려고 핑계 대며 서로 미루지 않았다. 배려할 수 있는 부분은 배려했고 서로 고마워했다.
그게 우리가 싸우지 않고 결혼 준비를 마칠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입 모아 이야기했다. 혹 재혼을 한다 하더라도 결혼식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