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글을 쓰게 된 이유가 뭐였더라.
누구나 그렇듯 처음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아마 초등학생 때 억지로 시킨 일기 쓰기가 아니었을까 한다.
담임선생님이 매일 검사하시는 통에 의미 없는 말이라도 적어가야 했다. 시간이 꽤 지나 펼쳐 봤을 땐, 그땐 참 일기 쓰기를 싫어했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그 시절의 의미 없이 남긴 막 쓰인 문장이 어른이 된 지금의 나에겐 큰 의미로 다가왔다.
스스로 글을 적기 시작한 건 중학생이던 무렵, 남몰래 맞이한 사춘기 때였다. 소심하고 겁도 많고 미움받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었던 나는 하루의 눈물을 모아 책상 앞에서 쏟아냈다. 처음엔 해소가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전부 해소되지는 않았는지, 미처 들어내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가 켜켜이 쌓여 조금만 모여도 쉽게 범람했다. 그때 처음 펜을 잡았다. 삼켜지지 않는 굵은 눈물을 검은 줄이 빼곡한 노트에 투둑 흘리며 아무 말이나 아무렇게 휘갈겼다. 흐려지는 눈앞에 검은 줄도 무시한 채 온갖 지저분한 감정들을 풀어냈다.
그러고 나면 신기하게도 후련해졌다. 다시 하루를 시작할 빈 통이 생겨났다.
그렇게 노트는 나를 담아내는 도구가 되었고 어느새 내 꿈이 되어있었다.
점점 검기만 한 노트가 다채로운 색으로 칠해졌다.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땐 노란빛을 띠기도 했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땐 분홍빛이 돌기도 했다. 어렸을 때 귀찮기만 했던 일기를 이젠 스스로 쓰기 시작했다.
그러한 시간들이 모여 떼려야 뗄 수 없는 습관이 되었다. 비록 구성없이 생각나는 대로 써 내려가는 건 똑같지만,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해 주는 추억의 공간이 되었다.
처음 내 글을 외부로 보낸 건 한 달에 한 번 신간을 발행하는 월간 '좋은 생각'이었다. 대학생 때 나간 실습지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솔직하고 자유롭게 풀어냈다. 그 결과 특집호의 한 페이지를 차지했다. 다수의 사람들이 보는 책에 내 이름으로 된 글이 실렸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내가 쓴 글이지만 읽고 또 읽었다. 아쉬운 부분들이 보이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나의 발전 가능성을 믿게 되었다. 그 뒤로도 괜찮은 글감이 생각나면 수시로 작성해 응모했지만, 안타깝게도 번번이 떨어졌다. 그래도 집으로 발송되는 그 달의 월간지를 무료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우연히 근로복지공단과 KBS 한국방송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근로자문화예술제 작품 접수 공지를 보았다. 퇴사 후였던지라 근로자가 아니면 안 될 줄 알았는데, 퇴사 후 6개월 이내인자도 접수할 수 있다는 말에 눈이 반짝였다. 실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노트북 앞에 앉아 골똘히 생각했다.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 할지 막막했다. 굳어버린 머리와 빛을 잃은 감성으로 한 글자도 입력하지 못하고 커서가 깜박이는 빈 화면에 마침표만 찍어댔다.
문득 창밖을 보았다. 커다란 베란다 창에 한줄기의 빗방울이 살갑게 흘러내렸다. 조금씩 메마른 땅과 반투명한 창을 적시고 있었다. 아, 그 얘기를 적어봐야겠다. 비만 오면 생각나는 그날의 이야기를.
주제가 정해지니 빈 화면을 채우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때의 일을 기억하며 한 문장 한 문장 적어 내려가는 게 신나고 즐거웠다. 슬프기도 했고 행복하기도 했던 그때 그 시간. 어느새 정해진 분량을 훌쩍 넘겼고, 조금씩 비문들을 정리하며 수정해나갔다. 마지막 문장을 수정하고 마침표를 찍었을 땐 입술이 씰룩거렸다.
이 기분 마치 신라.
1차 심사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마 통과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해서였던 것 같다.
TV를 보며 시시덕거리고 있을 때 문자가 왔다. 대부분 광고나 필요 없는 문자들이라 넘겼는데 그때는 무슨 심정이었는지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열어 문자를 확인했다. 내 눈에는 '근로자문학제 1차 심사 통과 안내'라는 문구가 확, 들어왔다. 읽고 또 읽었다. 뭐? 내가 1차를 통과했다고? 믿기지 않았다.
곧바로 홈페이지로 들어가 1차 심사 통과자 명단을 확인했다. 수필 부문에 내 이름이 있었다. 닭살이 오르는 기분에 캡처를 해 남편에게 보냈다. 글 쓴다는 내 말에 은근 콧방귀를 뀌었던 게 생각났다.
2차 심사를 위해 서류를 제출해야 했다. 6개월 이내 퇴사자라는 자격을 증명해야 해서 이전 직장에 경력증명서를 요청했다. 퇴사 후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기분 좋게 받을 수 있었다. 꼭 수상하기 바란다는 말도 덧붙여서 말이다. 수상하면 좋겠지만,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제라 글을 좋아하고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참가했을 테니까. 1차 통과만 하더라도 나의 가능성은 충분히 증명되었다.
2차 심사서류 제출 후엔 결과 발표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아니, 1차 때완 달리 결과 발표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기에 길다고 느껴진 것 같았다. 오전부터 홈페이지에 접속해 대기했다.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새로고침을 눌러가며 공지사항을 확인했다. 내 이름이 없더라도 괜찮지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오후 3시가 넘어서 공지사항에 '최종 수상자 발표' 게시글이 떴다. 나는 곧장 클릭해 들어갔다.
역시, 수필 부문 수상자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다. 기운이 빠지긴 했지만 수상하신 분들의 글들이 궁금해졌다. 홈페이지에 수상작품이 게시되면 꼭 다운로드해 읽어봐야겠다. 전문심사위원이 평가한 글을 읽다 보면 내 글도 지금보다 한층 성숙해지지 않을까.
남편에게 떨어졌다는 말을 했다. 살짝 내 눈치를 보는 듯했지만 내 표정이 밝으니 그도 아무렇지 않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는 퇴사한 지 6개월이 지나 언제 또 문학제에 참여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또 다른 기회가 온다면 주저 없이 참여해볼 생각이다. 내가 쓴 글을 나 혼자만의 글 서랍에 넣어놓는 것도 좋지만, 밖으로 드러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공유한다면 이보다 더 멋지고 가치 있는 일이 어디 있을까.
물론,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는 건 여전히 무섭고 두렵다. 특히 노래방에서조차 점수 제거를 필수로 해놓을 정도로 비판과 비난에 약한 나로선 정말로 마음이 고된 일이다. 그래도, 밖으로 꺼내놓으니 문학제 1차 통과라는 값진 경험도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한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문학제든 공모전이든 참가할 생각이다. 부족하고 비문이 가득한 글이라도 꾸준히 쓰다 보면 생각지도 못하게 필력도 올라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때는 수정하는데 시간이 좀 덜 걸릴까...
오늘도 수정만 한 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