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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ul 16. 2016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매트릭스에서 우리는 흔들려요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사랑에 빠진 파키스탄 청년,

이슬람 얘기하다가 문득 생각 난 책.. 옛날 리뷰.


나는 당신이 너무 뻔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엘리트 교육을 받고 뉴요커로 살던 파키스탄 출신 청년이 9.11 이후 차별과 박해, 전쟁의 겁박 속에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 이렇게 풀어놓으면 별로 궁금할 것이 없잖아요. 어떤 이는 그래서 당신이 그런 예단을 피하기 위해 연애소설로 포장했다고도 했죠. 맞아요. 미국 상류층 아가씨 에리카와 당신의 이야기는 충분히 드라마틱 해요. 더구나 당신은 이미 세상을 떠난 에리카의 사랑 크리스와 결코 이길 수 없는 삼각관계에 빠져버렸으니 더 막막하죠. 그래서 정치소설과 연애소설을 적당히, 그러나 꽤 솜씨 있게 버무렸다는 편견이 있었어요. 인정해요.

그럼에도, 나는 당신의 이야기에 푹 빠져버렸어요. 당신은 이야기를 느리게, 지루하게 하는 이야기꾼이 아니더라구요. 그리고 솔직하게 진정성으로 승부하더군요. 제 스타일 입니다. 더구나 당신이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 라호르의 어느 식당에서, 100kg 역기를 규칙적으로 너끈하게 들어 올리는 남자의 가슴을 가진 전형적 미국인을 만나셨더군요. 어쩐지 곧 당신을 때려 눕히든가, 혹은 당신 친구들과 한 판 벌릴 것만 같은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이런 긴장도 당신이 의도했겠죠. 제가 눈도 못 떼고 끝까지 당신을 지켜볼 걸 알았던 거죠?

당신은 쉽지 않은 이야기를 참 담담하게 풀어 내더군요. 프린스턴 대학에서 B조차 받아본 일 없는 엘리트로서의 자부심, 그 중에서도 선택받은 이들만 들어간다는 초봉 8만 달러의 최고 직장의 최고 신입 답지 않은 초조함과 불안감, 이방인의 ‘느낌적 느낌’들.
 
나는 비교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뉴욕이 라호르보다 더 부유한 것을 받아들이는 건 그래도 괜찮았지만, 마닐라도 그렇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건 힘들었어요. 나는 내가 장거리 선수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깨 너머로 흘깃 보고, 자기보다 앞서 가는 친구가 선두가 아니라 뒤처진 이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진 자신이 그다지 형편없지 않다고 생각하는 장거리 선수 말이죠. 어쩌면 바로 그런 이유에서 나는 마닐라에서 내가 전에 하지 않던 행동을 했는지도 몰라요. 품위가 허락하는 한, 더 미국인처럼 행동하고 또 말하려 했던 거죠. (60쪽)

내가 변했던 거죠. 나는 외국인의 눈으로 주변을 보고 있었어요. 단순히 외국인이 아니라 비정하고 으스대는 미국인의 눈으로 말이죠. 내가 당신네 나라 엘리트의 강의실과 직장에서 만났을 때 나를 화나게 했던 미국인의 눈으로 말이죠. (112쪽)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미국인을 충격에 빠뜨리게 했던 고백도 대담했어요. 사실 9.11 사태 빌딩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TV로 목격하는 순간, “그 때 나는 미소를 지었어요. 그래요. 혐오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의 첫 반응은 놀랍게도 즐거움이었어요”라고 고백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요. 그런데 나도 그날 밤을 기억해요. 마침 국제부 기자였는데,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장면을 보면서, 그 불쌍한 목숨들에 대한 고통스러운 공감, 잔혹한 테러에 대한 분노 뿐 아니라, 미국의 ‘자업자득’이란 느낌이 함께 들었어요. 더구나 이를 빌미로 미국 내 극보수 매파들이 힘을 얻고, 국제 정세가 혼란에 빠지겠구나 싶어서 머리털이 서는 기분도 들었어요. 국제 정세에 나름 예민하던 시기였거든요. 아, 마침 옆지기가 워싱턴 체류중이었던 때라 안부도 몹시 걱정되던 그 밤의 기억들이라니.

하지만 나는 비사회적 인격장애자는 아니에요. 내 말 믿으세요.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무관심하지도 않아요…하지만 그 순간, 나는 그 공격의 희생자들을 생각한 게 아니에요. ..나는 그 모든 것의 상징성에 빠져들었던 거죠. 누군가가 그렇게 가시적으로 미국의 무릎을 꿇렸다는 사실에 그랬던 거죠. 아, 내가 당신을 더 불쾌하게 하는 모양이군요. 물론 이해합니다. 자기 나라의 불행에 다른 사람이 흡족해하는 걸 보는 건 가증스러운 일이지요. 하지만 당신도 그런 감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할 거예요. 당신은 미국 무기가 적의 건축물을 폐허로 만들어 버리는, 최근에 상당히 유행하는 비디오클립을 보면 즐겁지 않나요? (67쪽)
 
개인으로서 당신 삶은 완벽할 뻔 했죠. 파키스탄에 남은 가족들에게 절실한 돈을 송금해주면서, 엘리트 뉴요커로서 경쟁력 충분했죠. 9.11 이후, 그 싸늘한 미국의 반응, 혹은 그 이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습, 인도-파키스탄 분쟁에 대한 제국의 냉정한 태도, 이라크 전쟁까지 이어지는 이슬람 죽이기. 이런 정세가 개별 개인 하나 하나 흔들 만큼 대단했던 것일 뿐. 매트릭스 같은 거여요. 빨간 약이냐, 파란 약이냐. 한쪽 눈을 감는다면, 충분히 잘 살 수 있어요. 대개 그래요. 당신은 좀 예민했을 뿐이여요. 아, 이쯤에서 에리카의 대사가 떠올라요. “당신은 결코 무례하지 않아요. 나는 이따금 예민한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관심이 있다는 말이니까요” 라고.

타의에 의했지만, 세포가 살아나기 시작한, 예민한 당신에게는 어려웠을 겁니다. 이해해요. 첨단 무기로 무장한 미국과 장비도 먹을 것도 변변치 않은 아프간 부족민들의 싸움을 스포츠 경기처럼 중계하는 미국이 천박하고 무서웠을 겁니다. 또 “오스만 제국에 사로잡혀 당시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였던 이슬람 군대에서 군사 훈련을 받은 기독교 소년들. 사나웠고 대단히 충성스러웠죠. 그들은 그들 자신의 문명을 없애려고 싸웠죠. 그들에겐 돌아설 곳이 달리 없었어요” 라고 설명되는 예니체리. 그 역사가 남의 일 같지 않았겠죠. 맞아요. 우리 시대에 저런 예니체리는 드물지 않아요. 원래 살아남으려면 부역자가 되고, 더 잔혹하게, 더 성공하는 법이죠. 님은 그저 월스트리트가 무대였던 엘리트지만, 다르지 않았죠.

사실 나는 시사 쪽 관심이 많아서 당신 이야기를 정치소설로 받아들일 줄 짐작했어요. 그런데 실제 읽을 때는 연애소설로 더 많이 읽었어요. 그럼에도, 막상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니 어느새 다시 국제 정세 속에 미아가 되어버린 당신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하네요. 제가 건조한 탓이겠죠?  “퇴짜를 당한 연인이 느끼는 분노와 상처 받은 허영심”을 고백하며, 스스로 "고상하지 않았다"고 토로하던 이야기며, “분별없긴 하지만 어떤 희망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며 사랑을 곱씹는 당신도 좋았는데. 당신의 사랑 이야기는 극적 설정들에도 불구하고, 디테일이 살아 있어서 듣는 재미가 쏠쏠했어요. 원래 남의 남녀상열지사가 가장 재미있는 법이잖아요. 에리카는 정말 좋은 여자였던 것 같아요. 사랑이 삶을 뒤흔들어 버릴 만큼, 강력했다면, 일단 인생 잘 산 거 아닌가요? 님은 사로잡혔고 매혹됐고 흔들렸고 힘들었잖아요. 다 의미 있는 기억들이어요. 좋은 이야기 들려주어서 고마워요.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를 풀어 낸 모신 하미드 작가님. 파키스탄 출신으로 프린스턴에서 토니 모리슨과 조이스 캐럴 오츠에게 창작을 배웠고, 하버드 로스쿨 졸업 이후 월가에서 컨설턴트로 일했고, 그러면서 책도 쓰기 시작해 첫 책으로 대성공. 두번째 책인 이 책은 열광적 반응 속에 베니스 영화제 개막작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구요. 무엇보다 컨설턴트는 관두고, 파키스탄과 런던, 뉴욕, 이탈리아, 그리스 등에서 살며 글을 쓰는 삶이라니. 이건 좀 너무 하잖아요. 이보다 더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사실, 미국인들은 9.11 에 너무 예민해요. 그러니 이 책의 성공은 사실 작용에 대한 반작용처럼, 9.11로 인한 주변부 이야기로서 과도한 평단의 관심을 얻은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래도 미국인들이 그렇죠 뭐, 라고 냉소하지 않으려고 하는데요. 당신의 글이 만들어갈 또다른 변화, 깨달음 같은 것을 지지하기 때문입니다. 멋진 소설이었어요. 잘났어요. 정말.
 
(2013)


사진은 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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