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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Aug 21. 2016

<낮의 목욕탕과 술> 산뜻하게 낮 술,  인생 별거있나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았을 때 마시는 술은 달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밤보다는 몸이 팔팔하기 때문이겠지. 
몸도 마음도 원하는, 말하자면 승리의 나발을 부는 술이다.
사람들이 한창 일하는 시간에 마시니 어쩐지 겸연쩍기도 한데, 그런 느낌이 술을 더 맛있게 한다. 
아직 할 일이 남았건만 그걸 무시하고 밝은 햇살 아래서 당당히 마셔버리는, 나더러 뭘 어쩌란 말이냐는 식의 통쾌한 기분도 술맛을 돋운다. 
마셔도 아직 '오늘'이 남아 있다는 시간적 여유로움도 술맛을 풍성하게 한다. 
말 그대로 밝은 술이다. 마시고 싶으니까 마신다. 그러니 취기도 명쾌하다. 기분 좋다. 
한낮의 술은 어디를 어떻게 뜯어보아도 최고다. 


낮술 예찬. 그것도 구스미 마사유키다. 이 분 이름은 낮설지만, <고독한 미식가>의 작가다. "그냥 아저씨가 낯선 거리의 식당에 들어가서 밥 한 끼 먹고 나온다"는 이야기로 사람을 미치게 만든 분이다. 정말 밥 먹는게 전부인데, 넋 놓고 몇 편을 잇따라 보기도 했다. 바빠서 시즌2 정도 보다가 말았는데, 벌써 시즌5가 나왔구나. 


바로 그 분이 쓴 에세이다. 

"천창에서 밝은 햇살이 비스듬히 비쳐들고, 그 사이로 김이 무럭무럭 피어난다. 커다란 탕안에서 몸을 쭉 뻗으면 마음까지 쓰윽 열린다"며 한 낮의 목욕탕을 즐기고.. 목욕 끝에 즐기는 낮 술.


역시 한낮, 목욕탕에 다녀와 밝은 햇살 아래에서 마시는 맥주는 최고다.
그 첫 한 모금은 그야말로 무적..
나는 지금, 온몸으로 맥주를 받아들이고 영혼을 다 바쳐서 맞아들인다.
사랑, 그런 느낌이다.
바보인가. 바보라도 좋아. 아니 바보라서 다행이다


저자는 도쿄 곳곳의 목욕탕을 찾아가고, 그 주변의 술집에 들어간다. 맥주에게 정복당하는 짜릿함을 즐기고, 누가 미식가 아니랄까봐 매번 다른 음식과 사랑에 빠진다. 돼지내장조림과 뽀빠이가 먹는 시금치나물, 가다랑어 다타키와 꼴뚜기유채된장식초절임.. '냉두부의 차가운 기운과 생강 향기가 여름을 알리고', '속이 얕은 뚝배기의 달걀이 자글자글 소리를 내고, 미역과 파드득나물'에 기뻐하는 그는 '부드러운 달걀과 미역이 묘하게 엉켜 실로 맛있다'고, 백합조개달걀찜에 '익은 조갯살이 이 사이에서 스르르 무너지는데, 그 묘한 탄력감이 정말이지 조개답다'고.. '데친 가지를 식혀서 요즘 유행하는 매운 기름을 듬뿍 뿌렸다. 다져서 볶은 마늘이 가지에 가득 달라붙었다'고...  10곳의 목욕탕과 주점. 10가지의 낮 술 이야기에 매혹된다. 


1863년에 문을 연 목욕탕, 1929년에 시작한 목욕탕 등 기본적으로 도쿄의 목욕탕 문화의 역사가 오래되고 깊다는 것도 이야기의 저력이 된다. 오래 된 골목이 살아있다. 

차가 지날수없는 좁은길. 양쪽에 장어집이 있고 돈까스집이 있고, 골동품 가게가 있고, 꼬치구이 가게가 있다. 대형 체인점, 새로 생긴 가게는 거의 없다. 지역 주민들이 오래 애용하던 오래된 가게 뿐. 이런 골목..정말이지 기분이 참 좋다

저자의 기분이 좋아질 때마다, 함께 기분이 좋아지는 묘한 책이다. 하기야 '고독한 미식가'에서 음식에 흠뻑 취할 때 마다 함께 취하지 않았던가. 묘한 분이다. 벌거벗은 아재들 묘사와 스케치도 일품인데ㅋㅋ 유머와 상상력이 세상을 구할 거라 믿는다. 

산뜻하다. 산뜻해. 저렇게 돌아다닐테다. 


그런데 말이다.. 이 책을 선물해준 그대. 알아차렸던 게 분명하다. 내가 이 책 엄청 좋아할 거라는 거ㅎㅎ 난 정말 빌려준 줄 알고, 별 생각 없이 받아들었다. 눈치 없는 내게 그대처럼 영민한 친구가 옆에 있다니. 우린 조만간 낮술을 하겠지, 아마. 



그대가 불쑥 건내길래 재미있어서 빌려주는 건줄 알았어요. 지난 주말에 보는 거 알고 있었거든요. 숙취가 살짝 남은 토요일, 혼자 라면 끓이며 펼쳤다가 깜짝 놀랐어요. 이렇게 사랑스러우면 반칙인데ㅎ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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