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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Sep 18. 2016

<아버지와 이토 씨> 관습 따위, 허세 대신   

Carpe Diem, 현재의 욕망에 최선을


6월 초에 읽고 정리. 당초 머니투데이 [동네북] 용으로 정리했으나 게재되지 않았다. 어쩌다보니 글 공개가 좀 늦은 정도ㅎ 




34세 아야는 서점의 알바 직원이다. 역에서 좀 멀고 25년 된 작은 집에 세들어 산다. 가끔 맥주 한 잔, 술집에 갈 여유가 있고 정기적으로 볼링을 친다. 같이 사는 남자친구에게 낮밤으로 불만 없다. 평범한 삶이다.

남자친구 이토 씨는 상냥하다. 아등바등 붙잡기에는 세상사 도망가는 것 없다며 담대하다. 아야는 편의점 알바로 일할 때 이토 씨를 만났다. 어쩌다 술 한 잔 같이 하는 사이가 됐고, 어쩌다 키스를 했고, 어쩌다 같이 자고, 결국 살림을 합쳤다. 흔한 사연이다. 


그 남자가 그 여자보다 20살 연상 54세라는 점 빼고는 특이할 게 없다. 그런데 이것이 특이한가? 사실 그런 커플도 종종 있지. 그 남자가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해서 뭐가 다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닌데, 스무 살 젊은 여자와 살려면 재력가나 유명인사일 거라는 식의 편견이 있던게지.

이 커플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는 것은 내게도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 그런데 갑자기 아야의 오빠 집에서 지내던 74세 아버지가 등장한다. 평생 초등학교 교사로 일해온 아버지에게 34세 딸이 54세 이혼남, 심지어 초등학교에서 ‘급식 아저씨’로 알바하는 남자와 동거하고 있는 현실이라니. 뭔가 삐그덕거린 상황에서 아들 집에서 가출하다시피 나와서 딸에게 온 아버지는 허락, 아니 양해 따위 구하지 않고 방 하나를 차지한다. 사회생활을 잘했는지 모르겠지만, 가족에게는 꼰대 그 자체. 대화가 통하지 않는 고집불통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골판지 상자’를 신주단지처럼 들고 왔고, 아버지의 행태가 뭔가 이상하다. 

비루한 막장 드라마로 빠질 수도 있는 상황이 쿨한 시트콤으로 전개되는 것은 상당 부분 이토 씨 덕분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기본으로 장착했고, 경륜에서 우러나는 매끄러운 태도가 아야 가족에게 윤활유가 된다. 이토 씨는 사람 사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줄 아는 능력자다. 자신이 못마땅할 여자친구 아버지를 받들어 모시는 대신 부담 주지 않는 범위에서 배려한다. 사실 여자친구 아야에 대한 거리도 그렇다. 특별히 요구하는 것 없이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데 최선을 다한다. 식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집구석이지만 작은 텃밭에서 방울토마토와 가지를 키워 두 사람의 밥상에 올리는 모습은 평온한 일상에 온기를 더한다. 저녁밥으로 가자미조림과 단호박 샐러드, 참치 오이 무침에 가지와 방울토마토를 넣은 된장국이라니, 충분히 근사하지 않은가.

아버지 세대에는 결혼이라는 제도와 정규직 일자리, 아이를 낳는 가정이 규범이었겠지만, 아야에게는 결혼도, 아이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럴싸한 명함도 필수품은 아니다. 나이로 따지면 아야와 아버지 딱 중간에 있는 이토 씨는 이 부분에 있어서 선구자 격이다. 어른 세대의 관습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어깨에 힘을 뺐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허세 대신 일상이 흔들리지 않도록 유지한다. 이런 부분도 일본 사회가 우리보다 조금 먼저 겪는게 아닐까. 일자리가 부족한 저성장 시대에 사람들은 어떻게 삶을 꾸려나가게 될까.

토요일에 부담 없이 읽기에 좋은 책. 여러 가지 단상을 남긴다. 우에노 주리와 릴리 프랭키가 아야와 이토 씨 역할을 맡아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단다. <노다메 칸타빌레>의 깜찍 미녀 우에노 주리도 반갑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넉넉하진 않아도 따뜻한 품을 보여준 아버지,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산뜻한 어른 역으로 스쳐간 릴리 프랭키가 이토 씩 역할이라니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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