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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Feb 25. 2017

<82년생 김지영> 소설? 현재진행형 한국 여성보고서


82년생이면 다를거라 착각했다. 생각해보니 내 딸도 남동생 더 아끼는 할아버지를 의식했고. 맘충이라는 단어는 신조어구나. 현재진행형 대한민국 여성보고서 같은 짧은 소설. 운좋게 살아남은 나는 여자 후배들에게도 부디 살아남으라고만 했지만, 이게 징글맞게 어려운 일이다.


책 소문은 들었지만, 다 아는 내용일 것만 같았다. 굳이 안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나보다.

조영신님이 "고개를 끄덕이고 몰라서 미안했다고 할만한 대목이 넘쳐 났다. 이해가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도 이해가 되었고, 그래서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고 했다. 이 짧은 소설 읽는데 일주일 걸렸다고. 마음에 걸리는게 그렇게 많았을까. 영신님의 저 고백에 결국 이 책을 찾았다. 역시 다 아는 얘기다. 그리고 예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먹먹하다. 이 느낌까지도 새롭지 않다. 그런데 가슴에 맺히는 외침들이 다 깊숙이 파고든다. 이건 대한민국 여자들의 현장보고서. 우리 모두가 알고 있어서, 그래서 더욱 무뎌진 이야기. 그런데 너무나 절절한 우리 자신의 이야기. 짧게 코멘트만 남긴다.



그런데도 그때는 몰랐다. 왜 남학생부터 번호를 매기는지. 남자가 먼저인게 그냥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먼저 줄을 서고, 먼저 발표하고..전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으면서 기다렸다. 주민번호가 남자는 1, 여자는 2로 시작하는걸 그냥 알듯

솔직히, 주민번호 앞자리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소설에서 말하듯, 그냥 그런줄 알았는데... 정말 무심했구나..

 

김지영씨는 그날 아버지에게 무척 많이 혼났다. 왜 그렇게 멀리 학원을 다니느냐, 왜 아무하고나 말 섞고 다니느냐, 왜 치마는 그렇게 짧냐..그렇게 배우고 컸다. 조심하라고, 몸가짐 단정히 하라고. 위험한 길,위험한 사람 알아서 피하라고..

여자는 다행이라며 대뜸 학생 잘못이 아니에요, 했다. 세상에는 이상한 남자가 너무 많고, 자신도 겪었다고. 그들이 문제지 학생은 잘못한게 없다는 여자의 말에 김지영씨는 갑자기 눈물..여자가 덧붙였다. 근데 세상에는 좋은 남자가 더많아요.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신입사원 응시원서 사진은 모두 잿빛 정장에 단정한 화장과 머리. 이 사회는 거기서 벗어나면 다 여자 잘못이라는 건가. 강간은 흔하게 화간으로 취급되고, 조디 포스터의 89년작 <피고인>이 나온지 사반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피해자가 잘못했다는 시선이 넘실거리는 사회다. 세상에.. 아직도.


놀랍게도? 혹은 놀랍지 않게도 젠더 이슈는 글로벌하다. 같이 자자는 상사를 성희롱으로 문제 제기했지만, 가해자를 보호하고 피해자만 일이 꼬이는 건..지금 이 순간에도 뜨거운 이슈. 지난주 화제글이다.

<우버에서 보낸 굉장히 이상한 한 해를 떠올리며>  


가장 절망적인 것은 학과장의 대답이었다. 여자가 너무 똑똑하면 회사에서도 부담스러워 해. 지금도 봐, 학생이 얼마나 부담스러운줄 알아?어쩌라고? 부족하면 부족해서 안 되고, 잘나면 잘나서 안되고, 그 가운데면 또 어중간해서 안된다고?

미친듯이 노력했지만, 취업 추천서는 남학생에게만 돌아가는 에피소드의 한 대목. 따지는 여학생에게 학과장이 한 이야기란다. 미안한 얘기지만, 지원자들 보면 똑똑한 건 대부분 여자들이란 어느 회사 HR 담당자 얘기를 들은지 수년. 그러나 여학생들이 아무리 스펙을 쌓아도 남자라는 스펙이 없어 밀린다고 했다. 해마다 공채를 뽑으면서 여성은 단 1명씩 끼워주던 시절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문이 많이 열렸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내 좁은 세상의 착각이었다.


육아휴직 몇 년? 같이 밥 먹던 과장부터 사원까지 본 적 없다고. 고민 끝에 사직서. 이래서 여자는 안된다는 비아냥이 돌아왔다..육아휴직 사용 비율은 2003년 20%, 2009년에야 절반이 넘었고. 여전히 열 명 중 네명에겐 없다

마지막 대목은 2015년 통계로 작가가 각주를 달아놓았다. 열 명 중 네 명은 육아휴직을 쓸 수 없다. 노동법 잘 아는 로펌 변호사들도 출산을 앞두면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바뀌지 않았을 듯. 자격증 있는 이들이니 괜찮지 않냐고 하길래, 사회의 시선이, 그 인식이 가장 무섭다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 내 커피는 타주지 않아도 되요. 식당서 내 숟가락 챙겨주지말고..부담스러워서가 아니라 김지영씨 일이 아니라서 그래요. 신입사원 받을때마다 느낀건데,여자 막내들은 부탁하지 않았는데 귀찮고 자잘한 일을 다 하더라고요. 남자는

남자는.. 커피를 타지는 않는다. 최소한. 여자는? 이제 많이 없어졌을거라 생각은 해보지만.. 내가 일하는 회사는 여성 비율이 40%에 육박하는 등 다른 대기업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환경이라, 잘 모르겠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곳에서 훨씬 더 잔혹할 거란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아무렇게나 주무르고 만졌다"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의 '눈물의 삭발식'  사연에 경악했지만, 그게 현실이다.


머리만 좀 지끈거려도 쉽게 진통제를 삼키는 사람들이, 점 하나 뺄 때도 꼭 마취 연고 바르는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엄마들에게는 기꺼이 다 아프고, 다 힘들고, 죽을 것 같은 공포도 다 이겨 내라고 한다. 그게 모성애인 것처럼 말한다.

남자가 애를 낳았으면, 이미 오래전에 '인간 답게 출산하는 법'을 만들었을 거라는게 출산 직후 나의 소감이었다. 모성애라는 말을 사실 싫어한다. 참고 또 참고 많은 걸 감수하라는 그 일방적 단어가 싫다. 새끼를 아끼는 부모 마음은 다 같다. 너무 오래 참고 살아온 엄마들. 그걸 다 모성애라 포장하고 구조를 바꾸지 않는건 비겁하다.


살아남은 언니로서의 책무 같은게 없지 않다. 딸에게 좀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도 있다. 모든 여자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




젠더 감수성 문제 추가.


화제가 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도자료


연구원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글


2017년 한국 여자들 트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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