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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Mar 12. 2017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시간에 아등바등 않기



1964년 4월 7일, 울리야노프스크

곤충분류학: 알수 없는 곤충 그림을 두 점 그림. 3시간 15분
어떤 곤충인지 조사함: 20분
추가 업무: 슬라바에게 편지 - 2시간 45분
사교 업무: 식물보호단체 회의 - 2시간 25분
휴식: 이고르에게 편지 - 10분
울리야노프스카야의 프라우다지 - 10분
톨스토이의 세바스토폴 이야기 - 1시간 25분



그는 시간을 기록하고, 월말 정산에서 분석하고 연말 정산으로 총계도 냈다고.

2004년에 읽은 이 책를 다시 끄집어낸 건 지금 읽는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의 이 대목에서..


사실 생의 마지막에는 자신이 소유한 돈보다 자신이 즐겼던 추억만 남는답니다..우리는 돈으로 모든걸 사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어요. 건강도 외모도 행복도. 사실 이 모든건 돈으로 살 수 없어요. 오로지 시간으로만 살수 있습니다. 영어도...


아, 하지만 내겐 시간이 없는걸.. 카톡 프로필 설명조차 '시간이 최고의 사치'라고 했는걸..


그런데 다음 장에 바로 저 류비셰프가 등장


무튼, 생각 나서.. 2004년 3월에 쓴, 13년 전 리뷰를 또 꺼냈다. 기록해두면 이럴때 편하다ㅋㅋ



'아침형 인간’이 괜찮은 건 사실이다. 10년간 새벽별 보며 출근한 나로서는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하루가 길어지고, 남들 출근할 때까지 왠만한 업무가 상당부분 마무리된다.
그런데 요즘 업무가 바뀌어 ‘올빼미’로 살아보니, 역시 괜찮더군. 느지막히 일어나는 대신,  애들 재운뒤 한밤중에 운동하고, 영화보고, 책보고.

문제는 ‘아침형 인간’ 유행이 사람들에게 시간의 족쇄를 채우는게 아닌가 싶다. 컴퓨터와 엘리베이터, 문명은 분명 시간을 아껴주는데, 사람들은 시간이 없다고 더 난리다. 몸의 시계를 바꿔서라도 ‘종달새’가 되어 부지런히 살지 않으면 시간관리 못하는거라 은근히 잘난척 하는게 ‘아침형 인간’의 실체 아닌가.

하지만 류비세프의 ‘시간정복’은 바지런한 ‘아침형 인간’들, 혹은 시간에 쫓기며 사는 우리 모두의 뒤통수를 친다. 그의 원칙은 간단하다. 시간에 쫓기는 일, 의무적인 일은 맡지 않기. 피로를 느끼면 바로 휴식하기, 10시간 정도 충분히 잠자기, 힘든 일과 즐거운 일을 적당히 섞어 하기.

이런 ‘한가한’ 원칙으로 그가 남긴 업적은 경이롭다. 곤충분류학, 과학사, 농학, 유전학, 식물학, 철학... 관련 70여권의 학술 서적을 발표했고 총 1만2500여장에 달하는 논문과 연구자료를 냈다고라. 숫자로 드러난게 전부는 아니다. 그와 동료들은 단테, 위고, 괴테의 작품을 원어로 읽으며 즐겁게 토론했다. 예전 ‘지식인’ 답게 수준이 엄청 높다!

그가 평생 남긴 ‘시간 통계’가 비밀일까. 하루 몇시간 연구를 했고, 회의를 하고, 책을 읽었노라고 조목조목 간단히 시간만 기록한 일기. 글쎄, 그걸 따라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간을 초월할 것 같지는 않다.

역시 류비세프의 ‘시간철학’이 화두다. 그는 남을 뒤쫓고 인정받는 일에 초연하면 도구가 아닌 창조의 가능성으로 시간을 아끼고 사랑했다고 한다. 아등바등 시간에 매달리지 않고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오히려 시간이 충분해진다..뭐, 이런거다. 시간 통계에 따라 분주하게 살다보니 일상적인 불평을 할 틈이 없고, 점차 화를 내지 않는 법을 터득하고...결국 늘 편안한 마음..이게 관건이다. 부와 성공에 매달리지 않고 그저 연구를 위한 작은 평화에 만족하는 자유로운 삶. 시간의 족쇄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단 말이다.

산책하면서 곤충 채집을 했고, 쓸데없는 잡담으로 채워지는 회의때 수학 문제를 풀었다는 류비세프식 시간관리도 관심을 끌지만..그의 시간 철학이야말로 콕콕 가슴에 와닿는다. 시간에 매달리지 않으면, 오히려 시간의 주인이 된다..뭐, 이런 상식적이면서도 기분좋은 결론 아니겠는가.
 
전문 전기작가라는 작가의 서술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그래도, 류비세프의 후예가 되서..시간 없다고 투덜거리며, '아침형 인간'이다 뭐다, 시간관리를 어찌 하누..뭐, 이런 궁상은 떨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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