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일은 할 만 하냐? 토요일인데 집안일 하는 중이라고? 토요일에 출근 안했으면 할 만 한거지." 토요일에 출근한 K씨는 이렇게 카톡으로 안부를 물었다. 3월 초 또다른 K씨는 5월 셋째 주 약속을 잡고 있었다. 두 달 넘게 업무상 약속이 빽빽했다. 어제 우연히 만난 친구 L교수도 "토요일에 못 갔으니 일요일에 연구실 나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함께 외쳤다. "대체 왜 이러고 사는걸까? 왜 다들 이렇게 힘든거야?"
모두 열심히 살아왔다. 지금도 그러하다. 미친 듯한 일정을 소화하면서, 시간 쪼개어 자기계발 하느라 바쁘다. 성공하지 못하면 모두 개인의 탓. 청년도 노인도, 전세계에서 압도적으로 자살률이 높은 나라에서 우리는 목을 걸고 살아간다. 10대부터 20대까지 법정근로시간 두 배 쯤 공부하는건 아무렇지도 않고, 스트레스는 기본 장착 아이템이다.
'어번 딕셔너리' : '바쁘다' = 중요해 보이려 하는 것, 그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바쁘다는게 사회적으로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시대. 누가 더 바쁜지 경쟁하고..동시에 이렇게 살다가는 죽어버릴 것만 같은 헉헉거림 사이에서 괴롭다. 그런데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면 성찰 통한 자아 성장과 자기계발은 동전의 양면..개인이 노력해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게 가장 좋은 해결책이란 건, 언뜻 듣기엔 멋지지만 문제의 원인을 사회에서 찾지 않고 모든걸 개인 문제로 환원하는 신자유주의 책략이 숨어 있다.
개인주의가 과하면 무한경쟁은 수순. 어버이연합 일베가 창궐하고 고독사 자살이 폭증하고. 개인의 마음을 살펴보던 정신과 의사쌤은 시선을 돌려 사회를 본다. 개인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금모님 소개로 저자 하지현 쌤과 알고 지낸지 10년. 책 읽고 영화 보는 것에서도 도무지 따라갈 수 없는 콘텐츠 홀릭인데, 책까지 끊임 없이 내신다. 이번에 '알라딘 2017년 3월의 저자'가 되셨다고 하여 구경갔더니, 나만해도 하쌤 책 정말 많이 읽었더라. 2011년 당신의 문제는 너무 열심히 사는 거라고 일갈하는 <심야치유식당>에 홀라당 빠진 뒤 2012년 <사랑하기에 결코 늦지 않았다>. 2013년 <예능력> 마음의 근육을 키워볼까 부터는 리뷰 혹은 트윗 메모도 꼬박꼬박 했다. 2014년에 나온 직딩맘 필독서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 2015년 <공부중독> 왜곡된 공부로 망가지는 부모와 아이 , <그렇다면 정상입니다> 다정한 위로. 2016년 <정신의학의 탄생>은 리뷰까진 못했지만 연재될 때 다 챙겨봤다. 재미있어서!
그래서 확실히 알겠다. 이번 책은 시선이 바뀌었다. 너무 열심히 사는게 문제야, 그 정도면 정상이야, 괜찮아, 다독다독 하던 시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우리는 공동체가 병든 상태. 개인의 마음을 치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녀가 경쟁에서 이기를 바라는 부모는 아이 대신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모든걸 선택해줬다. 덕분에 아이는 시행착오 없이 더 많은걸 가진 성인이 되지만 결정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갖출 기회를 놓쳤다. 스스로 생각하지도, 결정도 모험도 못하는 어른.
묻지마폭력 증가..자기중심주의 강화. 이기적 부모가 이기적 아이를 만들고. 평판 중요한 공동체가 해체됐고. 인내를 배울 기회 부족. 소통 어려우니 작은 일에 욱..한두명 이상한 사람보다 세상 큰 흐름 탓.
<공부중독>에서도 살펴봤지만, 아이들이 괴물이 되지 않으면 다행. 개인 처벌로 해결되지 않는다. 세상 큰 흐름을, 환경을 바꿔야 할 일.
노력만으로 안되는 세상. 최선을 다하면 그 이상을 얻기는 커녕, 본전을 건지기도 어려운게 지금의 세상. 안전과 지속가능성이 유일한 목표. 패기가 없다고? 성취하는 짜릿함도 좋지만, 먼저 삶이 지속될 수 있는 구조여야. 그조차 간당간당하다. ㅠㅠ
느슨함은 일종의 정신적 사치. 아무렴. 마음 체력 약할수록..성장 가능성 발휘 못한채 방전, 삶에 좋은 피드백 기회 감소시켜 자아 근력도 줄어드는 악순환. 워킹푸어 하우스푸어 타임푸어 반퇴푸어 스펙푸어. 최선다해도 푸어한 현실에 불안하고 마음은 가난
무슨 푸어가 이리 많은가. 다 콕콕 와닿는다. 현실은 팍팍하거나, 성공에 취한 이조차 빡빡하다.
가장좋은게 혼자 뒹굴뒹굴..전에는 시간 낭비 같았는데? 왕따도 아니고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이들은 회사에서 생존하기 위해 자기 에너지 90% 이상을 쓰는 타입. 나머지 사적 시간은 최대한 에너지 세이빙 모드라는 본능. 자기만의 밀실로
저 설명에 좀 당황했다. 혼자 뒹굴뒹굴 하는 자체가 꼭 저런건 아니겠지만, 한 마디로 살아가는 자체에 기가 빨려서, 나홀로 충전 본능이 작동한다는 건가.
세상은 불확실성 그 자체. 예측 어렵고 통제할수 있는게 거의 없는 상황이 가장 큰 스트레스. 개인이 기를 쓰고 성장해서 문제를 해결할게 아니라, 연대하고 공감하고 협력하라고, 정치활동으로 사회를 변화시켜보라고 말한다. 정치학자도 사회학자도 아닌 정신과 의사쌤이. '이건 아니잖아'라는 대중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마음의 방향이 바뀌면 무력함은 전혀 다른 방향의 폭발력으로 전환될수있다고 한다. 광화문의 집단적 즐거움 자체가 심한 우울함, 분노에 대한 반동형성의 일환일수도 있다고 한다. 나만 혼자 분노하고 고립된 생각하는게 아니라 상상 이상 많은 이들과 합일의 경험. 마음은 공간에 의해서도 변화한다고.
14년 세월호의 아픔으로 시작한 시스템의 균열은 16년 광화문 촛불집회로 이어져 우리 사회 버전업 기회가 됐고...불확실성과 혼돈의 이 시대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확실하고 믿을 수 있는 마음의 지표가 될수도 있다.. 고
'한국이 싫어서', '탈조선' 할게 아니라, 나의 결핍, 부족함, 타인의 결핍을 인정하면서 공감과 연대로 풀어나가라는 조언이다. 모든걸 해결해줄 지도자 동지를 찾지 말고, 우리가 풀어나갈 수 있다고, 우리는 이미 연대를 경험한 사람들 아닌가.
할 수 있다고, 이제는 시선을 돌려서 바꿔보자고.. 이런 방향성에 대해, 혹은 시대의 당위에 대해 이야기해주셔서 감사. 그리고 이 분, 정신과 의사다. 여러가지 위안을 빠트리지 않는다ㅎㅎ
본래 우리는 약간 '자뻑'모드로 살아간다. 주변 비판이 자아에 침투해 비수를 꽂지못하게. '난 잘해내고 있어'라는 마음이 보호막이 된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일수록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긍정적 착각. 때문에 우울증이 현실적 객관성을 주기도 마음을 위한 팁. 우울증조차 꼭 나쁜 건 아니다.
우울해본 사람은 그 경험 덕분에 공감능력이 좋아진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줄 알게 된다. 오직 잘나기만 한 사람, 성공만 해본 사람은 자기만 안다. 위축되고, 자책하고, 후회해본 사람은 타인의 마음에 신경쓰고..정서적 상호의존의 그물망으로
이 대목에서 엄청 공감. 나만 그런건 아닐듯.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건 괜한 말이 아니다. 아이가 상처받지 않도록 언제나 예방적으로, 사전에 보호해주는 엄마가 항상 옳은건 아니라고 주장해본 적 있다. 넘어졌을 때 일으켜주고 옷을 털어줄 수는 있어도 넘어지지 않도록 '컬링'으로 모든 장애물을 치워주는 '컬링맘'은 되지 말아야..
엄기호는 말했다. 우리는 자아실현의 이름으로 자아를 파괴하고 있다. 그러니 제발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묻지 마시라. 사방팔방에서 꿈을 묻는 시대. 꿈 같은거 안 찾으면 안되냐고? 나는 답한다. 안 찾아도 돼. 이번 생에는 안 되나보지 뭐 이런 쿨한 토닥토닥 좋다. 괜찮아, 다 괜찮아... 꿈을 묻는게 폭력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저 '버티는'게 용하고 대견할 수도 있는 시대다.
건강함이란 완벽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에서 시작. 완벽하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강박의 갑옷을 먼저 벗어야 한다. 그런다고 세상이 무너지지도 않고, 내 삶의 경쟁력이 단번에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대세 지장없고 나도, 남도 편하고
진심으로 저 대목에 공감한다. 정말 저래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내가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강박'을 벗지 못하는 인간이다. 1년에 한 두 권씩 책을 내는 저자 하쌤도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게 문제인 분 아닌가ㅎㅎ 우리는 이 주제를 여러차례 안주 삼아 봤는데....;;
이게 다 제가 그릇이 작기 때문? 그릇은 타고난다. 사회생활 해왔다면 괜찮은 수준. 마음의 그릇을 키우는건 실현 가능하지 않은 바람. 나라는 한정된 그릇의 크기를 받아들이고, 어떻게 하면 그 컵의 쓰임새를 잘 찾을까, 물 수위를 유지하는...
하쌤 책을 여러 권 읽다보니ㅎㅎ 익숙한 조언. 그러나 중요한 조언.
소수자 이슈에 고민할때 선배 충고 "잘 모르겠고 애매할땐 소수자 편을 드는게 맞다. 이성적 합리적 고민도 이미 선입견이 포함된것" 젠더 이슈도 그렇다. 잘 모를 땐 여성들 요구가 맞다. 수천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게임은 이렇게 하는게 맞다
그리고, 현명한 조언.. 훌륭한 판단. 마음보고서에 별 걸 다 담으셨다. 친절하셔라.
하쌤 책은 대체로 좋은 구절들이 많아서 트윗으로 꽤 많이 정리하게 된다. 그동안 낸 책들이 조금씩 결이 다르긴 하지만, 이번 책은 여러가지로 마음에 든다. 개인으로만 파고들지 않아서, 공동체의 마음을 크고 넓게 염려해주셔서 감사하다. 해법을 찾다보니 너무나 당연하셨겠지만.
우리는 트친. <중쇄를 찍자>에 열광했던 작년 늦봄이 떠오른다. 중쇄 축하!
PS> 정리 맥락에 안 맞지만 버리기 아까운 트윗 정리.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문제고, 제도가 문제다.
프랑스는 99년 동거가구 권리 보장하는 시민연대협약 도입 후 혼외출산 비중이 13년 57%. OECD 12개 국가에서 혼외출산 비중이 50% 넘겼고. 42개국 평균치은 39.9%. 우리나라는 1.9%. 출산율은 1.24명으로 OECD 꼴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