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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Mar 26. 2017

<퇴사하겠습니다>회사라는 인생학교 사용법

르 코르뷔지에에게 그들이 있다면 나에게도

퇴사하겠습니다. 선물받았습니다.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도망치고 싶을 때가 아니라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싶을 때 읽을 것! 이라고 합니다.
표지가 겁나 귀엽네요ㅋㅋㅋ 어쩔


N가 선물해준 책이다. '퇴사를 결심한 순간 회사가 재밌어졌다'는 저자 인터뷰를 보고 관심 가졌던 책. 꼭 퇴사를 결심하지 않더라도 회사원 인생에 대한 조언이다.


"회사란 '인생 학교'. 일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돈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성격 맞지 않는 동료, 상사와 어떻게 맞춰갈 것인지, 노력해도 자신감을 잃었을 때엔 어떻게 할것인지, 납득할 수 없는 명령에 어떻게 대처할지 가르쳐준다거나..

그렇습니다. 회사란 나를 만들어가는 곳이지, 내가 의존해가는 곳이 아닙니다. 그걸 알게 되면 회사만큼 멋진 곳도 없습니다. 그리고 수행이 끝났을 때 당신은 언제고 회사를 그만둘수 있고. 다만 언젠가 회사를 졸업할 수 있는 자기를 만들 것!"


사람은 죽을 때 까지 성장한다고 믿는 나로서는, 학교에 이어 회사가 인생학교라는 점에 동의한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한 때 기자로 일하면서, 또 회사원으로 일하면서 배우고 얻은게 많다.

당시 나는 건방진 말만 늘어놓고 실력은 하나도 없는데다가 성가시기만 한 최악의 신입..귀여운 구석이 털끝만큼도 없는 그런 나를, 아무런 득 없이 어떻게든 도와주려는 마음먹은 사람들..같은 뜻을 품은 이들이 모인 '회사'라서 가능한 기적.. 어쩌면 나도 그녀처럼 기적의 수혜자라는 것을 부인할 수 있을까?ㅎㅎ

 

그리고 회사에 있던, 밖에 있던 일은 본질적으로 그냥 일인 거다. 그냥 삶의 과정이다. 

 "일이란 궁극적으로 회사에 들어가는 것도, 돈을 받는 것도 아닐 겁니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도움이 되는 것,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 하는 것..반드시 진지해져야 합니다. 그렇기에 일은 재미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이타적이었던가. 그러나 이런 마음이 아니라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지? .. 한 시절 기자일 때 나름의 소명감이 있었다. 기업으로 옮긴 뒤 인터넷 정책 관련 일을 하면서 이용자 권리를 위하는게 생태계를 위한 일이었고, 회사에게도 도움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지금도 내가 다니는 회사가, 이런 기업이 잘 되는게 궁극적으로 이 사회에 도움된다는 확신이 있다. 어쩌면 나는 이 정도의 자기합리화와 신념 없이 몰입하기 어려운 인간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이런 방식의 '회사형 인간'이라는게 놀랍다.ㅎㅎ 역시 <퇴사하겠습니다>를 읽으며, 일에 대해서만 계속 생각하다니ㅋ 그녀에게 동의한다. 일은 재미있다. 대체로.


이 책도 나를 돌아보라, 고 외치고 있지만..마침 최근 나를 돌아볼 기회가 된게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는 르 코르뷔지에 전시회. 그의 언어와 그림, 건축까지 당대의 거인에 경의를 표하면서, 내가 주목한 건 그의 '교류'다. 그는 파블로 피카소와 우정을 나누며 화가 대신 건축가의 삶을 택했음에도 끊임 없이 자극받고 그린다. 서로 자신을 상대방보다 낮추기 위해 노력했다고. 제자이자 동료였던 앙드레 보겐스키는 피카소와 르 코르뷔지에의 교류를 이렇게 평한다.

그들의 목소리는 평온했고,
그들의 침묵은 의미로 가득했다.
그들의 눈은 빛났고,

그들의 손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한된 공간인 현대식 아파트의 기본이 되는 '모듈러'를 연구하면서 아인슈타인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고, 아인슈타인은 르 코르뷔지에에게 편지를 보낸다. "악을 어렵게 하고 선을 쉽게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비례라는 척도입니다. 어떤 사람은 당신의 모듈러가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것이 세상을 바꿀 만한 연구라고 생각 합니다. 당신의 성과는 위대한 과학자에 버금갈 정도입니다"


거인은 아니지만, 이런 우정과 교류는 매혹 그 자체다. 일을 한다는 건, 멋진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뭔가를 만들어가는 것. 일하는게 즐거운 것도 역시 그런 과정 덕분이 아닐까. 내가 <온더무브>의 올리버 색스에 빠져버린 지점도 비슷하다. "열정으로 가득한 삶, 지적인 열락을 나누는 인생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우리는 르 코르뷔지에도, 올리버 색스도 아니다. 하지만 일을 하며 이런 에너지를 얻지 못한다면 어떻게 버틸 수 있다는 말인가. N는 책을 선물하면서 "이 책을 읽고 나니 저는 도저히 상상도 감당도 안되고 이해도 할 수 없던 마냐의 다른 많은 활동들이 회사형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던걸까, 생각하게 되었어요"라고 메모를 남겨줬다.(허락 없이 공개해서 미안요^^;;)  대체 나의 무슨 활동을 말하는지 되물었더니 온갖 공부모임, 독서모임을 말한다. 이런. 그건 회사형 인간의 활동인데ㅎㅎ 일을 하다보니, 부족한게 보이고 그걸 채우기 위한 공부, 에너지를 얻기 위한 교류인데. 나는 그게 일을 위한 거라 생각했다. 어찌 보면 그런 활동이 회사형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있겠다. 나도 참 내 편한 대로만 생각하는 인간이구나.


우리는 대개 사람으로 인해 지친다. 일이란게 그렇다. 그리고 나는 사람으로 인해 힘을 얻는다. 언제나 그 균형점을 찾으려 애쓰는게 회사에서 살아남은 비법일지도 모른다. 회사 안에서, 회사 밖에서 내게는 피카소나 아인슈타인과 다름 없는 사람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언제나 배운다. 내게 다양한 생각의 기회를 주고, 숨 쉴 틈까지 마련해주는 N에게도 늘 고맙다.


우리는 늘 두려워합니다. 약해지면 안된다 스스로 다그치고 치열해야 한다 심각하게 고민. 하지만 열심히 산만큼 보답이 돌아오느냐 하면 늘 그런건 아닙니다..어쩌면 행복이란,노력끝에 찾아오는게 아니라 의외로 여기저기 굴러다니는게 아닐까요?


퇴사를 준비해온 그녀는 회사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고, 의외로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행복을 얘기한다. 회사만 바라보면, 위험하다는 것에 동감. 회사도 내가 거쳐가는 인생학교라 생각하면, 고비고비 괴로워도 순간순간 견딜만 하다. 회사란게 점점 '무서운 존재'가 아니게 됐습니다. 동시에 내 일이 무척 재미있고 자유로운 것이 되어갔습니다..월급 얼마 받건, 관심이 사그러지자 점차 회사에 지배당한다는 생각, 미운털 박히면 안된다는 생각이 줄고..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 불가능한 미션이 아니라고 믿는다. <히든 피겨스>의 그녀들이 그랬듯, 현실은 훨씬 가혹할 수 있지만, 일단 도전은 해봐야겠지. 어디에서든. 

르 코르뷔지에는 "혼자 있는 사람은 자신과 싸우고 있는 것"이라며, 혼자 고독한 작업이 필요하다고 한다. 역시 균형의 문제. 사람으로부터 얻는 에너지에 집착하는 나는 혼자 서는 법에 서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도 퇴사 이후 새로운 사람들의 친절함을 발견하지 않는가. 

 

책은 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삶의 태도에 대해 시사점이 많다. 원래 나로 인한 쓰레기가 지구에 늘어나는게 싫다는 핑계로 먹거리 외에는 쇼핑을 즐기지 않는 나에겐 딱이다. 냉장고를 없애지는 못할 것 같은데 그 또한 와이낫. 회사를 통해 회사원 위주로 통치하는 정부에 대해서도 생각할 대목이 많다. 오늘은 어찌된게 뜬금없이 '일', 그리고 '사람'에 꽂혀서 이 정도로 마무리. 다루지 못한 트윗 메모는 그냥 부록처럼 남겨놓는다. 참 찰지게 쓰셨다. 이런 글쟁이로서 퇴사하는 꿈을.. 나와 내 주변 적잖은 이들이 가지고 있지 않을랑가ㅎㅎ




나는 회사에서 압도적으로 소수인 여기자입니다. 물론 제도상으로 성차별 따위는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인사 이동이든, 그건 '차별'이 아니라 '능력' 때문입니다..그렇지만,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정말? 평균점 이하라는건 너무하지 않은가 #퇴사하겠습니다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제외'되는 일이 반복된다면 내 정신이 언제까지 버틸수..앞으로 나는 인사이동이 발표될 때마다 마음이 헝클어지고 열 받고 한 품은 괴물이 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나 자신을 제어해야 하는 인생을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퇴사하겠습니다


어느새 황금만능주의(돈으로 뭐든 사려는 태도) 우월감 추구(다른 사람보다 더 낫지 않으면 만족 못하는 상태) 욕망 풀가동(넘쳐날 정도로 갖고도 만족 못하고 손에 넣지 못하는 것들을 끝없이 원하며 불만을 터뜨리는)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퇴사하겠습니다


마트엔 어느 계절이든 채소들이 다 갖춰져 있지만 직거래장터엔 제철 채소만. 무는 찬바람이 불지 않으면 절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무가 없네, 아직도 안나왔네, 아 언제 나오나..드디어!엄청난 호사. '없다'는게 '있다'보다 풍요로운 느낌 #퇴사하겠습니다


일본사회 큰 문제가 인구감소. 제아무리 요령 없고 경험 짧은 중년의 여자라도 이것저것 따지지만 않는다면 아르바이트가 가능합니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하나부터 배울 각오를 한다면..중요한 건 능력보다, 쓸모없는 자존심을 버릴 수 있는 힘! #퇴사하겠습니다


원전사고 후 '절전' 결심..집에 오면 무의식적으로 켜던 TV를 켜지 않으니 어둠과 고요함..마음이 차분하고 고즈넉. 전자제품도 버리기 시작. 전자레인지, 선풍기, 고타츠, 전기담요..놀랍게도 불편할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냉장고까지 #퇴사하겠습니다


어쩌면 '없으면 못 사는 것' 따위, 아무것도 없는게 아닐까. 그걸 깨닫자, 무척 자유로워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그때껏 나는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것들을 끝없이 손에 넣는게 자유라고 믿어왔습니다. '없어도 살 수 있다'는 자유란 #퇴사하겠습니다


회사를 그만둔 몸..곧바로 사회인이 아닌 걸로 간주됩니다. 부동산 소개업소에서는 보증인을 요구..신용카드 심사를 통과하기 무척 까다롭고.. 정기적 수입이 있든 없든 갚지 못할 빚을 질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긍지나 실적 따위 무시당하고 #퇴사하겠습니다


우리 사회란 그야말로 '회사 사회'..구직활동 입증? '취직하지 않겠다'는 사람은 실업보험 못 받는? 퇴직금 1/7이 세금? 국민건강보험, 연금 정말 비쌉니다. 회사로부터 자율적으로 자립하고 독립하는 인간은 국가로부터 페널티를 받습니다 #퇴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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