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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un 14. 2018

<기획은 2형식이다> 문제는 '문제'를 제대로 찾는 것

2형식이라니. 낯설지만 기이하게 추억이 밀려오는 단어입니다. '주어+동사'인 1형식 외에 'I am a girl' 처럼 '주어+동사+보어' 구조가 2형식이라네요. 나는 가수다, 침대는 과학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이런게 2형식 문장이란 거죠. 그래서 이 책의 핵심은 "Problem is .....", "Solution is ....."라는 2형식이 기획의 처음이자 끝이란 얘기입니다.

예전 직장에서 '개발자'와 '기획자', '디자이너' 외에 스탭이란 애매한 직군에서 일했습니다. 기획자들이 얼마나 달라 보이든지. 하여간에, 제가 기획에 대한 책을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더구나 광고회사 고수가 쓴 기획 책이라니. 이런 책을 제가? S이 이 책에 대한 소감을 적어놓지 않았더라면, S이 책을 선물하지 않았다면 인연이 없을 책입니다.

그런데, 최근 읽은 책 중에 단연 유익했습니다. 몇 년 전의 저라면 또 달랐겠지만, 최근 제 고민을 어찌 그리 콕콕 찍어주는지.


뭐가 그리 좋았냐고요? 결국 '문제'는 '문제'라는 것이 와닿았습니다. 관건은 문제 정의란 얘기입니다. '고수'와 달리 '중수'는 '문제'보다 '해결'에 시간과 노력을 퍼붓는다고 합니다. 링컨이 대통령 되기 전에 목수이던 시절 "나무를 벨 시간이 8시간 주어진다면, 6시간을 도끼 날 가는데 사용하겠다"고 했다네요. 문제가 뭔지 정의하는데 공을 들이자는 겁니다. 문제를 규정하고, 본질을 탐구하는 노력이 결국 해법을 만든다, 너무 당연한 얘기 같지만, 이런데 심쿵하다니. 예컨대, 십 수년 전 모두가 한국 축구의 '문제는 기술'이라고 할 때, 히딩크는 '문제는 체력'이라고 접근을 달리합니다. 체력 강화 훈련의 결과는 월드컵 4강 진출이었죠.

문제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문제가 뭔지 잘 모르거나, 문제를 잘못 찾거나 너무 많이 찾거나, 문제를 두리뭉실하게 규정하거나... 저자는 이런게 문제의 문제라고 합니다. '문제의 현상' 대신 보이지 않은 '문제의 본질'을 보는 능력,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제대로 문제를 규정하면, problem을 project로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저자가 든 사례들은 이렇습니다.

속도가 너무 느린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대한 주민들 불평 불만? 정말 속도가 문제였을까요? 지루하게 기다리면서 시간 낭비한다는 생각이 문제가 아닐까요? 엘리베이터 속도를 높이는 건 복잡한 해법이지만, 문제 규정을 달리하면 해법이 달라집니다. 엘리베이터 문 앞과 속에 '거울'을 넣었더니, 옷매무새도 고치고 거울 보면서 불평이 해소됐다는 겁니다. 지루함을 문제로 보고 풀어버린 거죠.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 미샤는 저도 써본 '보라병'으로 히트쳤는데요. 당초 잘 만들어도 매출이 별로 안 늘더랍니다. 문제를 '제품의 품질'로 본게 문제. 문제를 '브랜드에 대한 선입견'이라고 규정, 유명 고가 브랜드와 비교 마케팅을 진행했고, 보라병 100만 병을 팔았다고요.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은 미군이 아이젠하워 온다고 겨울에 '잔디 깔기'를 원할 때, 문제는 '잔디'가 아니라 황량함을 달랠 '푸름'이라고 간파했습니다. 겨울에 없는 잔디 구하느라 끙끙대는 대신 낙동강변 보리싹을 옮겨 심었다고요. 꽤 유명한 일화인데, 이렇게 보니..아, 결국 모든건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구나, 와닿더라고요.

골목상권 살리기 위해 대형마트 휴무제? 대형마트 존재 자체는 제약 조건일 뿐, 없앤다고 해결할 것이냐. 미국 정부가 아멕스 카드와 기획한 건 'Small Business Saturday'였다고 합니다. 오프라인 쇼핑 날인 '블랙 프라이데이'와 온라인 쇼핑 '사이버 먼데이' 사이의 토요일을 '영세 소상점을 위한 날'로 지정해서 할인과 혜택을 줬다나요. 무료 광고, SNS 미디어 교육으로 마케팅 노하우도 전수했고요..  

저자는 꽤 여러가지 사례를 내놓는데, 재미있습니다. '월간 윤종신' 사례는 원래 저도 열광했었는데요. 어떻게 가수가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지, 달라진 환경에서 '아무도 가보지 않은 방식'으로 시도하는 그 열정도 멋지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규정한 덕분이라는 해석도 마음에 듭니다.

이게 어떤 영향을 미치냐면요. 요즘 하는 일에서 '문제'가 무엇일까? 그럼 우리 '무엇'을 해볼까? 라는 고민을 끊임 없이 하던 와중이라.. 'problem'을 제대로 규정해 'project'로 만들고, 'solution'을 찾는 과정에 좀 더 없는 창의력 동원하려는 의지가 생깁니다ㅎㅎ 저는 원래 '솔루션주의자'라고 자평할 만큼 무엇이든 문제 해결에 관심이 있는 인간입니다. 결국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문제의 본질을 파고 들고, 머리 굴리고, 또 굴리고, 사람들 얘기 들어보고, 확보된 정보를 촘촘히 엮어서 좀 더 재미난 방식에 도전해보고... 이런 과정 자체가 즐겁다고 믿습니다.

고마워요. S.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조언이었어요. 제가 기획자라는 인지도 해보고 말입니다ㅎㅎ 기획이 별건가 싶기도 하고. 기자 시절 온갖 아이디어에 쪼일 때, 이런 본질을 알았으면 좋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사실 그동안 쌓아온 경험들 덕분에, 이 책의 주장들이 더 확실하게 그려진 측면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 연결되는 거더라고요. 알게모르게 그동안 좀 자랐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 참 좋네요ㅋㅋㅋㅋ



책에는 회의를 어찌 하면 좋을지, 소통에 대한 팁들도 있는데요... 부끄러운 에피소드를 덧붙이면,

저는 이 대목이 또 마음에 들어.. 제 동료들에게 덜렁 공유를 했습니다. S등급 인재들과 일하고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요. 저는 진심, 우리 동료들이 저기서 설명하는 S등급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설마, 저 대목을 공유한거냐, 미쳤다, 애들 너무 안됐다, 정신차려라".. 라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흠흠흠. 이 조언에 따라, 동료들에게 "미안하다, 내 생각이 짧았나보다, (혹시 압박을 받지 않았기를 바란다..) "고 하는데.. 동료들이 모두, "그 조언 해준 분을 꼭 만나고 싶다, 참 고마운 분"이라 하지 뭡니까.... 다들 스스로 나는 S등급 맞나, 엄청 스트레스 받았다고요ㅠㅠ  역시, 오버했던겁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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