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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ul 21. 2019

<팩트풀니스>팩트의 희망, 지치지 않고 세상을 바꾸기


침팬지보다 나아지기 위한 팩트 폭격


“세상을 실제보다 더 무섭고, 더 폭력적이며, 더 가망 없는 곳으로, 한마디로 더 극적인 곳으로 여겼다. 어떻게 대부분 침팬지보다 점수가 낮을 수 있을까? 눈 감고 찍느니만 못하다니!” (22쪽)
 
깊은 자괴감은 둘째 치고, 반성과 성찰을 안 할 수 없습니다. 책 시작하자마자, 제가 침팬지보다 못한 인간이란 팩트를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질문은 대체로 세계의 ‘오늘’을 토대로 ‘내일’을 예측하는 건데, 저는 맞춘게 거의 없더군요.. 그렇게 잘난척 아는척 다 하면서…
 
위안 아닌 위안은, 제가 특별히 무식한 건 아니라는 점. 대체로 침팬지보다 못하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실제보다 암울한 디스토피아로 보는군요. 그러나 1800년에는 인류의 약 85%가 극빈층에 해당했고, 20년 전만 해도 29% 수준이었지만, 이제 그 비율이 9% 정도랍니다. “눈치채지 못한 사이, 수십억 인구가 비참한 삶을 탈출해 세계시장에서 소비자와 생산자가 되었다”(79~81쪽)는 겁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팩트 폭격
 

저자의 미덕은 어려운 이야기를 아주 쉽고 재미나게 풀어낸다는 건데요. 더 중요한 미덕은 ‘팩트’입니다. ‘팩트풀니스'라는 제목부터 그렇잖아요. ‘사실충실성’이란 번역이 최선인지 모르겠지만, 팩트 폭격 장난 아닙니다.
 
“방글라데시가 독립하고 딱 1년이 지난 1972년. 자녀를 평균 7명 낳고, 기대 수명은 52세였다. 오늘날에는 2명 낳고, 이 아이들은 73세까지 살 것으로 예상된다. 1960년 이집트에서는 아동 30%가 다섯 번째 생일을 맞기 전에 죽었다..오늘날 이집트의 아동 사망률은 2.3%로 1960년의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낮은 수준이다.” (132쪽)
 
“자연재해 사망자 수는 100년 전에 비해 25% 수준. 같은 시기 인구가 50억 증가한 걸 감안하면, 실제 사망자 수는 100년 전의 약 6%. 자연재해 사망자가 크게 줄어든 것은 자연이 변해서가 아니라, 다수가 더 이상 1단계(일 소득 1~4달러 미만) 에 살지 않기 때문” (154쪽)

“예방접종 받는 아이 88%, 전기 공급 비율 85%. 초등학교 나온 여자아이 비율 90%. 자선단체와 언론이 자극적 숫자와 고통받는 개인 모습을 보여주다보니, 왜곡된 시각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발전을 체계적으로 과소평가” (183쪽)
 
아는 만큼 보입니다. 2016년 420만명의 아기가 1년도 못 살고 죽었답니다. 엄청난 숫자입니다. 그런데 그 전해에는 440만명, 1950년에는 1440만명에 달했다고요. 즉 420만명이 측정 이래 가장 줄어든 규모인거죠.. 저자는 침착하고 냉정합니다. 스스로 충격과 두려움으로 서둘다가 저지른 실패담을 적나라하게 고백하는 덕분에 냉정한 데이터 기반 판단이 왜 중요한지 절절하고요. 의사 출신으로 가장 열악한 아프리카 등에서 일해온 보건전문가로서 “자원 배분 우선 순위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 냉정하게 계산하고 효과 있는 것과 없는 것을 파악하는게 중요”하다는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습니다.  

편견과 오해  


더 이상 ‘가난한 개발도상국’이라는 집단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런 간극은 없다고요! 4명 중 1명은 중간소득 국가에 살고 있다는 팩트. 물론 빈곤 국가가 존재하지만 절대 다수는 이미 중간. 여기서 놀라운 건, "다른 극단에는 부유한 나라가 존재한다"고 하면서, 괄호 안에 예시한 것이 북아메리카와 유럽, 그리고 일본, 한국, 싱가포르 같은 일부 국가. 저자는 양극단이 아니라 선으로 분포되는, 대체로 가운데 몰린 점을 강조하고 싶었겠지만, 저는 S Korea 의 위치만 눈에 들어옵니다. 여전히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스스로 폄하하는 경향이 있는 나라의 현재 위치. 저 지도에서 보면 대단합니다.
 

"인류 역사상 강대국 간에 이렇게 긴 평화가 이어진 적은 없었다. 오늘날 갈등과 그로 인한 사망자는 그 어느 때보다 적다." (161쪽)
"1986년 전 세계에 핵 탄두가 6.4만개 있었다. 지금은 1.5만개다." (163쪽)
"2007~2016년 테러 사망자 중 부유한 나라, 4단계 나라(일 소득 32달러 이상) 에서 사망한 사람은 0.9%. 지난 20년 미국에서 테러로 사망한 사람은 3,172명으로 같은 기간 음주 사망자 140만명.. 한 해 평균 6.9만명으로 술을 마시지 않은 피해자만 따져보면 한 해 평균 7500명." (171~172쪽)


'사피언스의 미래'에 대한 낙관과 비관으로 맞붙었던 멍크디베이트 토론에서 스티븐 핑커가 주장했던 내용이 떠오릅니다. 일단 당시 리뷰에서 퍼온 10가지 긍정적 사실. 한스 로슬링의 이야기도 핑커의 주장에 닿아 있습니다. 문명이란게 긴 시계열에서 보면 이런거죠.


스티븐 핑커가 꼽은 긍정적 팩트 10가지

So What?

팩트를 보니 세상이 멀쩡해? 어려운 이들을 돕는 현장에서 보면 화나는 얘기일 수 있습니다. 실제 독서모임에서 이 책의 한계, 역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않았어요. ‘어쩌라고’ 파는 냉정했고, 평균으로 수렴되어 그럴싸한 숫자가 비참한 현실을 가린다고 했어요. 소득 수준을 1~4단계로 분류한 것도 고통받는 이들을 크게 묶어 괜찮게 보이도록 눈을 가릴 수 있습니다. 다 동의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책의 옹호자입니다.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게 위해 애쓰는 분들에게 희망의 증거이거든요.


세상을 즐겁게 변화시키고자 애쓰는 이들에게 세상은 늘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지치는 일이 훨씬 더 자주 일어나요.

변화는 두렵고. 도전은 더 어려운. 그래도 결국 우리가 이겨요.
변화는 두렵고. 도전은 더 어려운... 그런데, 그래도 결국 끝내 변할거란 얘기를 얼마전에 L님과 나눴습니다.“Time is on the side of change”라고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님이 말씀하셨죠. '분노는 나의 힘'이랍시고,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노력도 해보지만, 앞으로 계속 발전할거란 확신, 합리적 이해는 매우 중요한 힘이 됩니다. 저자는 "비록 사소하고 느린 변화라도 조금씩 쌓이면 큰 변화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을 강조하는데, <팩트풀니스>는 제게 딱 그런 효과가 있었습니다. 것봐. 해봐야지. 끝까지 해야지. 끝내 나아지고 말거야. 우린 이만큼이나 왔잖아.

부자나라 사람들이 지구촌 인구 11%인데, 4단계 소비자 시장 60%를 차지한다고요. 그런데 2040년에는 4단계 소비자 60%가 서양 이외 지역에 살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그 나머지 지역에서 부지런히 세상을 바꾸기 위해 질기고 독하게 계속 움직이란 얘기입니다.

정확한 문제 정의와 정확한 솔루션
 

"미국의 1인당 의료비 지출은 약 9400달러로 다른 4단계 자본주의 국가의 약 3600달러보다 2배가 넘는데, 미국시민 기대 수명은 3년 짧다. 1인당 의료비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지만, 미국보다 기대 수명이 긴 나라는 39개국이나 된다.. 왜 같은 비용을 쓰고도 의료 수준이 떨어지는지 자문해야 한다. 답은 어렵지 않다. 4단계 국가 시민 대부분이 당연시하는 기초 공공 의료보험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의료 체계에서 보험에 가입한 부자 환자는 의사를 필요 이상으로 자주 찾아가 비용을 끌어올리는 반면, 가난한 환자는 간단하고 값싼 치료조차 받을 형편이 못 되어 일찍 죽는다." (284쪽)


우리의 위치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건, 정확한 솔루션을 찾는데 필수적입니다. 저자는 개인적 경험을 통해 "두렵고, 시간에 쫓기고, 최악의 시나리오가 생각날 때면 인간은 정말로 멍청한 결정을 내리는 성향이 있다.. 문제가 다급해 보일 때 맨 처음 할 일은 늑대라고 외치는게 아니라, 데이터를 정리하는 것"(335쪽)이라고 강조합니다. 정부가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정확한 상황 판단이 모든 일의 시작입니다. 편견과 오해 대신 팩트와 데이터로 접근해야 합니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간단하지 않습니다. 대개 언론에서 "이러저러 문제가 심각하다, 큰일났다"라며 "정부는 손 놓고 있다"고 비판하면, 정부는 즉각 대책을 만들곤 합니다. 종종 개별적 경험의 문제가 보편적 문제로 비화하기도 합니다.

침팬지보다 못한 상식으로 일을 할 위험을 관리해야 합니다. 민간보다 정부는 특히. 고의성은 없어도, 언론 등을 통해 매개된 세상이 본질과 다를 가능성을 봐야 합니다. 저자 지적대로, 기술, 국가, 사회, 문화, 종교는 끊임없이 변하고 어떤 지식은 유통기한이 짧다면, 지식을 업데이트하는데 필사적이어야 합니다.

"언론인, 활동가, 정치인도 인간이다. 이들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이들도 극적인 세계관의 피해자일 분이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정기적으로 세계관을 점검하고 업데이트해야 하며, 사실에 근거해 생각하는 습관을 키워야 한다." (361쪽)


팩트 그 이후, 해석의 문제

팩트에 충실하라. 모두 동의하겠죠. 그런데, 팩트의 해석도 문제입니다. 후쿠시마 탈출 과정 혹은 이후 사망자 1600명이 모두 방사능이 아니라 공포로 인해 죽었다고 보는 대목(164쪽)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방사능을 피해 도망쳤지만 방사능 때문에 사망했다고 보고된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건데, 어떠한 물질적 인과관계 없이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로 1600명이 죽었다고요?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을 뿐 다른 변수 없이 그리 단정하는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겠다 싶습니다.

"2012~2016년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 열 곳 중 아홉 곳은 민주주의 수준이 낮았다" (286쪽)는 대목도 과합니다. 대표적 사례로 어느 나라보다 빨리 1단계에서 3단계로 넘어간 한국은 그 시기, 줄곧 군부독재가 이어졌다고요. 자유민주주의가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결론으로 넘어가는 건 곤란합니다. 군부독재 국가들이 모두 잘된게 아니듯, 다른 변수를 간과하는게 아닌지요.

팩트를 제대로 보고, 시스템으로 대응하라, 구구절절 공감합니다. 다만 팩트에 매몰되지 않고 깊게, 넓게, 고루 보는 노력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점점 난이도도 높아질 것 같습니다. 팩트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생각할 기회였어요. 이번 독서.


기록 삼아, 좋은 점, 나쁜 점 16가지 올려둡니다.


그리고 나쁜..


한스 로슬링의 조언도 웹에서 퍼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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