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냐 정혜승 Sep 02. 2019

<스윙> '국립'현대무용단의 위엄, 행복한 70분

함께 시와님 공연을 보면서 인사드렸던 몇 몇 분들과 이번에는 무용 공연. 무용이라고요? 제가요? 왜죠?
별 관심 없는 분야이고, 돼지 목의 진주 같은 생각도 들었지만, '잘 놀자', '나를 우선하자'가 목표인 시기인지라, 쫓아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너무나 근사한 90분(이라고 첨에 쓰면서, 아마 이것보다 짧았던 것 같다고 했는데 70분이랍니다! 괜찮아요ㅎ). 행복해서 날아가는 기분. 뒷사람 눈치가 보였지만, 슬쩍 슬쩍 몸을 흔들고, 몸치라도 괜찮아, 살랑살랑 리듬을 타고, 미친듯이 박수를 치고, 목청껏 꺄아아 추임새. 온몸의 피가 뜨거워지고, 제 숨결이 함께 달큰해지는 느낌. 이게 무용 공연이자, 재즈 라이브라 음악에 몸을 싣고, 느낌만 타도 기분이 달라요. 이래도 될까 싶게 너무 즐겁고 신난 시간. 온전히 몰입해서 아무 생각 들지 않는 와중에, 드는 생각은.. 다음 공연 언제 하시나. 아이들과, 공연 좋아하는 친구와, 요즘 힘든 그 언니와.. 또 오고 싶다...

자, 느낌 보시죠. 도무지 영상으로는 현장 분위기 담을 수 없지만.


공연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금토일 3일. 전석 매진이랍니다. 지난해 봄 국립현대무용단 2018시즌 개막작. 예술감독 안성수님 작품. 제가 못 참고.. 국립현대무용단 페이스북 가서 사진 몇 장 업어왔습니다. 공연 중엔 사진을 못 찍고, 앵콜 무대는 찍긴 했는데, 역시 느낌이 전혀 안 살아서. (그러니까 이 글에 쓴 사진의 저작권은 국립현대무용단에 있다고 밝혀두고요^^;;)

현대무용은 어렵고 이해안될 거란 선입견을 버리겠어요. 그냥 보기만 해도 가슴이 뛰어요. 어두운 무대 위에 조명이 쏟아지면, 팔과 다리의 선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숨이 막힙니다. 고운 선을 그리며 몸이 현란한 속도로 팔짝팔짝 뛰고 흔들고 날아갈 때 마다, 미칠듯이 박수를 치게 되요.


남녀 각 8명이 출연했습니다. 시작 인사 때 무대 오른쪽 끝 여성 무용수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정말 키가 큰 분과 키가 작은 분이 나란히 서 있었습니다. 그 순간 울컥하고 좋은 마음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무용수라고 해서 꼭 키가 커야 한다, 아담해야 한다, 그런 거 따지지 않은 점, 키 순서대로 줄 세우지 않은 점, 키가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고 서로 다른 모습에 나오는 몸짓이 각각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것만 중요한 세상. 다름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여주더군요. 본격 공연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감동했어요.


그리고, 솔직히 이 분들 보세요. 어떻게 이보다 더 멋있을 수가 있어요. 인간의 몸이 뿜어내는 매력이 저렇게 강력하다니. 특히 전 오른쪽 모자 쓴 여성에 매료되어, 계속 저 분의 동작에서 눈을 떼지 못했어요. 어느 순간, 옷을 갈아입으시는 바람에 저 분이 누구더라 찾는데 온 신경을 집중.


사실, 남자 무용수들은 과장된 섹시미, 귀엽고 깜찍한 절도미를 보여주는 분들도 눈길을 모았지만, 저는 저 머리 묶은 분에게 대체로 시선 고정. 아마 8명 중에 혼자 머리를 묶어서 눈에 잘 보이는 점도 있었겠지만, 단단한 몸의 근육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아름답다고 밖에 못하겠네요.


무용수들은 때로 모두 무대를 채우며 함께. 때로 혼자, 때로 둘이, 때로 셋이 차례로 무대를 누볐습니다. 때로 아크로바틱한 묘기도 선보였지만, 대체로 흥겨운 음악에 맞춰 인간의 몸이 얼마나 가볍고 날렵한지, 강하고 아름다운지 보여주셨습니다. 몸으로 부르는 노래가 얼마나 근사한지, 잘 몰랐습니다.


그녀들이 귀여운 손짓을 하고, 당차게 팔과 다리를 노닐 때 마다, 온 힘을 다해 무대를 장악할 때 마다, 그 매력에서 빠져나오기 어렵습니다.  


이 공연에서 온 몸의 신경을 뜨겁게 달궈주는 것은 무용수들의 몸짓 뿐만이 아닙니다.  스웨덴 남성6인조 밴드 '젠들맨 앤 갱서터즈'와 콜라보로 무용과 음악이 아주 멋들어지게 어울립니다. 트럼펫과 보컬을 맡은 리더 폴 윌프리드슨은, 아마 이름은 절대 기억 못하겠지만..딱 적당하게 들었다놨다 유머를 구사하는 솜씨는, 그 느낌은, 그와 밴드가 만들어낸 공기는 오래 기억할 것 같아요. 이 분들 한 분, 한 분 너무 재미있어요. In the Mood, Big Butter and Egg Man, Sing Sing Sing 뿐 아니라 자작곡 Bugsy, Ljubljana Swing(류블랴나 스윙)도 있었다는데, 저야 어디서 들어본 정도이거나 낯설거나. 이러나저러나 내내 상냥하고, 따뜻하고, 즐겁고, 신나고, 기분 좋은 소리에 함께 흔들흔들, 함성, 박수. 이분들 인터뷰 영상 찾아왔습니다.


이 분들 다른 공연 영상도 하나 더. 이번 공연에도 연주해주신 All of Me.


공연 시작 무렵, 밴드 리더 폴이 말했습니다. '국립'현대무용단이면, 국립 뭐라면, 스웨덴 밴드 하나 쯤은 뒤에 두고 있어야 하는거 아니냐고요. 아,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어요. '국립'의 위엄을. '국립'현대무용단이 이렇게 멋진 분들인지 몰랐던게 미안해요. 함께 간 일행들은 앞으로 '국립'은 좀 존중하고, 챙겨보자는 농담도 주고받았어요.

공연 말미에 밴드 리더 폴은 또 말했습니다. 오늘 무대를 환상적으로 만들어준 무용수들을 소개한다고요. 그리고 이름을 부릅니다. 김민지, 김민진, 김성우, 김현, 바구히연, 배효섭, 서보권, 서일영, 성창용, 손대민, 안남근, 이유진, 이주희, 정서윤, 조하경, 천종원.. 이렇게 한 분 한 분 이름을 부르고, 한 분씩 나와서 자기만의 개성있는 몸짓 인사를 해주셨어요. 귀엽거나 멋지거나, 어찌해도 대체로 웃음과 박수가 터져나오는 그런 인사들.
김탁환쌤의 '목격자들'에 보면, 상황이 매우 다른 경우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러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그 이후,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마음을 맞추며 불러주는 것에 몹시 감동합니다.

이날 공연은 혜신명수님 따님의 픽. 이런 세상을 알게 해줘서 진심으로 고마워요. 인생의 큰 빚을 진 기분이 들 정도로 좋았어요ㅎㅎ 일단 서울 공연은 끝났지만, 지방 공연을 더 하신다고, 아주 바람직해요. 지역에서도 이 느낌 꼭 느껴보시길. 가족과는 내년을 노려야 하는건지, 이것참 난감하네요. 그러나 또 언젠가 기회가 있겠죠.


이 공연의 한 가지 문제점은... 춤을 추고 싶어 미춰버릴 것 같은 기분. 근데 나는 지독한 몸치. 우리의 언니, 비덕님이 함께 스윙 배우자고 하셨는데, 눈치보고 있다가 손들고 쫓아가겠어요.


공연에 앞서, 밥을 사주시고, 공연 끝나고, 맥주를 사주신 박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선한 눈빛으로 따뜻한 말씀 이렇게 해주시는 분이 계시다니. 오랜 내공이 참으로 은은하게 드러나서 신기했어요. 공연 보여주신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제가 사회적 솔루션에 너무 꽂힌 인간이라는 자각을 해봤습니다. 모든 문제가 스케일을 갖추고 해결할 일은 아니라는 말씀, 곱씹게됩니다. 여러가지로 고마운 마음은 앞으로 갚을 날이 있겠거니 하겠습니다. 설마, 그렇지 않을까요?ㅎㅎ

함께 놀아주고, 함께 웃고 떠들고, 함께 저자 사인회하고, 함께 수다 떨어준, 처음 뵙거나, 이제 두번째 뵌 좋은 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오래 빌붙기 위한 전략을 짜야겠어요.

초상권을 보호하는 흐릿샷. 기분 좋은 밤 기록샷.
매거진의 이전글 소녀상의 힘, 그들이 싫어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