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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Oct 07. 2019

<에트루리아> 오래된 세계를 새롭게 만나다

생각도 못했던 기회에 또 새로운 세계를 만납니다. 정확하게는 '오래된 세계'를 새롭게 만났습니다.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있을라고요.
#트레바리 #국경 클럽의 번개였어요. 르네상스적 지식인 김태형님이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 전시회를 제안했습니다. 일요일 오후는 가족과 보내려 했는데, 가족이 다 바빠주신 덕분에 기꺼이 달려갔습니다.

무식한 제가 에트루이아에 대해 뭘 알겠습니까. 우연히 가게됐을 뿐입니다. 어디서 들어본 기억은 있는 정도의 낯선 단어. 에트루리아.

기원전 10세기, 이탈리아에서 지중해 문명의 빛나는 시대를 이끌었던 에트루리아. 로마에 흡수되기까지 약 1000년의 권세를 누렸던 곳입니다. 화려합니다. 그리스가 제우스, 로마가 쥬피터라 부르는 이를 에트루리아는 '티니아'라고 부르듯,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졌던 곳. 소아시아의 리디아왕국 사람들이 이주한 것인지, 이탈리아 원주민이 세운 것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던 것은 '사라진 문명'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남아 있으되 사라진. 서구문명의 기원을 그리스-로마로 알았지만, 로마 이전에 있던 에트루리아.

아래 사진은 '멘르바가 묘사된 장식 기와'. '멘르바'는 미네르바, 지혜의 여신 아테네입니다. 기다란 키톤을 입고 투구와 방패로 무장한 멘르바. 기원전 2세기에 이들은 이렇게 섬세하게 멘르바를 조각해서, (고작) 기와를 장식했습니다. 기와가 저 정도면, 대체 집인지, 신전인지, 어쨌다는 겁니까. 


아래 사진은 모두 유골함. 왼쪽 상단은 저승으로 가는 마차의 말발굽 아래에 '트리톤'이라고 합니다 상체는 인간이지만, 등에는 날개를 달고, 물고기 꼬리를 한 바다의 신령. 오른쪽 사단도 바다뱀의 몸통을 가진 괴수가 등장합니다. 왼쪽 아래 사진은 사자의 몸통에 독수리 머리를 그리핀과 싸우는 전사들입니다. 오른쪽 아래는 오디세우스와 사이렌을 묘사한 거라고요. 죽음에 이르는 여정에 이토록 화려하게 공을 들이는 문명. 익숙한듯 다른 신화의 서사로 누군가를 잃은 슬픔을 달래고, 사후 세계에 대해 장엄하게 노래를 부르는 에트루리아. 이 유골함들도 기원전 2세기 물건이라는데, 그 시절 장인들의 솜씨와 그 시절 철학자들의 세계관이 경이롭습니다.


가장 왼쪽 '영혼의 집' 유골함은 기원전 9세기 말에 점토로 만든 것이랍니다. 에트루리아 특징이 대부분 나무로  만들어서 '사라진 문명'입니다. 남은게 별로 없어요. 와중에 남은건 상당수 유골함이거나, 무덤에서 나온 물건들. 죽은 이들이 결국 문명을 증명하다니, 영원하게 남았다고 봐야할까요. 기원전 9세기의 유골함 모양은 그 시절 사람들의 집이 저 형태였을거라 추론하게 합니다. 가운데 유골단지는 기원전 7세기 것인데, 망자의 유골을 갈색 단지(올륨)에 넣고, 다시 커다란 화병(돌륨)에 넣었다고요. 설명에 따르면, 그걸 다시 거대한 우물에 넣었다는데, 도무지 이해가 안됩니다. 유골함을 넣은 화병을 우물에 보관했다고요? 먹는 물? 씻는 물? 버려진 우물? 신령스러운 우물?


완쪽 아래는 '디오니스소스 행렬이 묘사된 적화 킬릭스'. 킬릭스는 굽이 있는 두 개의 손잡이가 달린 잔이라고 합니다. 기원전 4세기 말에 저런 잔에 음료와 술을 마시는 에트루리아인들의 삶은 어쩐지 몹시 우아합니다. 오른쪽 '스탐노스'에도 디오니소스가 나옵니다. 포도주의 신, 술을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주는 디오니소스를 곳곳에 새겨넣은 이들은 분명 디오니소스의 시간을 즐겼겠죠. 연회를 즐겼다고 합니다. 여성들도 함께요. 비스듬히 삐딱하게 기대누워 술 마시는 연회. 


기원전 6세기 물을 담았던 '히드리아'. 스핑크스와 날개달린 날, 고양이 등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부케로'는 에트루리아 특유의 도기랍니다. 가마 기술이 발전해 안팎이 모두 검은빛을 띠도록 만들어졌다는데, 어느 하나 평범한 물건이 없습니다. 아마도, 무덤을 제대로 만들어 많은 물건을 갖춘, 즉 지체 높은 이들의 물건만 남아서 그런거겠죠.


기원전 7세기의 전차. 역시 무덤에서 발견됐습니다. 청동과 철로 상감 세공한 정교한 전차. 왕이든 귀족이든 그 누군가를 위해서 공들여 물건을 만드는 장인들이 존재했고, 저 물건들을 아낌없이 저승길에 함께 가져간 권세가 있었다는 거죠.


기원전 8세기말, 에트루리아의 신흥 귀족들은 전사들로 추정되나 봅니다. 정교한 칼과 칼집, 창들입니다.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몸 속으로 잘 찌르기 위해 끝은 뾰족하고, 와중에 칼마다 영웅의 서사를 정교하게 세공해서 새겨넣었습니다. 이런 물건들을 보면, 어쩐지 슬퍼져요.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투구도, 정강이를 보호하기 위한 보호대도, 그 시절 전투가 얼마나 죽기살기로 치러졌는지, 그 역사를 증언하며 남았습니다. 싸워서 승리한 자들의 문명이라 호사로웠을 수도 있고, 그조차 1000년 만에 사라지고, 남은건 이뿐이네요.

저 물병은 과연 물이 새지 않았을지, 고무는 없었을거 같은데 아떻게 했을지. 저 시대에 주방의 필수도구 체가 있다니!


신기했던 동물 창자점. 신의 예언을 점성술사들이 풀어내는 방식은 청동으로 산양의 간을 만들어, 각 부위마다 신과 예언을 분류해 정리.. 그리고, 제물로 바쳐진 동물의 따끈한 간을 꺼내들고, 번개의 모양이 보이는지, 뭔가를 해석해 우주아 자연에 깃든 신의 의지를 전했다죠... 어떤 예언이든, 당대의 권력에 부응하든, 저항을 모색하든, 그들만의 정치에 이용됐을 것만 같은데 말입니다.


이것은 놀랍게도 정육면체 주사위. 정말 무엇보다 오래 남은 놀이기구.


이것은 에트루리아식 피규어랄까요


기원전 6~7세기 에트루리아 귀족들의 장신구입니다. 가운데 윗쪽 안전핀이라든지, 오른쪽 상단의 머리핀, 저는 사실 왼쪽 가장 아래 물건을 보고, 그 정교함에 숙연해지더라고요. 믿기지 않는 섬세함으로 금세공을 하던 그런 문명이, 1000년만에 사라졌어요. 월계관이란걸 실제 금으로 만들어 썼다는 것도, 팔찌의 화려함이 현세의 것보다 더하다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기원전 7세기, 중국은 춘추시대의 전투가 한창이었다고 합니다. 메소포타미아는? 다른 대륙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한반도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이런 문명을 알게 되면, 겸허해집니다.

에르투리아의 언어는 로마제국의 카이사르가 통치하던 시기만해도 이탈리아 중부에서 대부분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죠. 에트루리아에 대한 기록이 그나마 남은 것으로 D.H. 로렌스 덕분입니다. 채털리부인의 사랑으로 유명한 그 로렌스가 1932년 <에트루리아 유적 기행기>라는 글을 남기면서, 우리는 에트루리아 문명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로렌스가 기록하지 않았다면, 유골함과 일부 유적만 남은 그 문명, 로마 이전의 그 문명은 그 언어와 마찬가지로 함께 사라지지 않았을까요.

"무덤 말고는 이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자, 그러니 우리는 이들의 무덤으로 가야 한다. 또는 무덤에서 빼앗은 유물들을 모아 놓은 박물관으로 가야 한다."

로렌스가 남긴 말이라고요. 그들은 대체로 죽은 이를 태워 화장을 했고, 유골함을 만들었고, 유골을 물병에 담기도 했고, 우물에 넣기도 했고, 전차와 투구를 함께 묻기도 했고, 저승 가는 길을 신화로 아름답게 그려내기도 했고, 바다괴물과 괴수들과 싸우는 신과 인간이 끝내 승리하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끝내 없어져버린 고유 언어를 갖기도 했고.. 남은 건 역시 죽은 자에 대한 기록 뿐.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살고 있는 우리는 후세에 어떻게 무엇으로 남을지 잠시 생각해봅니다. 호환되지 않을 칩으로?


남는건 여튼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좋더군요.. 애들 어릴 적엔 용산공원 가끔 왔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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