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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Oct 17. 2019

<속마음 산책> 존재와 존재가 만날 때


백수 과로사 농담에서 어느순간 의례적인 느낌이 사라졌어요. 모처럼 노는 시간을 다양하게 디자인하고 고마운 경험들로 꽉꽉 채운다... 고 하면 매우 긍정적이고요. 잘 놀기 위해서 애쓴다? 뭐 그렇네요.


어제 오후에는 #속마음산책 다녀왔습니다. #당신이옳다 정혜신님의 이 페북글을 본 뒤, 신청했어요. 


제 목표는 단순했어요. 공감 잘하고 싶다,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 덜 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작은 위안이라도 되고 싶다, 말로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마침 시간도 가능하니 가보자. 


공감매뉴얼 목차입니다. 

1. 화자와 산책을 시작하며 첫 질문을 어떻게 해야할까

2. 나를 어디까지 설명하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3. 화자의 말투나 제스처에서 공감자를 테스트한다고 느껴지면 어떻게 해야하나.

4.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화자의 말투나 외모등이 이상하게 거슬리면.. 공감하려 왔지만 호의와 관심이 잘 생기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5. 이야기를 듣다 감정이입이 심하게 돼서 주체 안될 정도로 눈물이 나면 어떡하나

6. 공감을 하기 위해 질문을 하다보니 너무 깊숙이 물은 건 아닌지, 실수를 한 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는데 질문의 기준선이 있을까.

7. 내가 한 질문에 예상치않게 화자가 불쾌하거나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표정을 지으면 어떻게 해야하나

8. 산책을 시작했는데 화자가 말이 별로 없으면 어떻게 해야하나. 계속 말을 시켜야 하나, 말할 떄까지 기다려주는 게 좋을까

9. 화자가 엄마와 겪는 갈등에 대해 얘기하는데 화자보다 화자의 엄마 입장이 더 많이 공감되면 어떻게 하나

10. 화자가 하는 이야기가 내 가치관, 신념과 달라 공감이 잘 안되거나 듣는데 화가 나면 어떻게 해야하나

11. 육아, 양육, 이혼, 사별 등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을 이야기할 때 어떻게 대화를 이끌어가야 하나

12.사고, 학대, 고문 등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을 경험한 사람의 마음을 짐작조차 못하겠는데 공감할 수 있을까

13. ‘죽고 싶다’는 이야기처럼 내가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를 화자가 꺼낼까봐 시작부터 두려운데... 어떡하나.

14.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화자에게 꼭 필요한 말인 것 같아 조언을 했다. 화자도 조언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래도 하면 안되는 말이었을까?

15. 한참 화자가 속을 털어놓고 있는데 종료시간이 다가올때. 어떻게 화자의 마음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매끄럽게 종료할 수 있을까.

16.충조평판을 안하려다보니 고개만 끄덕이다 끝났다. 충분히 공감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땐 어떡하나

자신의 마음을 말하는 '화자'와 '공감자'가 만나서 100분간 산책하기 전에, 혜신쌤의 코칭 시간이 있었어요. 나눠준 책자에도 있지만,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공감이 잘 안되면 어찌할지, 낯선 그 분과의 거리는 어떻게 조절할지, 그리고 사전 질문에 나왔지만 '그랬구나', '힘들었구나' 말만 하면서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건지. 그걸로 충분할까?


"만나기만 하세요. 그 사람에게 집중하면 되요. 존재와 존재가 만나면 나이 성별 학력 선입견 다 무너져요."


한 존재에게 무게를 실어 온전히 집중해본 기억이 있었나... 그런 100분을 가족, 친구에게도 잘 안하는 것 같은데... 이건 성찰의 시간이더군요. 


제가 만날뻔한 '화자'가 오지 않아서, 당초 공감자로 신청한 다른 분과 산책했어요. 어찌할까? 하는데 자연스럽게 그 분이 말문을 열어서 듣는데 집중했어요. 공감공감공감 하면서요.. 그 사연에 집중한 시간,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 수 있지만. 한 존재에만 온 신경을 끌어당긴 시간이라는 거, 가져보셨어요? 


"한쪽은 자기 마음의 바닥까지 말하고, 다른 한쪽은 먹먹하게 듣다 뜨겁게 공감한다..그렇게 살 수 있으면 웬만한 힘든 시간은 견뎌진다. 지옥을 살던 사람도 그제야 편한 숨을 내쉬기 시작한다." 정혜신님의 글입니다. 

설리, 최진리님 생각을 계속 하게 되요. 저는 악플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어요. 실명제는 악플을 줄이지 못했고, 온갖 부작용만 만들다가 위헌결정 받았죠. 그를 해친건 관음적 시선으로 논란만 부추긴 보도들, 악플들이 있겠지만. 그에게 제대로 치유될 기회가 있었던건지. 연예인 매니지먼트는 마음 돌봄도 기본으로 해야하지 않을지, 지옥을 살던 이에게 편한 숨을 돌려주기 위한, 다른 접근과 노력이 있었다면 혹시 구할 수 있었을지.. 마음이 아파요. 


100명을 구하지는 못해도, 다만 몇 명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작은 위안이 될 수 있다면, "당신이 옳다"며 공감하는 노력을 백번천번 하겠어요. 


험담 악담 분노 역시 치유가 필요한 사회의 증거잖아요.. 아픈 사회라는 거잖아요. 서로 위로하고 치유하는 일이 절박한 시대. 실제 책에는 분노하는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는, 뭔가 꽂혀서 독주하는 이의 말을 듣는, 거기에 집중하는 사연이 나옵니다. 그게 뭐라고. 


#속마음산책 아마 #공감인 통해서 꾸준히 기회가 있는 모양입니다. 존재와 존재가 만난다는 건, 기적같은 일. 그런데 가능하다니. 잊지 못할 시간이었어요.


사실 충조평판을 않는건 정말 어려워요. 저보다 나이가 좀 많았던 화자님이 그랬어요. 충조평판, 우리 시대에는 괜찮았는데, 아예 틀린건 아니잖아요? 네네. 다, 도움되려고 그런거죠. 아예 않기는 힘들지만.. 그게 무엇이든 "당신이 옳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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