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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May 03. 2020

<마을의 진화>다들 실패할때 설레는 변화를 만든 비법?


"즐겁게 변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실제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군요. 소멸 위기에서 반전을 모색한 일본 가미야마 마을의 이야기가 설레는 것은 그저 재미로 해본 일들 덕분에 다르게 진화했기 때문입니다. 거창한 목표 대신 소박하고 평범한 상상들이 변화를 만듭니다. 필요한 것은 열린 마음과 다양한 관점, 그리고 거침없는 무한도전. 반해버려 한달음에 다 읽었네요."

흠흠흠. 책 뒷표지에 실린 이 추천사, 제가 쓴겁니다. <힘의 역전> 원고 정리하느라 무척 바쁠 무렵, 마감 날 새벽 2시 넘어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한달음에 후딱 읽고.. 추천사 메일 보내고 5시쯤 잠들었던 설레는 새벽을 기억합니다. 

왜 가미야마로 몰려들까 


일본 산골마을 가미야마. 1955년 2만명이던 인구는 2015년 5000명. 고령화율 48%. 14년 보고서에서 일본 전역에서 스무번째로 소멸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은 곳입니다. 그런데 2008년 이후 8년간 적어도 91세대, 161명 넘게 가미야마로 이주했어요. 웹디자이너, 컴퓨터 그래픽 엔지니어, 예술가, 요리사, 수제구두 장인 등 창의적 직업의 청년들과 IT벤처 기업 10여개. 

2011년 NHK가 처음 보도한 후 대표적 지방재생 롤모델로 각광받는 마을. 이 책은 2016년 '아사히신문'에 연재된 가미야마 사연입니다. 그곳에서 뭔가 변화를 만들어낸건 분명해요. 그런데 왜 왔냐고 물으면 답이 이렇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서 다양성을 허용하는 마음의 깊이를 느꼈기 때문"

"인간관계도 자유롭고 사람과의 거리감도 절묘하다"

"여러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가 모여있고 도시 같은 분위기. 도쿄 같은 도시보다 신선한 자극" 
"외지인에게 개방적이며 긍정적"

"무언가 새로운 일이 생길 것 같은 창조적 분위기"

"설레는 분위기"  (28쪽)


정답 같으면서도 모호합니다. 대체 저런 분위기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책 추천글을 쓴 한종호 선배(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는 "우아하지만 싱거운 스토리에 성이 차질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번역한 서강대 지방재생연구팀과 함께 가미야마를 찾았다고요. (그래서? 뒤에 보세요..)

저는 1월에 추천사를 쓰기 위해 완독한 후, 5월2일 #트레바리 #디지털시대읽기 클럽 첫 책으로 이 책을 골랐어요. 멤버들 독후감 보는데 "가미야마 변화의 눈덩이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묻는 상효님의 질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1990년대 미국 스탠퍼드에 유학하면서 실리콘밸리의 수평적 커뮤니케이션 문화 등 혁신의 분위기를 맛본뒤 고향에 자리잡은 기업가 오오미나미 신야 씨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맞습니다. 그린밸리 라는 NPO를 만들어 많은 작업을 벌였죠. 그런데 저자는 맺음말에서 그의 강렬한 리더십으로 지금의 가미야마가 있다는 가설에 대해 "틀렸다"고 고백합니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사실 오오미나미 씨를 비롯해 출발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작한 국제 풀뿌리 교류입니다. 외국인교사 연수 프로그램도 해봤고, 아티스트 레지던스도 했는데, 별 뚜렷한 목적 없이, '지방재생'을 위해 뭘 해보자고 시작한 일이 없어요.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새로운 일을 벌여요. 


거창한 생각이 아니라 즐거워서, 조금 더 재미있는 마을을 다같이 만들자고 했어요. 정부 주도로 예산을 받는다든지 전폭적 지원까지는 아니었으니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도 없었어요. 외부인이 와도 정착을 압박하지도 않고, 그냥 따뜻하게 대해요. 즐거우니까요. 일로 하는게 아니라 자발적 참여가 대부분이라 강제성도 없고,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진행됐어요. 숫자가 아니라 내용이 먼저였다는 겁니다. 


원격근무와 삶을 체험하는 숙소, '위크 가미야마'라든지, 벌목 목재로 궁리해본 '가미야마 물방울 프로젝트'라든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도록 한 '휴머노믹스', 6개월 체류형 직업훈련소 '가미야마 주쿠', 농업의 미래를 위한 '푸드허브 프로젝트', 공동주택 프로젝트까지, 뭐든 일단 한 번 해봤어요. 스타트업으로 치면 '린인'방식으로 해본거죠. 토론에서 나왔듯이, 사실 잘된 것만 책에 담겨서 그렇지 30년 가까이 얼마나 많은 실험을 했을까 싶어요. 선용님 말씀대로 분명 실패도 많았겠죠. 그럼 그냥 다른거 해본게 아닌가 싶어요. 중요한 건, 끊임없이 새로운 걸 시도했다는 겁니다. 심심하거나 지루할 겨를 없이. 


"이 마을은 여러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어서 3개월 동안 없으먼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납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두근거리는 기분 때문에 가미야마로 향하게 됩니다.... 마을에 무언가를 시작해볼까 생각하게 하는 분위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시험하게 해준다고 할까요. " (137쪽) 

느리게, 여유 있게, 제한 없이


독후감에도 궁금증이 나오길래, 역자인 조희정쌤에게 물어봤어요. 가미야마가 이렇게 변화하는데 갈등은 없었냐고요. 별로 없었답니다. 비결이 '시간'에 있더군요. 가미야마가 국제교류 사업 첫 발을 뗀게 1991년이어요. 마을 단위의 작은 교류. 외국어 지도교사 연수는 93년에 시작해 2005년까지 했어요. 아티스트 레지던스 사업은 1999년에 했고, 이런 일을 본격 벌이게 되는 NPO 그린밸리 설립은 2004년에나 이뤄져요. 공동주택 짓기 시작한건 2017년. 하여간에 거의 30년 가까이 아주 느리게 일이 진행됐어요. 빨리빨리 정신의 우리 같으면 견디지 못할 느릿한 속도. 정부 협력도 숫자에 매달리지 않은채 참 모범적으로 든든하게 이뤄집니다. 

우연히 가미야마를 알게 되어 프랑스 식당을 낸 이는 매년 한 달간 가게를 닫습니다. 유럽에 휴가 겸 연수를 가는거죠. 연중무휴로 노력하면 2호점도 내고 사업을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겠지만, 이익을 많이 내는 것보다 충분히 쉬고 돌아오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112쪽). 스태프까지 공동 대표로 맞이하고 주식을 나눈데다 주3일 쉽니다. 주2일 쉬면 육체적 휴식만 할 수 있지만, 책을 쓴다든지, 근처 창고를 영화관으로 만든다든지, 벌목공 일을 배우거나, 사우나를 만들거나..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하루 더 쉬기로 한거죠. (115쪽) 만약 기본소득을 논의한다면, 이런 모델은 독특하지만 여러가지 맥락에서 유의미합니다. 

불가능한 이유를 찾기보다 가능한 방법을 찾는다는 철학이 그냥 일상에 녹아듭니다. 가미야마의 세 가지 과제라는 걸 보면 1) 주민과 이주자가 서로 대립하지 않는 것 2) 민간과 정부의 협력 3) 세대교체 입니다. 과정을 중시하는데 항상 머리를 맞대는게 기본. 마을을 바꾸는 전략을 위한 실무 집단은 40대 이하로 제한합니다. 마을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작업이라는 이유죠. 

저는 아래와 같은 발제를 제시하고 토론을 했어요. 네. 트레바리 토론은 기본이 3시간 이상이어요.. 


1. 왜 가미야마?

- 이런 도전은 설레는 이야기. 혹하시는 지점은 어떤 건가요?

- 가미야마 변화의 눈덩이는 어디서 시작됐을까요. 그 특이점을 어떻게 만들죠?

-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여유 있는 일상을 꾸려가는 것. 코로나 이후 시대에 되살릴 가능성이 높아졌을까요?

-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내는 재료, 과정은 대체 뭘까요?


2. 현실적 고민들

- 지방자치. 지방분권. 그게 지방의 답이라 했는데 우린 어떤가요?

- 마을과 민관 멋진 협업은 왜 일상적으로 일어나지 않을까요?

- 과연 이기적이고 악한 이들은 없었을까? 갈등은 없었을까요?

- 로컬 혁신의 함정은 어떤걸까요?

다들 설레이고 혹했어요. 누군가 주도하고, 정부가 나서고, 그런게 아니라 작은 시도들, 즐거운 도전들이 뭔가 바꿔낸 이야기잖아요.
열린 소통과 참여도 인상적이란 얘기가 나왔어요. 무언의 압력, 압박 이런거 없이 그냥 좋아서 머리를 맞대고 각자 할 일을 해요. 적극적으로 뭘 요구하는 법이 없는데 자연스럽게 동화되도록 만들어요. 
한종호 선배의 추천글을 보면 "얼핏 시시해보이는 목표를 선정하고 추진하는 과정 전체가 철저하게 주민들의 토론과 참여, 관리 속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거액의 정부지원이나 화려한 전략산업 같은건 없어요. 아무도 조급해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에 집중할 뿐. 


대체 왜 '악인' 없이 다 선하냐는 것도 우리의 질문. 노인은 현명하고 젊은이들은 순수하게 자발적이고. 이게 무슨 교과서 같은 이야기일까요. 사실 꼰대 텃세 같은 것도 있을법 한데 말이죠. 


저는 마침 #힘의역전 당시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을 들으면서 느낀게 많아서 이날 말도 많았어요. 지방을 살리기 위해서는 2500만 수도권 블랙홀의 중력에 맞서기 위해 1300만 동남권 규모가 필요하다거나, 일일 생활권으로 공간을 압축하기 위해서는 수도권과 비교하면 택도 없지만 교통인프라가 더 필요하고, 지역에 인재를 제공하기 위한 교육혁신(혁신도시별로 주제에 맞는 특성화 단과대 구조로 동남권 대학의 전면 개혁을 하되, 퀄리티를 끌어올리기 위해 교육부 예산과 권한을 일부 지방정부에 넘기고, 지역 기업과 대학이 모두 머리를 맞대는 거버넌스를 구축하는거죠)이 필수란 얘기 등이죠. 어차피 이대로 가면 수도권이나 지방이나 미래세대는 암울할 테니까요. 사실 한 사람의 의지가 많은걸 바꾸기도 하지만, 그게 지속가능하기 위한 시스템도 고민해야 하고.. (이 이슈에 관심 있다면 부디 #힘의역전 중에서 김경수지사 인터뷰를 봐주세요!) 

저는 또 마침, 다음 제주 이전의 명암을 조금 봤습니다. 외부인에 배타적인 분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오래 끈질기게 진심을 다하던 과정, 제주대 컴공과 아이들에게 다음의 개발자들이 코딩을 가르치면서 서로 윈윈했던 산학협력, 서서히 달라지는 직원들의 마인드와 빠르게 달라지던 생활패턴, 지속가능하지 못하게 된 변수들 등등. 본의아니게 말이 많았네요. 아, 강릉과 강원도를 바꾼 한 사람의 출발, 테라로사 이야기까지 했군요! 

토론 중에도 고향이든 지방이든 돌아가지 않겠다는 생생한 경험담을 들었어요. 문화 인프라가 없고, 만날 사람이 없고, 트레바리도 없고, 교육의 질은 불만족스럽고.. 반면 해볼만 할 것 같다는 관심도 없지 않았어요. 역시나 책 한 권을 그냥 읽는게 아니라 온갖 질문들을 더 던질 수 있었던 토론. 네네. 기승전 독서클럽, 트레바리. 

제가 하는 다른 클럽 #기막힌논픽션 에서도 한 번 읽어볼까 싶어졌어요. 이런건 나눌 수록 좋고, 이런 공감대를 만들고, 생각을 모으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뭐라도 변화를 위한 꿈틀거림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런 따뜻한 에너지 가득한 책이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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