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을 공부할 생각, 전혀 없던 세속적 인간입니다. 그런데 안재원쌤의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라면 혹하죠. <향연>은 작년 #트레바리 클럽에서 알랭 바디우의 <사랑예찬>과 함께 읽고 토론했던 책. (당시 리뷰를 이제 보니 향연은 완전 겉핥기...ㅠ <사랑 예찬>, <향연> 사랑, 그게 뭔가요 )
안재원쌤과 함께라면 완전히 다르게 볼 기회였어요. ‘sym(함께)+posis(마시다)’라는 'symposion' 은 플라톤 스승 소크라테스와 지인들이 술 마시면서 '사랑'을 놓고 떠든 얘기를 플라톤이 기록한겁니다. 우리도 한 잔 하는 '향연'을 통해 '향연' 강의와 질답 시간을 가졌어요.. (오늘날 심포지엄에선 왜 술이 빠졌..)
안쌤의 설명을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는 두 가지 목적인데요. 하나는 저를 위한 공부 자료. 하나는 결론에서 밝혀보겠습니다. 이하 안쌤 얘기. 안쌤 곁가지 얘기는 회색. 책 원문은 붉은색. 동료들 질문과 제 생각은 괄호 처리.
0.
‘콜레라 시대의 사랑’(마르케스)처럼, ‘코로나 시대의 에로스’ 담론이 나오겠죠. 콜레라와 서구화, 근대화를 겪었던 이야기처럼 ‘사회적 거리두기’가 남녀문제, 가족, 우정에 가져올 변화가 있겠죠.
근대 철학은 기독교로부터 독립하려고 애썼습니다. 이성과 계몽적 주체로서 인간을 봤죠. 네 죄도 네 책임이라고, 모든 행위에 대한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독립시켰죠. 그런데 이성만으로 설명이 안되니까, 이성이 기계에 밀리니, 감성과 감정이 재등장합니다. 마사 너스바움이 그렇죠. 이성(reason)의 종말을 맞아 우리에게 어떤 종류의 가치가 필요하냐고요? 에로스가 떠오를 수 있어요. 비대면이 편해지는 시절에 말입니다. 판단하고 계산하고 예측하는 능력이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면, 더 복잡한 존재로 가지 않을까요? 물론 리더쉽도 바뀝니다. 도대체 어떤 종류의 리더쉽이 Invisible Enemy에 맞서 이겨낼까요? 물리적 전선을 갖고 있는 전통적 리더쉽은 불확실성이 고조된 상황에서 어떤 태도로 바뀔까요?
1.
플라톤은 ‘이데아’, 형상의 철학자로, 도그마틱한 사람으로 이해하는데 사실 그의 철학은 다이내믹합니다. 에로스 철학의 대표인데, 플라톤 보다가 아리스토텔레스 보면…;;;
무튼 책의 배경과 등장인물을 보면, 당시 아테네는 직접민주주의 시대로 대중이 리더가 됐죠. 알키비아데스는 인기 많은 훈남. 젊은이들 지지 속에 펠레폰네소스 전쟁을 이끌었고, 시리아 가서 6만 명이나 죽이면서, 아직 헌법이나 법이 없던 상황에서 플라톤이 '국가'를 쓰게 된 계기가 됐죠.
소크라테스는 가장 못난 사람 중 하나였는데, 내면과 외면을 구분하는 걸 가르쳤어요. 알키비아데스는 가장 겉이 좋은 사람인데 속이 빈 사람으로 나와요. 에로스에는 섹슈얼 인터코스가 필요하다는게 알키비아데스인데,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 소크라테스를 쫓아다녔죠. 파우사니아스가 아가톤(선인)을 쫓아다녔고, 파이드로스와 에뤽시마코스가 연인이습니다. (당시 그리스에서 여성은 논외. 사랑은 지위와 경험, 지식을 가진 남자 어른과 소년의 동성애 기반입니다)
2.
플라톤 작품 중 세 개가 도시 밖으로 나와요. 중요한 겁니다. 플라톤이 영혼의 문제를 다룰 때는 폴리스(국가) 밖으로 나갑니다. '항연' 도입부에 "마침 팔레론에 있는 집에서 시내로 올라가는 중"( 172a)이란 표현이 있죠. 도시 밖에서 도시 안을 보는게 '파이드로스'와 '국가'도 그래요. 우주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영혼이 우주를 어떻게 담아낼지 폴리스 밖에서 보죠.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십니까, 라는 질문. 밖에 나가서 산책을 하고 걷는다는게 그런거여요. 자크 랑시에르가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라는 책을 쓰는데, 진영이 아니라 가장 소외되고 배제된 가장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정치의 진보입니다. 불꽃이 튀는거죠. 정치적 수준이나 생각의 깊이, 총량을 보려면 가장자리에서, 높은 빌딩을 보려면 멀리 낮은 강가에서 봐야 하는 것처럼 말이죠.
3.
파이드로스는 에로스를 위대하다고 하는데, 사랑을 위해 멋있는 척 하고, 사랑을 위해 변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군대에 있으면 얼마나 열심히 하겠냐고, 멋지게 죽으려고 한다는 거죠.(이래서 국가를 위해 군대 내 사랑이 중요하다니..)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쓸 만한 소년 애인을 갖는 것보다 더 크게 좋은 어떤 것이 있을지 나로서는 말할 수 없거든..추한 것들에 대해서는 수치심을,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서는 열망을 갖는 것을 말하네.(178d).. 국가나 군대가 사랑하는 자들과 소년 애인들로 이루어지게 할 어떤 방도가 생기게 된다면, 이렇게 서로를 의식하면서 모든 추한 일들을 멀리하고 명예를 추구하는 것보다 그들이 자기들의 국가를 더 잘 운영할 방법이란 없고..(179a)
4.
파우사니아스는 이에 대해 에로스가 하나일 경우는 맞지만, 파이드로스가 말하는건 범속(판데모스) 아프로디테라고 합니다. 장삼이사의 사랑이죠. 또 다른 하나는 천상의(우라니오스) 에로스가 있는데, 이게 플라토닉 러브의 시작이 되죠. 행위 자체가 그 자체만으로는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네. 다만 행위 속에서 그것이 어떻게 행해지느냐에 따라.. 아름답고 올바르게 행해지면 아름다운 것이 되고 올바르지 않게 행해지면 추한 것이 된다는 말이네( 181a).. 다른 국가들에서는 사랑에 관한 법이 단순하게 규정되어 있어서 파악하기 쉽지만 이곳과 라케다이몬의 법은 복잡다단하네.(182b) 전형적 입법자의 말이죠.
상식적 정의는 기브앤테이크. 온 만큼 되돌려주는 것인데, 친구에게는 즐거움을 줘야하고, 적에게는 괴로움을 줘야 합니다. 전쟁 상태에서는 나이브한 기본 정의인데, 문제는 폴리스 안에서 적이 나오니까 이런 종류의 철학은 역사적으로 극복이 안되요.
우리 법에는 단 하나의 길이 남아 있네. 소년 애인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 살갑게 응하는 일을 아름답게 하려면.... 바로 덕과 관련한 노예 노릇이라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통해 자기가 어떤 지혜에 있어서나 아니면 덕의 그 어떤 다른 부분에 있어서나 더 훌륭한 자가 되리라고 생각하면서 그에게 기꺼이 봉사하려 할 때, 기꺼이 하는 노예 노릇 역시 추하지 않고 아부도 아니라네 (184c)
5.
파우사니아스가 멋있는 소리를 하면서도 대놓고 하지도 못하고, 아가톤이 쳐다보기를 바라는 와중에.. 파우사니아스 말에 아리스토파네스가 '딸꾹질'을 해요. 플라톤의 '향연'이 희극으로도 비극으로도 읽히는데, 이럴땐 코미디인거죠. 플라톤은 섬세한 사람입니다. 문학작품으로 손색이 없어요. (K님, "향연은 세번째 읽는데, 단 하나의 단어도 불필요한게 없더군요. 맥락 없이 나온게 뒤에 가면 다 확인되요")
6.
항연이잖아요. 술 마시고 떠드는 자리. 오늘날 우리도 술자리에 누가 온다고 하면, 누구냐에 따라 반응이 다르죠. 알키비아데스는 당대에 인기있는 사람이었어요. 아가톤이 말하기를, “얘들아, 가서 살펴보지 않으련? 내 지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면 들어오시라 하고, 아니면 우리가 술을 마시고 있지 않고 막 파하려는 참이라고 말하거라” (212 d)
7.
에로스가 '반쪽을 찾는다'면 진정 행복할까요? (아리스토파네스는 인간이 네 개의 팔과 다리를 각각 가졌다가 쪼개지면서 현재의 모습이 됐다고요. 잘려진 반쪽을 찾는게 인간의 본성이라는 겁니다. 남성에게 잘려나온 자들은 남성을 쫓아다니고..) 에로스라는 동사를 따져보면, 그리스어에는 내적 목적어라는 구조가 있어요. I dream a dream, I go home 처럼, 사랑하는 과정이 사랑입니다. 한 번 잤다고 사랑이 아니어요. 죽음 앞에서는 에로스가 생물학적으로 나를 재생산하는게 본질이어요. 그게 계몽주의적 시각이죠. 헤파이스토스는 밤이고 낮이고 서로에게서 떨어져 있지 않는 것, 같이 있는 것을 얘기합니다. 단테의 이야기에서 형수와 사랑에 빠진 이가 지옥에 가서도 손을 놓지 않는게 이런거죠.
8.
소크라테스가 무당 디오티마에게 들은 얘기를 전합니다. (에로스는 포로스(방도)와 페니아(곤궁)이라는 신의 아이입니다) 에로스를 움직이는 것은 운동하는 겁니다. 페니아, 즉 결핍, 부족하니까 자꾸 찾는거죠. 에로스는 아름다운 것에 관한 사랑(에로스)이지요. 필연적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자일 수 밖에 없고.. 플라톤 작품을 이데아나 독트린으로만 보지 마세요.
이 일을 향해 올바르게 가려는 자는 젊을 때 아름다운 몸들을 향해 가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는 하나의 몸을 사랑하고 그것 안에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낳아야 합니다.(210b).. 그 다음에 그는 몸에 있는 아름다움보다 영혼들에 있는 아름다움이 더 귀중하다고 여겨야 합니다(201c)..다음으로 앎들로 이끌어야 합니다.. 아낌없이 지혜를 사랑하는 가운데 많은 아름답고 웅장한 이야기들과 사유들을 산출하게 됩니다. (210d)
9.
(..”영혼이 코스모스 끝까지 올라가는 것이 이데아 아닌가요../ 또 이데아론이라고 읽었는데요?”..) 세상을 설명하려면, 실체, 말이 필요합니다만... 소크라테스는 말합니다. 당신들은 에로스의 효과만 이야기할 뿐 본질이 뭐냐, 아름다움이 뭐냐, 아름다움 자체를 설명하려고 합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내내 내 힘이 닿는 한 에로스의 능력과 용기를 찬미하려네."(212c)
결핍, 부족하니까 자꾸 끌려가게 되고, 그 사람을 못 만나면 힘들고, 그 앞에서 위대한 사람이 말한마디 못하고 쩔쩔매죠. 사포의 시를 인용합니다.... 사포야말로 10대 시인 중 하나죠. 에로스에 빠지면 몽유병 환자처럼, 그 사람을 만나러 버스정류장도 나가고, 강의실에도 가보고 하는 거 아닌가요?
10.
에로스를 보면, 칼로스(아름다움)을 보게 됩니다. 칼로스는 인간이 사는 목적 중 하나죠. 진선미 따지는건 종교인의 몫이고,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아름다운거, 좋은거를 위해 삽니다. (외모지향주의 인가요?) 아름다우면 좋은거죠. (미에 대한 한 가지 기준만 있나요?) 아닙니다. 아름다움의 다양성, 충분히 인정합니다. 이 문제가 Yes or No를 따지거나 답이 있어야 하나요?
아름다움은 어려워요. 진리라든지 옳고 그름은 판정할 수 있지만, 아름다움은 끝나지 않아요. 원래 답이 없습니다.
11.
기억 속에서 자꾸 좋아했던 사람들 찾고, 기억 속에 저장해놓은 옛날 애인을 떠올리게 됩니다. 아름다움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예전 그 사람이지만, 기억이 하는 일은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기억하고 꾸미려하는 거죠. 우리 기억 속에서 아름다움 자체에 대해 생각하고, 기억을 모으고, 스토리도 만들고, 시도 만들고. 아름다움 자체를 보면서,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거죠. 플라톤은 어느 단계에 오면 피지컬 러브를 넘어서서 정신의 갈증, 결핍을 통해 끊임없이 넘어갑니다. 플라톤도 정작 써놓고 보니, 너는 그렇게 사냐고 하면 할 말 없어지죠. 그래서 딸꾹질을 넣고, 당황하게 만들고, 흔들어버립니다. 알키비데우스가 피지컬을 요구하니까.
12.
플라톤의 에로스는 두 가지, 흰말과 검은말이 있습니다. 흰말이 플라토닉 러브라면 검은말이 피지컬 러브죠. 두 개의 말이 끌고 가서 그 힘이 끝까지 가야 코스모스까지 가는 겁니다. 우주의 기원이 아름다움과 에로스죠..
13.
마지막에 보면 소크라테스 선생님은 저들을 잠들게 한 후에 일어나 떠나갔고 뤼케이온, 아폴로 신전입니다. 거기 가서 씻은 후에 다른 때처럼 하루의 나머지 시간을 보내다가, 그렇게 날을 보내고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가서 쉬었다고 했네, 라고 나옵니다. 당시 술문화가 밤새 마시고 일상을 제대로 살아야 해요. 아르테를 지향하는 삶(습관)인거죠. 논 숨 콸리스 에람, Non sum qualis eram.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전날 술 진탕 마시고 개가 된 다음에도 소크라테스처럼 명정을 찾는거죠. 심각한 얘기를 하면서도 너무 심각해지니까 플라톤이 계속 장난을 칩니다. 비극으로 읽든 희극으로 읽든, 플라톤은 인생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 기억들을 모아서 자기 스토리를 하나로 만들 수 있으면 잘 산 사람이라고 합니다.
14.
내가 누구인가를 찾아가면, 에로스 적 욕망이 해소된다고 해요. 없어진 반쪽을 찾더라도 결국 나를 찾아야 합니다. (실컷 에로스를 쫓아 우주의 기원 같은 탐구를 하는데.. 결국 나를 찾는 거라고요? )인간은 원래 비참한 존재여요. (..”플라톤은 연애를 책으로 배운 분 같아요”..) 그의 글에는 개인 경험도 있고, 체험이란게 나와요. 그리스인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은 에페메로스, 하루살이 목숨으로 봤어요.
15.
소피스트는 궤변론자 같지만, 대체로 뭔가에 확신을 갖고 있고. 모든걸 설명할 수 있다고 하는 이들이어요. 고르기아스, 프로타고라스 등. 그들에겐 소크라테스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죠.
16.
페르소나라고 있죠. 에우리피데스라는 극작가는 여성, 거지, 때밀이..뒤집힌 얘기를 합니다. 오비디우스도 그렇죠. 사실 페르소나는 법률 용어여요. 법치가 가능해지는건 로마 이후인데, 그때서야 행위와 사태, 인격이 분리되고 결합됩니다. 내 안에는 무수한 인격이 있는거죠. 시민으로서 인격, 우주적 존재 인격도 있고, 누구의 아버지이고, 친구, 애인이고. 5만원 훔쳤으면 그 행위의 페르소나에 대해서만 처벌받는 거죠. (..”완전히 다른, 엉뚱하게 착한 페르소나를 내세워 관용을 요구하기도 하는데요?”..)
17.
(플라톤의 사랑은 기본적으로 성공한 어른 남자와 소년의 사랑이어요. 지적으로도 권력적으로도 종속적 수직적입니다. 이게 사랑이어요? / 그리스의 사랑엔 여성이 없다는게 불편해요. 디오티마라는 무당만 현명하게 나오는데 마치 뮤즈 같은거고.. 그런데 왜 2020년에 플라톤의 향연을 다시 읽고 있는걸까요?) 사랑하는자와 사랑받는자의 관계는 혁명적인 힘입니다. 한번 빠져버리면 계급, 부, 지위가 다 뒤집혀요. 눈에 보이는게 없죠. 세상을 변혁시키는 가장 큰 힘이 에로스여요. 피부색, 종교, 계급, 지위가 다 없어지는 셈이죠.
18.
다른 것 끼리 합치는게 사랑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것. 이게 정치로 가면, 황제는 불화한 것을 일치시켜주는 사람이죠. 서로 안 맞는 걸 화합시켜주는게 그의 일이죠. '대사랑', 그게 정치여요.
우리는 '향연'을 '향연'을 통해 배웠습니다. 마시면서 떠들고 얘기하고, 생각을 나누면서 지혜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 그런 마음으로 간단 정리나마 이렇게 정리해 공유해봅니다. 훗날 기독교 영향이 있었다지만 '플라토닉 러브'라고 부르는 플라톤의 사랑론. 아름다움 그 자체를 추구하는 에로스.
결국 인간이란 존재가 무엇으로 사는지,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하는지, 에로스가 답이 아니더라도 찾아가는 여정이 될 수 있겠죠.
안재원쌤, 감사합니다^^
안쌤 사부님인 이태수님의 강연 영상. 안쌤이 강추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