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에 숨을 죽인건 우리 뿐이 아니었죠. 2억8000만 명이 중국에서 다섯 차례의 대결을 시청했다고 합니다. 이듬해 5월엔 커제가 알파고에게 패했죠. 저자는 이 사건을 놓고 "중국에게는 인공지능 부문의 스푸트니크 모멘트"라고 합니다. 이른바 후발주자가 기술 우위에 충격을 받는 순간. 러시아가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1957년 먼저 쏘아올린게 미국이 12년 후 달 착륙을 실현하게 된 계기가 된거라죠.
중국 정부는 2030년 세계 탑을 목표로 합니다. 2017년 전세계 AI 벤처펀딩 총액의 48%가 중국에서 이뤄졌어요. 저자는 "딥러닝의 불씨를 지핀 것은 서구이지만, 불붙은 AI가 만들어내는 열기의 최대 수혜자는 중국일 것"이라고 자신합니다.(33쪽)
이 책은 #트레바리 #디지털시대읽기 2020년 2월의 책입니다. 상당히 재미있었는데, 그때는 바빠서 정리를 남기지 못했어요. 기억도 좀 가물가물하지만, 몇 줄 정리 남겨놓은게 있어서 마무리합니다.
AI에 대한 책은 꽤 많이 나왔는데, 이 책이 '남다른' 이유는 사실 저자 때문입니다. 리카이푸는 대만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공부했고, 애플과 MS, 구글에서 일했어요. 구글차이나 사장 출신이죠. 2009년 시노베이션벤쳐스를 창업해 20억 달러 펀드를 운영하며 중국의 차세대 유니콘을 키우려 합니다. 즉, '중국인'의 관점, '중국뽕'으로 가득한 책입니다. 중국에 대해 좀 더 알게된 기분입니다. (심지어 모임에서는 멤버 중 진정한 중국 전문가 C님이 계셔서 발제도 들었어요. 대박이었죠)
제 발제도 첫번째는 중국에 대한 이야기. 저자에 따르면 "중국에서 성공한 인터넷 기업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무자비한 경쟁의 장을 정복"한거라고요. "속도가 생명이고, 모방은 당연시되는 관행이며, 경쟁자들은 시장에서 이기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원형경기장의 검투사"들이 중국의 기업가입니다. 중국이 미국을 앞질러 제1의 데이터 생산자, 대체우주를 이루는 독특한 테크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자부심이 가득합니다.
국내 기업도 중국 기업의 규칙 위반, 모방, 표절, 무단이용, 기술유출에 골머리를 앓는다는 뉴스를 본지 오래됐는데, 저자는 그게 중국의 강점이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초경쟁 사회. 규칙이나 룰 따위 신경쓸 겨를이 없고, 승자가 역사를 쓴다는 거죠. 실제 사례들이 나오는데, 솔직히 무지막지합니다. 우리 같으면 맨날 두들겨맞고 포기할법한 '반칙'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발제에도 넣은거죠. 뻔뻔해도 괜찮아, 무규칙 경기가 경쟁력이냐고요. 그런데 저런 게임의 룰이 따라잡는 속도를 무척 빠르게 만듭니다. 중국이 무섭게 치고올라간 배경이 저런 문화와 풍토였나 싶습니다.. 중복투자도 어마무지한데, 그것도 다 경쟁력이란게 저자의 입장. 대륙의 스케일은 약자나 패자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도 중국이 끝내 이길 가능성을 높입니다. 여기서 '중국이 이긴다', 자본의 시대에 국가의 승패를 다툴 일인가 싶은데 중국 마인드는 최소한 그래 보입니다.
저자는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 자료를 인용, AI로 인해 2030년까지 세계 GDP가 15.7조 달러 늘어날 것이고, 이 중 중국 몫이 7조 달러로 북미 증가분인 3.7조 달러의 거의 두 배라고 추산합니다. “AI세계질서의 재편은 테크 패권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며 살아온 미국인들에게는 정신이 번쩍 드는 일”이라고요. (이런 국뽕이라니ㅎㅎ)
고대 중국의 학자들은 옛 성현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가르쳤다. 완벽한 모방이 지혜를 터득하는 바른길. (으하) 거기에 결핍의 심리가 더해진답니다. 수세기 빈곤에서 벗어난 1세대들이라 나만 가난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겹쳐 신산업에 뛰어들려는 의지로 이어진다고요.
"웨이보 순자산가치는 트위터보다 높다. 디디추싱의 하루 차량 공유 수는 우버가 전세계에서 제공하는 수보다 많다. 중국판 버즈피드 터우탸오는 가치가 몇 배. 제품 베끼기, 상대에 대한 중상모략, 심지어 구금도 동원한다.." (83쪽) 중상모략, 구금까지 동원해도 어찌됐든 이기면 된다는거 같습니다. 저자의 중국 자부심은 대단한게, 미국 기업들이 좋아요 등 온라인 활동 데이터만 수집하고 있을 때 중국 기업들은 진짜 세상의 데이터. 무얼을 언제, 어디서 물리적 구매를 하고 식사를 하고 화장을 하고 교통수단 이용했는지 데이터를 수집하기 때문(110쪽)에 더 대단하다고 보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쟁은 그렇다쳐도, 중국이 빅브라더로 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별로 없습니다... (빅브라더에 대한 반감은 조지 오웰 시대와 달리 서구 중심적 시각인가 스스로 돌아보기까지 했네요..)
중국 이 정도다, 정리 좀 더 붙여보면..
- 2014년 이전 3년동안 중국 VC 펀딩 총액은 30억 달러에서..2014년 120억 달러로, 2015년에는 260억 달러로 증가
- 중국 O2O 이용자들 65%는 앱사용으로 식사비 지출 증가. 판매자 등록, 주문 접수, 음식 배달, 결제처리까지.. 중국 O2O 챔피언들은 이용자들 개개인의 소비 패턴과 습관에 대한 풍부한 데이터를 축적.
- 모바이크는 하루 2200만 승차 기록. 창업 3년 뒤 2018년 왕싱의 메이투안-디엔핑에 인수. 27억 달러.
- 위챗에서 AI 업계 소식과 전문가 분석, 개방형 대화 기능 제공하는 미디어 회사만 13개. 등록 이용자 100만.
- 중국 과학기술부는 엔비디아 칩보다 성능과 에너지 효율 20배 뛰어난 칩 개발한다는 구체적 목표
저자는 "도덕적 합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미국식 기대가 중국 정치문화에는 없다. 장기적으로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는 더 큰 사회적 공익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기술을 이행하기에 충분한 이유"라고 설명합니다. 뭐가 맞다는게 아니라 중국은 이렇구나 보게 됩니다. 중국의 AI 실례 중에 잼난 거.. 쯔제탸오둥은 가짜라고 라벨이 붙은 데이터를 이용해 알고리즘 하나에는 인터넷에서 무분별하게 도는 가짜뉴스 식별하는 훈련. 다른 알고리즘에는 가짜뉴스 작성 훈련을 시켰다. 서로 속고 속이는 대결을 펼치게 했다는데요 (197쪽) 트럼프와 CNN이 서로 가짜뉴스라 하는 와중에 실제 가짜뉴스 잡는 것도 중국이 빠를까요?
AI가 초래할 위기는 초지능이 아니라 일자리와 불펼등 위기란 지적은 서구의 AI 전문가들 이야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저자는 기본소득 대신 사회적 투자급여라는 개념을 제안하는데, 더 친절하고 다정하고 창의적인 사회를 촉진하는 활동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사람들에게 정부가 지급하는 급여입니다.케어, 지역사회 봉사, 교육 등에 사회가 보상해주는 구조죠. 이건 참고할만.. (381쪽)
중국은 앞뒤 따지지 않고 무조건 투자하고 지원합니다. 중국의 기업들은 저자 말마따나 무한경쟁 속에 미친듯이 성공을 추구합니다. 이거야 뭐 미국이나 우리 기업과 다르지 않지만 정부도 앞뒤 안 따지고 무조건 밀고 나갑니다. 이건 확실히 다르죠. 중국의 AI 윤리까지 걱정해줘야 할 상황은 아닌데, 디지털 플랫폼 경제 특성 상 중국의 텐센트, 알리바바가 국내 기업도 다 삼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승자독식 동네이니까요. 늘 주장하지만 디지털 세상에선 미국 기업들이 유럽을 다 삼켰잖아요.. 그렇다면 중국의 스탠다드에 대해 관심을 가질 이유는 있습니다. 중국 저자의 자화자찬이라고 보지 않는건 중국이 이 분야에서 순식간에 우리를 앞지른걸 알기 때문이고요..
하여간에 맨날 구글, 페북 얘기만 보다가 흥미로운 독서였어요. 이 책의 흥미 포인트 하나 더 덧붙이자면.. 저자의 개인적 경험 때문에 책 막판 분위기가 사뭇 달라져요. AI 전도사께서 잠시 삶을 돌아보는 얘기랄까. 사실 인생 뭐 있나요. AI 타령을 해도 그냥 그런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