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콜레라가 발생했답니다. 그런데 건국 50주년 기념식 하루 전날. 수백 만 명의 관광객들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자 이탈리아 총리는 국제위생협약을 위반하기로 작정했고 비밀 유지에 돌입합니다. 기자들의 입을 막기 위해 뇌물을 주고, 콜레라라는 단어가 포함된 전보를 가로채서 검열하고, 정보 유출 가능한 이의 전화를 도청해 투옥 위협을 했어요. 이듬해까지 이탈리아의 비밀스러운 콜레라 유행으로 사망한 이가 1.8만 명. 프랑스와 스페인으로 질병이 확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국 관리들도 그 은폐에 가담한게, 스노든의 폭로로 밝혀졌다니(193쪽), 스노든 아니었으면 묻힐 뻔한 역사입니다. 이런 일이 이것 뿐이었을까요?
2002년 중국 당국은 SARS(사스) 발생을 공식적인 국가 기밀로 취급했다고요. 이후 바이러스 존재를 시인하고도, 잘 통제된다, 안전하다, 사실과 다른 얘기를 했고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2012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메르스) 처음 발견한 전문의 알리 모하메드 자키 박사의 입을 막으려 했고, 그는 결국 일자리를 잃고 이집트로 이주했다고요. 민주주의 국가 인도 역시 2010년 NDM-1 정보를 은폐하고 새로운 병원체에 대한 연구가 불법이라고 위협했다고 합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계를 뒤흔들지 않았다면 관심 갖지 않았을 내용. 작심하고 온갖 바이러스, 판데믹 책 중에 골랐어요. 고전으로 꼽히는 윌리엄 맥닐의 <전염병의 세계사>는 2005년에 번역됐지만 실제 1998년 책이라 좀 더 따끈한 걸 찾고 싶었고, #트레바리 #기막힌논픽션 클럽에서 보기 딱 좋게, 과학전문기자가 2016년에 낸 논픽션입니다. <열병 The Fever>이란 책도 냈던 소니아 샤는 광저우의 야생동물시장을 비롯해 전염병에 관련된 세계 곳곳을 취재하고 기록했습니다. 당연히 코로나19 얘기는 아닙니다. 주로 콜레라 사연이 많긴 하지만 에볼라나 메르스나 사스나, 질병과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세계 풍경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2020년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방역보다는 이해관계를 중요시했던 각국 정부의 예전 대응이 놀랍다면 놀랍습니다.
1990년대 초 중국 경제가 매년 10% 이상 성장하면서 신흥 졸부 계급을 위한 야웨이(야생동물) 요리 수요가 높아졌다고요. 밀렵꾼들은 시골 지역으로 더 깊숙이 들어갔고, 인간과 접촉 않던 동물들과 가까워지죠. 2003년 코로나 바이러스의 일종이 관박쥐로부터 너구리, 사향고양이 등 다른 야생동물로 전파되면서 돌연변이를 일으켰고 인간에게 감염됩니다. 당시 8000명이 이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에 감염됐고, 774명이 사망했다고요. (33~34쪽) 자꾸 코로나 얘기가 나오는데, 인간이 걸리는 감기의 약 15% 정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분류된다고 합니다.
인구도 늘고, 고기 먹는 이들도 늘고. 말레이시아에서는 양돈장 규모가 커지면서 숲과 가까워진 결과, 니파 Nipah 라는 박쥐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넘어오게 됩니다. 남아시아 유행병인데 방글라데시에서도 거의 매년 발생하고 감염자의 70%가 사망한답니다.
사람의 배설물이 콜레라의 주 감염원이 된 것처럼 동물의 배설물도 관리가 더 필요합니다. 길거리 개똥조차 병원체의 원천. 미국에서 양돈 농가는 1959년에서 2007년 사이 20배 증가하고 평균 규모는 300배 늘었어요. 덕분에 미국에서는 가축이 인간보다 13배 많은 배설물 생산하고 신종 병원체에 새로운 전파 기회를 제공한답니다. 미국에서 사육 중인 소의 절반이 STEC(장출혈성 대장균)에 감염된 걸로 보는데 1982년 첫 보고 이후 매년 7000명의 미국인이 감염된다고요. 질병 참 오묘한게, 독성 강한 STEC 중에 ‘O104:H4’라는게 있는데, 2011년 오염된 씨앗을 거쳐 유럽에서 4000명이 감염되기도 한 병입니다. 증세가, 인지 능력이 흐려지고, 적절한 단어를 떠올리지 못하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게 되는 그런 질병이라네요. (131쪽)
1801년 토마스 제퍼슨 정부의 부통령까지 한 애런 버. 끝내 스스로 정치권력이 됐지만 사업 이유로 뉴욕시의 공공 수도 개선방안을 무산시켰습니다. 그가 설립한 맨해튼 컴퍼니는 수익을 위해 문제를 알면서도 50년 간 오염된 지하수를 뉴욕 시민에게 공급했습니다. 1832년, 1849년 두 차례 콜레라 유행이 모두 그 기간에 발생했다고요. 이 회사가 바로 JP모건체이스의 모체랍니다.(183~184쪽) 이데올로기적, 상업적 고려에 눈이 먼 부패한 정치 지도자들이 검역과 격리를 방해한 사례는 당연히(?) 이 외에도 꽤 많다고 합니다.
황색포도상구균(MRSA)환자 가운데 30~100%가 처음에는 효과없는 항생제로 치료하는데, 이건 항생제 남용에 따른 약물 내성 문제.(203쪽) 문제는 축산 및 제약 업계, 의사와 병원의 재정 이익을 위협하려는 시도는 다 실패했다는 겁니다. 무려 1977년 미국 FDA는 가축에 대한 항생제 이용 금지를 제안했으나 의회가 반대했고요. 오래 지지고볶다가 2012년에야 연방법원이 항생제 소비 관행을 규제하라 명령했고, FDA는 2013년 고작 자발적 지침만 냈다고 합니다.
"새로운 전염병은 비평가 수잔 손탁이 말한 것처럼 ‘도덕과 예절의 거침없는 붕괴’를 발동시킨다." (218쪽)
콜레라가 확산될 때, 1830~1840년대 미국인들은 아일랜드인들을 불결하다며 비난했습니다. 1832년 펜실베이니아 숲에서 57명의 아일랜드 이민자들을 몰래 대량학살한 사실이 후일 밝혀집니다. 1850년대에는 성지순례 하지에 참여한 이슬람교 순례자들이 타겟. 실제 1865년 1.5만명의 하지 순례자가 사망했는데(223쪽) 서구에서도 쉽게 발병했음에도 불구, 일단 아시아 탓 하고 봅니다. 서구 엘리트들은 메카가 위험하다는 둥, 영원한 골칫거리라는 둥. 1890년대에는 동유럽 이민자들이 폭력에 시달리는 희생양이 됩니다. 대체로 약한 국가에서 온 이민자, 아시아인들을 겨냥하는 서구인들의 심리가 2020년 코로나19 사태에 한국의 일부 언론이 '대림동'을 바라본 시선과 다르다고 하기 어렵네요.
1985년 미국 연구자들은 잘못된 자료에 기초해 우간다의 취학 어린의 3분의 2, 케냐 인구의 절반 가량을 HIV에 감염시켰다고 봤다네요. 이건 새로운 형태의 증오를 불렀고, 아프리카인 책임론에 분개한 남아공 타보 음베키 대통령은 HIV 존재 자체를 부정했답니다. 즉 에이즈인데 영양실조와 빈곤의 신조어라고 하고, 치료제 제공을 거부했다고요. 2000년~2005년 30만명 이상의 남아공 에이즈 희생자가 효과적 치료를 받지 못해 조기 사망한 걸로 추산됩니다. 미국 상원은 동성애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에이즈 교육 자료에 대한 지원을 거부했고요. (227~228쪽). 2003년 캐나다는 홍콩에서 돌아온 주민이 사스에 감염됐다는 이유로 모든 아시아인을 기피하기도 했어요.
에볼라가 무섭다는 건 좀 과장됐다지만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전세계 고릴라 개체군의 3분의 1과 그에 버금가는 침팬지의 생명을 앗아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2015년 잠잠해지기 까지 1만명 이상 사망했고요. 사람도 사람이지만, 가축 질병에 수십 만 마리씩 생매장 하는 것도 끔찍한데, 바이러스 탓에 동물도 희생되는군요. 이건 정말 생각못했어요. 당연한건데 말이죠. 근데 책에 나온 판데믹의 사례들은 사실 몇 천, 몇 만 명의 희생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게 적아보이는게 2020년의 문제여요ㅠㅠ
5월26일 현재 전세계 코로나19 확진자는 550만 명. 사망자가 34만 명에 이릅니다. 우리는 1.1만명 확진 판정에 267명이 숨졌지만, 세계 현황을 보고 있으면 아찔합니다. 뉴욕타임스 5월24일자 저 1면은 초현실이어요.. 코로나19 사망자의 1%인 1000명의 이름과 나이, 거주지, 직업으로 1면을 채웠어요. 어떤 내러티브도 없이 지면을 거대한 공동묘지로 만들었어요.. '우리'를 추모하는 마음, '미국'을 직시하는 시선.
물론 계절성 독감으로 전세계에서 해마다 50만 명이 사망한다는 추산을 감안하면, 이런 코로나 종류의 바이러스들이 실상 몹시 힘이 세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사스로 난리났던 시절, 중국 광저우의 류젠룬이라는 의사가 친척 결혼식 참석하느라 여행갔다가 같은 호텔에 묵은 12명의 투숙객에게 감염시켰고, 24시간 만에 그의 바이러스가 5개국으로 전파된 사례가 나옵니다. 류젠룬의 바이러스는 최종 32개국으로 퍼졌죠. 이게 다 비행기로 연결된 세상 덕분입니다. 한 사람의 감염자가 전세계 집단발병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시대. (93쪽) 근데 디지털주의자로서 연결된 세상이 무섭다는 생각은 이번에 처음 해본 것 같습니다. 비행기를 타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는 인식도 처음 가져봅니다.
개인적으로 더 무서운 건 바다여요.. 기상이변으로 난류가 바뀌고, 플랑크톤 생태계가 바뀌면서 감염원이 되는 사례가 꽤 나와요.. 1990년대 들어 거의 100년 만에 남미에 콜레라가 등장, 93년까지 감염자 100만명, 사망 9000명을 기록하게 된 배경도 사실 난류와 플랑크톤 덕분이라고 하네요. 바다가 따뜻해지면서 2006~2008년 미국에서는 비브리오 감염이 43% 증가했고요. (296~299쪽) 지구온난화로 감염성 곰팡이가 증가하는 사연도 섬찟합니다. 막연하게, 온실가스, 기후온난화, 해수면 높이, 이런 단어들 사이를 헤매던 중에, 우리와 아직 만나지 못한 바이러스가 있을 수 있고, 갑자기 다른 기후대의 질병이 찾아올 수 있다는 걸 실감합니다.
과거에 우리가 병원체를 이기고 살아남는데 도움을 주었던 똑같은 유전적 변이체들이 지금은 다른 질병에 걸릴 위험을 높인다는 것도 우울합니다. 적혈구를 변형시키는 겸상 적혈구 유전자는 말라리아 사망률을 대폭 낮춰주면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확산됐고, 2010년 500만명 이상의 유아가 이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답니다. 그러나 이 유전자는 말라리아를 이기는데 도움이 되지만, 현대 의학의 도움이 없다면 치명적일 겸상 적혈구 빈혈증에 취약하게 합니다. 수면병을 이겨내는데 도움됐던 유전자가 신장 질환 위험에 빠뜨린다거나, 현대 유럽인들 70%에 존재하는, 나병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해주는 유전적 돌연변이가 지금은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 같은 염증성 대장 질환과 관련된다거나. (331~332쪽) 이런 사례들 무섭습니다. 인체의 신비가 너무 오묘해서 그런듯요.
뉴욕과 파리, 런던 같은 도시들이 콜레라의 도발에 대응하는데 거의 10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주거 방식을 바꾸고 식수와 하수를 정비하고 공중보건을 관리하며 국제적 협력을 도모하고 건강과 질병에 대한 학문을 이해해야 하는 것.. 저자는 "대유행병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란 이런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메르스 사태를 통해 뼈아픈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정부의 기민하고 꼼꼼한 대응은 수업료를 치른 셈이죠. 그런 수업이 없었다한들, 현재 다른 국가의 대응을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한국의 건강보험을 아무렇지도 않게 봤는데 그게 아니었던거죠. 정부 대응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이해하면, 분명 이번 판데믹은 세상을 많이 바꿀 수 밖에 없습니다. 인류는 2030년 대다수가 대도시에 살게 된다지만, 위생적인 곳이 다수는 아닙니다.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빈민촌이 훨씬 더 많을 겁니다. 판데믹에 치명적인 빈민촌, 난민촌. 혹은 피해상황 집계조차 어려운, 가난한 나라의 마을들.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지금과 완전히 달라져야 마땅합니다. 다른 나라 상황을 흘깃하며 비교할게 아니라, 연결된 세상에서 함께 돌파구를 만들어야만 합니다. 교과서적인데 그게 아니면 답이 없으니까요.
"종간 경계를 넘어 전파되어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병원체는 분명 위험한 존재이지만, 그것은 사실 대유행병으로 향하는 여러 단계의 여정에서 겨우 절반에 이르렀을 뿐이다. 나머지 절반의 운명은 사회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생물학적으로 말해서, 인간의 협동은 굉장한 것이다. 우리는 지구상의 다른 어느 종보다 더 빈번하고 더 강하게 더 대규모로 협동한다." (175쪽)
인간의 협동은 굉장한 것, 마치 주문처럼 들립니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어요.. 어떤 정부가, 어떤 기업이, 이해관계 때문에 방역을 소홀히하거나 질병을 숨기는 일은 앞으로도 있을 수 있습니다. 굳이 마스크 쓸 필요 없다고, 락다운 안해도 된다고 근거 없이 주장하는 이들도 언제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아마 반복되는 역사를 겪을 것이고, '운명은 사회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의해 결정'되겠죠. 정신 바짝 차리고 2020년대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잘해내지 못하면, 어찌될거 같습니까..
판데믹에 대한 정보는, 책을 이제야 관심갖고 봤듯이, 앞으로 계속 중요할 것 같아 책의 주요 내용을 이렇게 남겨놓습니다. 이 책 함께 읽은 북클럽의 발제도 남겨봅니다.
북토크1>
- 전염병, 특히 콜레라와 인수공통 감염병의 역사를 살펴본 소감은 어떤가요?
- 전염병은 대체로 인구 과밀 지역에서 위험합니다. 도시화 과정에서 우리가 더 신경써야 할 지점은 무엇일까요?
- 전염병은 “도덕과 예절의 거침없는 붕괴”를 발동시킨다는 수잔 손탁. 어떻게 보세요?
- 전염병에서 ’희생양’, ‘속죄양’을 찾는 건 역사가 싶네요. 우리는 어떤가요?
북토크2>
- 판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책을 읽고 도움이 된 것이 있나요?
- 국민의 건강보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우선한 사례는 과거에도 현재도 이어집니다.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 새로운 판데믹, 언제든 다시 나옵니다. 우리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