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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un 06. 2020

<크리톤> 소크라테스, 그 마지막 밤의 대화

 


이 시간에 웬일로 왔지, 크리톤? 아직 이르지 않냐?

플라톤의 책 '크리톤'의 첫 줄입니다. 크리톤이 사람 이름이란거 처음 알았네요. 무식해서 미안해요. 크리톤은 그냥 사람이 아니라, 사형 집행을 앞둔 칠순 노인 소크라테스를 탈옥시켜볼까, 걱정되어 달려온 훌륭한 분입니다.

플라톤의 다른 책들도 그렇지만, 첫 줄은 정말 많은 맥락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다음날 죽을 소크라테스를 걱정하는 마음이 절절합니다. 아직 어둠이 깊은 새벽녘이지만 아랑곳 없이 달려온거죠. 소박한 정이 느껴지지만 동네 친구 크리톤은 능력자. 감옥을 지키는 교도관이 친숙한 사이라고, (원칙을 깨면서 은근슬쩍 감옥을 드나들며 돈을 쓰곤 했다며) 뭔가 도모하겠노라 뉘앙스를 팍팍 풍기는 거죠.
탈옥을 권유하는 친구 크리톤과 소크라테스의 이 대화는 '악법도 법이다'로 알려진 그 밤의 이야기인데, 실제로는 그런 대사도 없었고 뜻도 왜곡됐다는 걸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안재원쌤을 모시고 플라톤을 공부한 두번째 시간인데, 책은 짧아 금방 읽었음에도 안샘 말씀 들어보니, 혼자 읽었으면 절대 모를 이야기이군요. 완전 재미있습니다. 첫 시간 '향연' 못지 않게 설레이는 대화를 기록해둡니다. 좋은 사부님을 모시고, 근사한 저녁, 좋은 술, 함께 대화를 나누는 벗까지 있었으니 충만한 시간이었습니다.


0.
플라톤의 아테네는 두 가지 결정적 사건을 겪어요. 더 많이 가지려, 제국이 되려고 남의 나라를 침범한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 통에 시칠리아 가서  죽었죠(6 ). 아테네 역병도 중요한 사건입니다. 사회적 질병, 전염병은 약도 없이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란 걸 증명해주죠. 아프면 가장 먼저 죽는게 의사들이었어요. 두번째는 가족과 친지들. 그리고 신전으로 몰려가서 더 죽었죠.
전시 상황의 리더십과 역병의 시간 리더십은 달라요. 아테네는 '적에게는 씁쓸함을 친구에게 달콤함을' 강조했는데, 역병이 오면 이게 안되요. '보이지 않는 '이니까요. 앓는 이가 내 형제이자 부모인데, 적을 어떻게 죽이겠어요. 근본적으로 사회 질병의 경우. 백신이 없다면 해법은 정치적일 수 밖에 없어요.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게 기원전 428년 오이디푸스 얘기죠. 그 관리를 못했다는 이유로 통치자를 쫓아내는 것. 아테네 역병은 기원전 430년 무렵이었어요. 소포클레스를 보면, 아테네는 파르테논 신전 옆에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우스의 신전을 기원전 416년에 세웁니다. 그 신전은 기도하는 곳이 아니라 치유공간, 병원이었죠.

에우리피데스의 '헤라클레스'를 보면, 보이는 적과 싸웁니다. 힘쓰고 때려부수고 적에게 고통을 주는데 탁월하죠. 하지만 헤라클레스가 미쳐서 적도 죽이고 자기 자식도 다 죽이는 이야기입니다. 재혼한 부인 데이아네이라는 '가짜뉴스'에 속아서 헤라클레스 마음을 사로잡겠다고 독약을 쓰게 되죠. 사람들이 떠드니까, 히드라 뱀의 피가 섞인 독약을 쓰는데 이것은 역병의 모습 같아요. 팩트는 확인하지 않고 이상한 말만 듣고 죽여버린겁니다. 헤라클레스는 원래 노동자의 신, 어깨의 신, 일반 병사의 신이죠. 자, 이런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합의할 수 있는 정의가 무엇이냐. 여기서 국가라는게 등장합니다. 국가와 정의 관계가 본격 시작하는게 '크리톤'입니다.


1.
전통적인 정의,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적에게는 씁쓸함을, 친구에게는 달콤함을. 전쟁의 '정의'죠. 둘째, 정의는 강자의 몫이라는게 플라톤이 국가에서 말하는 겁니다. 이게 단순히 돈 많은 놈, 힘센 놈이 아닙니다. 강자는 그냥 페르소나여요. 군주(monarch), 과두제 올리가르히(oligarchy), 민주주의자들, 자본가들. 다 들어갈 수 있어요.
아테네에서는 데모스(people)가 중요해지다보니, 소포클레스가 극장(학교)도 만든겁니다. 정의가 핵심인데, 스탠다드한 규칙이 필요해졌어요. 다수의 의견이 과연 진리냐, 따지게 된거죠. 헌법이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데모스의 결정 따라 가는게 노모스(Nomos)입니다. (Nomos는 법과 관습, 퓌시스Physis는 자연..) 국가가 정한거니까, 따르겠다는 건 데모스의 룰을 지켜주는 겁니다.

2.
정의롭지 못한 짓을 해서는 안 되네.
그러니 정의롭지 못한 짓을 당하더라도, 다수의 사람이 생각하듯이, 보복으로 정의롭지 못한 짓을 해서도 안 되네. 정의롭지 못한 짓은 결코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네. (49 b)
해롭게 해서도 안 되네. 그들한테서 무슨 해를 입든 말이네. (49d)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와 합의한 것들이 정의롭다면, 그는 그것들을 이행해야 하는가, 아니면 어겨야 하는가? (크리톤 : 이행해야 하네) (49e)

당신은 무엇을 하려는 것이오? 당신이 착수하려는 이 일로, 당신은 당신이 관여할 수 있는 한, 법률인 우리와 나라 전체를 파멸시킬 작정이 아니오? 당신이 생각하기엔 어떤 나라에서 법정 판결들이 무력하게 되고 개인들에 의해 효력을 상실하고 파기된다면, 이 나라가 전복되지 않고 계속 존립할 수 있겠소? (50b)

조국이 무언가를 겪어 내라고 지시하면 두들겨 맞는 것이든 투옥되는 것이든 잠자코 겪어 내야 한다는 것, 조국이 당신을 전쟁터로 이끌어 당신이 부상을 당하거나 죽게 되더라도 지시 사항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 정의로운 것이란 그와 같다는 것을.. 나라와 조국이 명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행하거나 아니면 정의로운 것이 본래 어떠한지에 대해 나라를 설득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오. (51b,c)

3.
소크라테스가 불의를 당했다 해도, 손해를 겪거나, 원치않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다 해도, 남에게 돌려주는 것, 탈옥하거나 복수하는 것은 정의의 원칙에 어긋나는 겁니다. 적에게 더 큰 고통을 주는 것은 좋은데 (헤라클레스 식으로) 가족까지 죽이는게 정의냐는 거죠. 노모스는 대중이 정하는 겁니다. 국가가 결정하는 겁니다. 그런데 개별법을 따지는 건 아닙니다. '악법도 법이다' 라는 말은 원문에 없는데, 일제 시대를 비롯해 권위주의 정부에서 많이들 썼죠.

합의한 것에 대해 약속을 지키라는 얘기죠. 저 사람들이 나를 고밣했고, 저들이 틀렸기 때문에 나를 죽이는 것은 불의하지만, 내가 원칙을 거부하는 건 더 큰 부정.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는 겁니다.

 

4.
소크라테스도 하나의 개인, 완결된 우주로서의 개인으로 본다면 감옥에서 뛰쳐나가야 하지만, 헛된 육체의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잘 사는 것과 못 사는 것을 구분합니다. 연결된 존재죠.
K님 : 너무 슬퍼요. 웬 고집입니까
신에 의탁한 죽음이 아니라 자기가 선택한 겁니다. 역사와 사회를 보고 판단한 선택이니 아름답지 않냐는 겁니다.


5.

복종하지 않는 자는 세 가지 방식으로 정의롭지 못한 것. 태어나게 해준, 양육받게 해준 우리에게 복종하지 않기 때문이고, 복종하기로 합의하고서 복종하지도 않고, 우리가 뭔가를 잘못하는 경우 우리를 설득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오.  (52a)


복종에 합의해줬다, 서양 국가철학의 핵심 의무가 여기서 나옵니다. 나를 있게 해준 것, 태어나게 해주고, 교육시켜주고, 키워준 것. 약속 안 지키면 안된다고요. 개인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사회로 인해 제약될 수 있다는 겁니다.


6.
K2님 :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갖고 있는 딜레마죠. 초등학교는 왜 가야하고, 코로나라고, 왜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고, 마스크 없다고 지하철에서 쫓겨나야 하는지.

우주의 먼지로서 내가 걷고 먹고 사는 건. 내 앞의 인류가 만들어준 것 위에서 내가 두 발로 사는 겁니다. 요즘 어떤 친구들은 개인을 먼저 자각하고, 사회로부터 어떤 혜택을 받지 않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진정한 개인의 탄생인데요. 개인이 역사와 사회성과 무관하게 뚝 떨어진 건 아니지 않나요. 개인은 완결된 존재이자 연결된 존재인데, 자기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의무나 제약을 당연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이상한거 아닌가요? 소크라테스를 다시 읽으면서 고민했어요. 진짜 엉망인 규정을 지키라 하는데, 이 다음에 규정을 바꾸도록 노력하지만, 지금은 지켜야 한다는 거죠..


K3님 : 아들과 군대 문제로 이런 맥락의 대화를 가졌어요. 그런데 국가와 사회에 대한 책무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가르친 적이 있었나 싶더군요. 또한 평등을 가르친 적도 없어요. 내가 불이익을 받았으니 너도 받아야 한다는 건 평등이 아니잖아요. 저이가 이익을 받고 있으니 나도 이익을 달라 해야지..  

K님 : 군대는 잘못된 예 같아요. 국가보안법과 비교해야죠. 국보법으로 사형당하느냐 마느냐. 다수의 국민이 소크라테스에게 문제 있다고 생각했다는 건데요. 전통적 가치체계 무너지고, 국가가 나에게 해준게 뭐 있는데, 신이 뭔데.. 이런 질문으로 사람들을 부추겼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7.

국가가 성립되기도 전에, 책무를 이야기합니다. 당시 아테네는 법도 없었고, 투표도 매번 달랐고, 판례도 뒤죽박죽이었어요. 소크라테스가 대단한게, 그들이 틀렸다고 해서 내가 똑같은 짓을 하면 더 큰 불의라고 한 겁니다. 인류 정의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겁니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짓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는 이야기,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고, 국가에 해를 끼치지 말라고. 나 같은 이가 늘어나면 공동체가 무너진다고요. 공동체에 대해 약속은 지켜야 한다, 합의하고 동의한 바에 대해서는 지켜야 한다고 하죠.

맹세와 약속에 따른 것. 소크라테스가 인류에 가장 기여한 건 약속의 문제입니다. 크리톤 안에 루소가 들어있다고도 할 수 있어요. 동의하고 합의해주는 것.  


8.

데모스에 대해 constancy, 일관성을 갖도록 고민한겁니다. 칼 포퍼가 이걸 비판한 건, law and order, 철인왕에 대해 닫힌 사회라 한겁니다. 전체주의와 공산주의 비판하면서요.  


9.

역병의 시대, 세가지 특징이 나와요. 죽음에 대한 공포감. 그리고, 죽더라도 실컷 놀고 가겠다는 쾌락주의, 또 면역이 생긴 이들은 신도 무서워하지 않고 오만해지죠. 청빈을 중시했던 아테네가 변합니다. 더러운 역병의 원인이 뭐냐, 오이디푸스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하늘과 땅을 더럽힌 이들을 찾아내려 하죠. 고통은 가장 약한 사람들, 약한 소수를 잡게 됩니다. 흑사병 때는 유태인을 잡았죠.

10.
K님 : 그의 최후에 너무 슬프고 화가 났어요. 이제는 소크라테스님을 놓아드리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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