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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Aug 16. 2020

<배움의 발견> 종교와 가부장이 지옥을 만들 때


"주님이 언짢아하고 계셔. 너는 주님의 은총을 저버리고 인간의 지식을 천박하게 탐하려고 하는구나. 주님의 분노가 머지않아 너에게 내릴 것이다" (215쪽)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딸이 대학에 가겠다니 아버지는 분노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빌어 저주합니다. 딸이 세상에 나가는 것이 아버지 권위에 대한 반란 정도로 여겼을 수도 있겠죠. 딸을 보호한다는 명분에도 불구, 그는 권력에 복종하는 가족만 필요로 했을 뿐입니다.


아이다호 산골 모르몬교 가정에서 자란 소녀의 성장기. 고립된채 학교도 병원도   가지 못했지만 끝내 17세에 대학에 입학했고, 케임브리지 박사가  성공담입니다. 역경을 극복하고 자수성가하는 스토리를 좋아하는 미국의 영웅이 될만 합니다. 빌 게이츠와 오바마 전 대통령이 고른 화제작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대단한 이야기이고, 자연과 일상, 인간의 내면에 대한 묘사가 훌륭한 글입니다. 그러나 도저히 감탄할  없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분노를 눌러야 했습니다. 주인공의 가족 때문이죠. 아버지는 부인과 아이들을 학대하는 것을 '남자다움' 혹은 '주님의 '으로 위장한 파렴치한 인간입니다. 노동력 이상의 가치가 없는 자식들을 보호하기는 커녕 인재에 가까운 재난에 노출시키면서도 주님의 뜻이라 하는 가장. 자신의 폭력이 대물림되어 아들이 딸과 여자친구,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어른입니다. 피해망상과 종교적 원리주의에 빠져 '아픈 사람'이라고 넘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아집에 빠진 무능한 인간이 어떻게 가족을 지옥에 몰아넣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맨살을 드러내는 여자는 창녀 취급하면서도 여자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노동력 재생산도구로 이용하는 걸 종교라 부르는 집단에도 몹시 화가 납니다.


매번 벽돌 책만 읽는 #트레바리 #국경 클럽에서 '교육'을 주제로 한 5~8월 시즌의 마지막 책으로 골랐습니다. 저는 사실 일찌감치 찜해놓은 책이었죠. 마스크 쓴채로 토론하면서 제 생각을 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이날 마침 종교단체의 광화문 집회가 강행됐고, 코로나 신규확진자가 두자리수에서 급격히 증가하는 상황. 당연히 책과 맞물려 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종교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호해야 할까

(저는 일부다처제를 비롯해 이 종교 자체가 납득되지 않지만) 모르몬교 중에서도 이단 쪽의 가족이라네요. 정부가 개인을 해칠 것이라는 신념은 2000년 Y2K로 세상이 종말을 맞지 않는 바람에 한 풀 꺽이지만 주인공 아버지의 확신은 세월과 함께 더 완고해집니다. 아이들이 사회주의에 세뇌되지 않도록,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학교에 보내지 않는 '믿음'은 종교의 자유로 봐야할까요? 종교적 신념으로 백신 접종 혹은 병원 치료를 거부해 아이들을 해치는 것도 자유인가요? ㅇㅈ님은 의무화된 공교육을 거부하는 건 처벌할 수 있지 않냐고 했지만, 어떤 홈스쿨링은 괜찮고 어떤 홈스쿨링은 안되는 걸까요?
역시 종교적 이유로 팬데믹 위기에 집회를 강행해 공동체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이들은 어떻게 해야하나요? <힘의역전2> 책을 위해 문정인 외교안보특보와 인터뷰하면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하는 미국인들이 마스크와 락다운을 거부하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문 특보는 '개인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공동체 이익이 더 중요하다’라는 국민적 합의가 존재했기 때문에 우리가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동의한 가치와 규범을 외면하고 '종교의 자유'를 외치는 이들이 등장한 건 사실 미국과 우리가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의 그런 이들 중 공교육과 의료, 공공서비스를 몽땅 무시한 타라네 가족의 사례가 매우 심할 뿐, 아주 개별적이고 특수한 사례 같지 않습니다.

'배움'을 통한 각성, 매트릭스의 알약을 먹을 때


모르는게 약이라는건 개뿔. 아는게 힘입니다. 배움을 통해 주인공 타라는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아버지가 만든 세상의 룰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기 시작합니다. 종교를 앞세운 가부장 세계에서 자식들이 노동력 제공 외에 똑똑해지는걸 싫어하는 부모의 심리는 어쩌면 타당한 것일지도 몰라요. 자식(이라기보다 아들) 출세를 위해 많이 배우라고 했던 한국의 가부장들과 또 결이 다릅니다. 학습을 통해 매트릭스의 다른 알약을 삼켜버린 타라는 균열을 겪습니다. 인종주의와 차별이 일상이란게 뭔가 잘못됐다는 것도 깨닫죠. "내가 자각의 길로 들어섰고, 오빠, 아버지, 나 자신에 관해 아주 기초적인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나는 우리가 오직 다른 사람들의 인간성을 빼앗고, 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담론에 목소리를 보태 왔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 담론을 확대하고 그편에 서는 것이 더 쉬웠기 때문이다. 힘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앞으로 전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287쪽)


이날 토론의 발제를 맡은 파트너 ㅇㄱ님은 이 책의 목적이 무엇이냐, 누구를 위해 쓰인거냐, 하는 질문을 던졋습니다. 끔찍한 상황을 딛고 케임브리지 박사가 된 성공스토리를 팔려는 목적은 아니라고 전 생각합니다. 저는 타라가 스스로를 찾는 과정, 가족이 전부였던 인간이 가족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본능적으로 자신을 치유한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타라 본인의 말입니다.

“I think education is really just a process of self-discovery—of developing a sense of self and what you think. I think of [it] as this great mechanism of connecting and equalizing.”
무려 빌 게이츠가 독후감을 쓴 책이고, 타라와 직접 만나셨군요ㅎㅎ 그래서 저도 사진을 아래 링크에서 가져왔어요.


배움으로 지옥을 자각하는 타라와 달리 아버지의 무지는 지옥불을 더 지핍니다. 정부 혹은 사회가 제공하는 교육, 의료 서비스에 대한 불신에 일루미나티 식의 음모론이 더해지니 가관이군요. 타라는 86년생입니다. 미국의 20세기, 혹은 21세기에도 저런 가족이 타라네 주변에 꽤 있다는걸 보니 당혹스럽습니다. 가짜뉴스에 빠져 망상만 점점 심해지는 이들이 만드는 작은 지옥들이 끔찍합니다. 가스라이팅이라는 표현보다 좀 더 정확하게 규정하고 싶습니다. 해로운 인간이 사람들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지, 그게 가족이나 종교의 울타리 안에서 어떻게 진행되는지 봐야합니다. 탈출에 성공했고, 세상에 눈뜬 타라가 끊임없이 죄책감과 고통에 시달리는 과정을 보면 성장기에 겪은 잘못된 권위란 얼마나 지독한지요.

타라의 학습법, 교육이란


결론이 '교육'이란건 이미 정해진 답입니다. 수많은 타라를 구할 수 있는건 교육밖에 없습니다. 때로 지겹기도 한 학교 교육이 어떻게 사람을 성장시키는지 새삼 놀랍습니다. 그 교육조차 회피하거나, 사회경제적 여건으로 교육받지 못하는 어린이가 세계에 얼마나 될지 아득합니다. 이 집안 일곱 남매 중 셋은 박사가 되었고 넷은 무지한 채로 남는데, 이 갈림길은 그저 성향 문제일까요? 나머지 넷의 성장을 위해 어떤 조치가 가능할까요?

타라네 일곱 남매 중 셋이 박사입니다. 유전자가 훌륭한게 아니었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저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타라의 학습법을 주목합니다. 교과서 구하기도 어려운 타라는 집에서 모르몬 경전만 읽습니다.

"모호한 철학적 주제에 관한 글들이었다. 나는 공부하던 대부분의 시간을 이 추상적인 개념에 바쳤다. 돌이켜보면, 바로 그것이 내 배움이고 교육이었다. 빌려 쓰는 책상에 앉아 나를 버리고 떠난 오빠를 흉내 내면서 모르몬 사상의 한 분파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보낸 그 긴긴 시간들 말이다. 아직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참고 읽어 내는 그 끈기야말로 내가 익힌 기술의 핵심이었다." ((108~109쪽)


그는 '남다른'이라는 표현으로 부족할만큼 혼자만의 '관점'을 갖고, 이해안되는 어려운 말들을 읽고 또 읽습니다. 생각합니다. 자기만의 해석을 하죠. 이게 공부의 본질 아닐까요. 대학 처음 가본게 17세인데 딱 10년 만에 케임브리지 박사가 되다니 대체 뭐냐고 하신 분도 있지만, 사교적이지도 않고 공부 외에 아는게 없었던 타라는 공부의 환경도 갖췄다고 봅니다. 그리고 저는 결국 태도가 관건이라고 봅니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용기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유연성이요. 아버지를 비롯해 공부하지 않은 형제들은 '무지'를 인정하는 대신 가짜뉴스를 '올바른 하나의 정답'으로 믿었고, 새로운 정보를 거부했거든요.

타라에게서 배운 뒤 우리가 할 일은

타라가 성장하고 배우는데 든든한 뒷배가 된 이들이 있었습니다. ㄱㅎ님은 '내 성장을 응원해주는 사람'이 핵심이라고 했습니다. 타라에게 학교에 가라고 하는 오빠, 케임브리지 교환 프로그램을 권하는 교수, 치과 치료비를 해결해주는 비숍... 사실 이 비숍에게 매주 '털어놓으면서' 타라의 치유가 시작된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케임브리지에서 장학금을 제안한 교수는 타라의 재능과 자질을 발견하고 계속 응원해주죠. 저는 정혜신님의 <당신이 옳다>의 힘을 새삼 생각했어요. 타라, 넌 잘 할 수 있어, 잘하고 있어, 이런 '당옳'이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물론 타라가 학비와 생활비를 위해 경제적 극한에 내몰리다가 지원을 받은뒤 "돈 말고 다른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언급하는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교수들이 갑자기,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학비 보조금을 받기 전까지는 마치 흐릿한 렌즈를 통해 그들을 본 느낌이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고, 꼭 필요한 것 이외의 참고 서적도 읽기 시작했다"(327쪽)고요.
교육으로 누군가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면, 장학금 제도의 울타리를 키우는 것도 의미 있고요. 누군가를 응원할 수 있는 '마음의 넓이'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 싶습니다. 덜 절박한 상태에서 순수하게 누군가를 응원하는 것 만큼 좋은 일이 있을까 싶은거죠.


저는 이 책이 '보통 미국인'의 삶을 세밀하게 드러낸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역사적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못사는 동네로만 알려진 '러스트 벨트'의 표심이 미국 사회를 움직이면서 정치적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그들의 의식구조, 생활 방식, 신념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줍니다. 타라 엄마 사연의 후반부를 보면, 타라 가족의 신념이 어느 정도 보편성을 얻는게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 부분은 반전에 가까워서 책을 보셔야...)

책을 개인의 노력으로 역경을 극복했다는 영웅 서사로 읽으면 곤란합니다. 타라가 남기는 질문이 여럿입니다. 가정 폭력에 대해 사회적 대응은 어디까지 가능할까요?  ‘아동학대 없는 나라’는 없다. 다만 ‘아동학대라는 실패 앞에서 포기하지 않는 나라’가 있을 뿐이다. 라는 기사를 기억하고 멤버들에게 공유했어요. 우리는 아이들을 지키는 일에 우선순위를 둬야 합니다. 앞 부분에 언급했지만, 표현의 자유 혹은 종교의 자유가 궁극적으로 개인의 기본권, 공동체의 안전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려면 국가는 무엇을 해야할지 논의도 필요합니다. 종교적 이유로 군 복무를 거부할 때 처벌하는 것처럼 현행법에 따라 1차적으로 대응할 수 있겠죠. 그래서 이번 집회 참가를 주도한 이가 고발됐죠. 물론 이후 종교적 박해라고 더 난리칠걸 생각하니 답답합니다. 결국 법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교육으로 풀 일이 있습니다. 다음 세대에 제대로 된 교육의 기회를 주는 일과 별개로 타라 아버지, 오빠 같은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회가 그 일을 '제대로' 해주면 좋을텐데 말입니다...이건 정말 불가능한 상상일까요?

 
책을 읽을 때는 타라의 아버지와 오빠에게 화가 나고, 맹목적 광신이 가져온 폭력이 무서워서 분노만 가득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는 나의 힘'으로 뭔가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주다니 좋은 책 맞습니다. 역시 세상이 어떤 곳인지 '배움'이 중요한 거였네요.


ㅌㅎ님이 "과연 무지가 만든 지옥일까요? 오히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앎에는 진공이 없다' 라는 생각이 더 들었습니다.  머리를 앎으로 꽉 채우는 것보다는 실내환기가 종종 필요하다는 생각 같은 것이죠." 라고 제 독후감에 댓글 달아주셨는데, 이날 오지 못하셔서 얘기를 더 나누지 못한 것은 아쉽. 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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