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냐 Oct 09. 2020

<그 많던 여성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 사진 때문에

#그많던_여성들은_어디로_갔을까 를 주제로 세바시 기회를 준다는데 어찌 마다하겠어요.


언론이 차별에 더 예민해지기를, 그리고 더 많은 곳에서 '다양성보고서' 같은 시도가 등장하기를 기대합니다. 기업에 있을 때, 다양성보고서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이리저리 구경했던게 도움이 됐네요.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된 일이지만, 준비하다보니 자료가 꽤 있어요. 누군가는 관심 있을거라 믿고, 내용과 출처 등을 남겨봅니다.

평소 대본을 준비하지 않지만, 세바시 가이드에 따라 정리했고요. 실제로는 저대로 했을리가ㅎㅎ 주로 훌륭한 멘트 위주로 까먹었어요ㅠ 발표 장표는 피디님께서 훨씬 더 깔끔하게, 공들인 버전으로 영상에 넣어주셨습니다. 감사할 따름!

원래 홍보가 아니라 소통입니다 주제로 출연해보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저는 이 주제로 소통한 것도 뿌듯합니다.  처음 준비할 때, '다양성 모르면 무능한거죠'라는 제목을 뽑으려다가 순한맛 '다양성이 답입니다'로 바꿨는데 '그 많던 여성들은 어디로 갔을까?'로 제안해주신 세바시팀 만세!


1. <그 많던 여성들은 어디로 갔을까?>


2. 안녕하세요. 미디어와 소통에 관한 책을 쓴 작가 정혜승입니다. 미디어의 은근한? 차별이 주제라 했습니다. 제가 감히 말할게 있나 싶었는데, 지난 겨울에 봤던 이미지 한 장이 떠오르더군요. 한 방송사의 신년특집 대토론 홍보 이미지를 봤는데, 순간 당황했어요. 1월 1일과 2일, 이틀에 걸쳐 ‘한국 언론, 어디에 서 있나’, ‘한국 정치, 무엇을 바꿔야 하나’, 훌륭한 주제인데 저 이미지, 저만 이상하게 보이나요? 나오는 분들은 모두 유명한 분들입니다. 자기 생각을 갖고 있고, 방송 능력도 뛰어난 분들이죠. 그런데 모두 4060 남자입니다. 한국 언론과 정치에 대해 한마디 이야기해줄 분들이 중년 남자 밖에 없어요?


 3. 당황해서 좀 더 찾아봤어요. 진심으로 존경하는, 국내 영향력 1위의 언론인께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까지 이미지가 다 한결 같아요. 거듭 강조하지만, 한국 사회를 이끄는 훌륭한 분들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분들입니다. 이 방송사가 여성을 무시하거나 차별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쯤 되면 별 생각 없이 패널을 구성하는게 더 큰 문제입니다. 미디어가 실질적으로 차별하면서 의식도 못했으면 무능한 겁니다.


4. 어느 한 언론사 문제 아닙니다. 당시 바로 다음날 다른 방송사에서는 신년특집 100분 토론을 했어요. 다르지 않습니다. 패널이 모두 남성입니다. 토론 진행자가 여성이기는 했네요. 세바시 자료 준비를 하면서 최근 100분 토론도 싹 다 찾아봤어요. 최근 방영 순서대로 뽑았더니.. 여기 45명 중에 여성은 4명입니다. 과연 방송에 나올만한 전문가 중에 남녀 비율이 10대 1일까요?


5. 방송사만 다양성을 모르는게 아닙니다. 우리 주요 신문의 필진 164명 중 남성이 112명이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어떤 신문사는 새 필진이 전원 남자입니다. 부끄럽지 않은거죠? 방송과 신문이 여성을 배제하거나 차별하고 있습니다. 고의적이진 않겠죠. 다만 내부 리더 성비가 궁금합니다. 미디어 구성원이 남녀 반반이어도 프로그램을, 지면을 이렇게 만들까요? 얼마전 서울신문은 여성 필진을 30%로 늘렸다고 1면에 자랑했어요. 한국 언론계에 드문 일이죠. 논설실장님이 여성입니다.


6. 여풍도 강하게 몰아쳤다. 지난 4월 총선 결과, 21대 국회에 여성 의원이 역대 최다 입성했다는 국내 한 신문의 보도입니다. 여성들이 전체 의원 숫자의 19%를 차지했고, 상전벽해 같은 결과라고요. 그런데 BBC코리아는 같은 결과를 놓고 “최다 당선인데 여전히 OECD 최하위권”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우리 여성의원 비율이 19%인데, OECD 회원국 평균은 17년 기준 28.8%. 미디어의 힘은 세요. 어떤 현상을 어떤 눈으로 해석해주느냐에 따라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이 달라집니다. 상전벽해라 봐야겠습니까, 아직도 꼴찌라는 걸 봐야겠습니까. 당초 여야 정당은 지역구 여성 공천 비율을 30%까지 높이겠다고 했지만, 10%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미디어도 크게 문제삼지 않았어요.


7. 미디어가 문제를 문제라고 하지 않으니, 사회도 그대로입니다. 차별은 사회가 합니다. 이것은 국무총리님도 참석한, 훌륭한 행사 기념사진입니다. ‘대한민국 종합 미래전망대회’라는 제목으로 열렸습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으세요? 너무 익숙해서 자연스럽나요? 대한민국 미래 전망은 남자들끼리만 해도 되는 걸까요? 편향된 구성원들끼리는 뭐가 문제인지 모릅니다.


8. 미디어의 차별, 다양성 부족은 전세계가 비슷해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대응의 첫걸음은 데이터로 문제를 드러내는 겁니다. ’글로벌미디어 모니터링 프로젝트’ 라고 1995년 이후 5년 마다 보고서를 냅니다. 뉴스에 나타난 불평등. 여자가 보도되는 분량이 1995년 17%에서 2015년 24%로 늘었어요. 데이터 자체가 메시지입니다. 뉴스만 여성이 적은건 아니어요. 24개국에서 방영되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분석한 보고서여요. 메인 캐릭터 중에 여성은 32%로 나타났어요. 동물이나 괴물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만 분석해보면  여성 캐릭터는 13%에 불과해요. 최근에 <보이지 않는 여자들>이라는 책에서 많은 정보를 얻었는데, 실제 모든 분야에서 여성은 보이지 않아요.
 

9. 영화 <델마와 루이스>에 나온 지나 데이비스라는 멋진 배우가 있어요. 2004년 미디어젠더연구소를 만들었더군요. 분명 헐리우드가 여성을 배제하는데, 아니라고 우기는 이들에게 '데이터'를 내밀기로 한거죠. 이 연구소는 스크린의 젠더 균형을 모색하고, 어린이 프로그램의 고정관념을 줄이고, 여성 캐릭터를 보다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예컨대 애니메이션 ‘스머프'에서 여성은 여성성 과도한 단 1명. 여성 캐릭터는 덜 똑똑하고 더 예민하거나, 애교에 주력하는 양념 같은 존재. 그걸 보고 자란 아이들이 뭘 생각하겠냐는 겁니다. 올해 연구 성과를 보면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여성의 발언 비중은 역대급으로 높아졌다고 합니다. 58%. 물론 여전히 남성 캐릭터는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여성은 서비스직 경향이 보이지만, 젠더 다양성은 데이터를 꾸준히 공개하면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10. 연구소 자료 하나 더 볼게요. 2019년 칸 국제광고제의 광고 분석입니다. 광고에서는 남성이 여성의 2배, 일하는 모습도 2배. 여성에 비해 리더로 묘사되고 권위 있어요. 노출 차림은 여성이 남성의 4배라네요. 다양성은 젠더만 다루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19%에 달하는 60대 이상이 광고에서는 7%. 체형이 큰 캐릭터는 7.2%. 현실 세계에서는 39%. 이런 불균형, 다양성 부족은 편견을 확산시킵니다. (영상에선 통편집되어 삭제)
 
11. 독일 언론계의 성평등을 다루는 단체인데, 코로나 사태 이후 여성 전문가 리스트를 집단지성으로 모았습니다. 코로나 위기에서 나오는 전문가가 모두 남성이라니. 이제 코로나에 대해 설명해줄 더 많은 과학자들, 의학자들을 원한다, 더 많은 여성 사회학자, 철학자, 교육학자, 경제학자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겁니다.
 
12. 왜 이렇게 다양성 타령을 하느냐. 실제 그게 좋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성과도 다양성에 비례합니다. 성별 다양성을 추구하는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15%, 인종 다양성 추구 기업은 35% 이상 높은 성과를 낸다는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 보고서는 2015년에 나왔습니다. 남녀가 다르지 않습니다. 흑인과 히스패닉, 아시안, 백인이 다르지 않습니다. 능력 대신 다른 이유로 차별하고 배제하면 성과가 떨어지는게 당연하죠.


13. 저는 카카오에서 정책과 홍보 담당 부사장으로 일했어요. 글로벌 테크 기업들의 다양성 보고서를 꾸준히 살펴봤어요. 다양성은 성과 뿐 아니라 기업의 브랜드 가치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인재 확보에도 중요해요. 최고다양성책임자(CDO)의 역할이 커지고 있습니다. 애플은 여성 구성원이 늘어났다는 것을 자랑합니다. 30세 이하 젊은 직원일수록 기울기가 가파릅니다.


14. 테크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남녀 구성 비율, 백인 외 아시아계, 흑인, 라틴계 등 인종 구성 비율들을 공개합니다. 전체 직원 구성, 개발자 등 직군별 구성, 임원 구성도 별도로 공개합니다. 구글은 현재 여성 임원이 4명 중 1명. 일반 직원보다 비중은 10%P 정도 낮아요. 예전 리포트에서 볼 수 없던 것도 속속 등장합니다. LGBTQ 정체성을 가진 직원들, 성별 분류 자체를 거부하는 넌바이너리 직원들, 장애를 가진 직원 구성을 공개합니다. 스스로 그리 인식한다는 자율 조사입니다.


15. 페이스북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숨진 조지 플루이드 사건을 언급하며, 인종 차별에 반대한다고 선언합니다. 흑인 소상공인, 창작자 등을 위해 1억 달러를 투자한다고요. 대표성이 부족한, 소수자들의 비중을 2024년 50%까지 높이겠다고 발표했는데, 작년엔 43% 였고, 올해는 45%. 이처럼 투명하게 공개하는 노력, 다양성에 대한 의지는 실제 변화를 만듭니다.


16. 다양성과 포용, 사실 다들 난리입니다. MS, 마이크로소프트 보고서 찾는데 또다른 MS, 모건스탠리 뜨더군요. 테크 분야만의 이야기가 아니란 겁니다. 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다양성이 뜹니다. 혁신의 원동력이죠. (역시 통편집 삭제)
 

17. 국내에서는 기업보다 대학의 다양성보고서가 눈에 띕니다. 서울대 다양성 보고서는 반갑습니다. 작년에 서울대 경제학부에서 73년 만에 첫 여성 교수가 임용됐다는 뉴스에 충격을 받았거든요. 38명의 경제학부 교수 중 여성이 한 명도 없었던거죠. 현재  서울대 대학원생이나 비전임 교원 중 여성 비율은 절반에 육박하는데 전임 교원은 17%입니다.  2016년 15%에서 아주 조금씩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다양성 보고서에 ‘여성 교원이 없는 학과’를 따로 공개하는 것은 자극이 되겠죠.


18. 작년에 시작한  고려대 다양성보고서는 여성은 물론 장애인 비율도 공개하고 있습니다. 고대 다양성위원회는 이번 학기에 '다양성과 미래사회'라는 교양과목을 개설했다고 합니다. 하버드대나 코넬대가 단과대 별로, 버클리와 스탠포드 대학, 영국 옥스퍼드대학도 별도 다양성 조직이 있다는걸 고려대 보고서에서 확인했습니다. 차별 대신 기회가 균등한게 경쟁력입니다.
 
19. 다양성 확보는 성평등과 인권 문제의 기본입니다. 국민들의 뜻은 이미 그곳에 있습니다. 저는 청와대에서 디지털소통을 담당하며 국민청원을 만들고 운영했습니다. 국민청원 3년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인권과 성평등에 대한 동의가 총 2900만 번 이뤄져서 가장 많았습니다. 언론과 정부, 정치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책 우선 순위와 사뭇 다릅니다. 국민들이 청원에 나서는 것은 기존 미디어가 담아내는게 부족한 탓일 수 있습니다.


20. 인권과 성평등은 글로벌 시대정신입니다. 우리만 유별난게 아닙니다. 전세계 190여개국에서 활발하게 이뤄지는 change.org 청원에서도 1위가 여성의 권리였습니다. 장애인과 아동 인권, 동물권 등이 주요 이슈입니다. 이런 청원으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언론이 더욱 분발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미디어는 차별 이슈에 대해 얼마나 끈질기게 접근하고 있는 걸까요.
 
21. 다시 미디어로 돌아가죠. 영국 BBC의 다양성 페이지 근사합니다. 이 보고서가 눈에 띕니다. 여성을 위한 최고의 일터로 만들겠다는 포부인데, 외부 전문가는 물론, 내부에서 5000개의 의견을 정리했답니다. 영국 채널4 역시 다양성 보고서를 통해 주요 채널에서 다양성 이슈를 연간 177시간 다뤘다거나, 프로그램 89%가 다양성 가이드라인을 충족했다고 자랑합니다. 국내 언론사의 이런 모습, 상상하면 근사하지 않나요? 할 일이 많아요. 다양성 가이드라인이 필요해요. (참고삼아 NYT 다양성 페이지도 추가해요)
 
22. 마침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서 '다양성을 늘리기 위한 조언'을 정리했더군요. 관련 데이터를 수집해 비교하는 건 동기 부여가 됩니다. 직원 고충을 별도 창구를 통해 챙기고, 기술에 편견이 작동하지 않는지, 소수자 목소리를 더 듣는데 집중하라고 합니다. 관리자 급에서 처음부터 이 문제를 함께 다루도록 하고요.

 

왜 방송엔 아재들만 나오지? 이런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성별’이 다르더라도 ‘전문성’에서는 남녀가 다르지 않아요. 배제하거나 차별하지 말자는 소박한 얘기입니다. 특히 미디어에서 말이죠. 미디어 구성원이 달라지면, 미디어의 관점이 달라지고, 미디어의 뉴스와 프로그램이 달라집니다. 다양성은 성과로 이어지고, 차별의 상처를 보듬고, 편견 없는 포용 사회를 만듭니다. 다들 다양성을 시대정신으로 꼽는 이유를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변화를 함께 만들고 싶어요. 고맙습니다.


네. 15분 채 안됩니다. 봐주심 감사^^


매거진의 이전글 <소셜딜레마> '좋아요' 디스토피아 에서 해야 할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