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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Nov 14. 2020

저널리즘이 언론 아니라 포털 책무? 문제가 틀렸다

1. 문제가 문제 


모두가 한국 축구의 '문제는 기술'이라고 할 때, 히딩크는 '문제는 체력'이라고 접근을 달리합니다. 체력 강화 훈련의 결과는 월드컵 4강 진출이었죠. 결국 문제는 문제 정의. 고수가 '문제'를 찾을 때 중수는 '해결'을 찾습니다. 링컨은 목수 시절 "나무를 벨 시간이 8시간 주어진다면, 6시간을 도끼 날 가는데 사용하겠다"고 했다네요. 문제가 뭔지 정의하는데 공을 들이자는 겁니다. 문제의 본질을 찾지 못한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어요? <기획은 2형식이다> 라는 훌륭한 책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2. 저널리즘은 포털 책무?


저널리즘을 고민하는 언론학자와 언론인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토론회 제목이 '상생과 저널리즘 제고를 위한 포털의 사회적 책무'. 한국 언론의 저널리즘이 너절리즘, 너덜너덜해진게 포털 탓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근데 그게 문제의 본질인가요? 포털이 사회적 책무를 못해서 저널리즘이 망가졌어요? 


3. 사람 대신 알고리즘 편집, 뭐가 좋아졌나?


포털의 저널리즘? 알고리즘 문제도 있습니다. 얼마전 제가 발표한 슬라이드가 보여주듯, 네이버 많이본 뉴스를 한 정치인의 원피스가 도배질하는건 사람들이 그걸 많이 찾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본다고 좋은 뉴스 아닙니다. 중요한 뉴스 아닙니다. 놓치지 말아야 할 뉴스가 포털에서 이제 안 보여요. 다음뉴스가 그나마 나았는데 요즘 피로도가 높아요. '그들만의 세상' 뉴스 뿐, 정작 봐야 할 뉴스가 안보여요. 


"감히 포털이 뉴스 편집을 하냐"고 문제 삼았던 언론 덕분에 사람 대신 기계 편집으로 바뀌었는데, 그래서 더 좋아진 건 뭐죠? 


4. 그래서 해법은? 포털 전송 기사 수를 줄이자?




이봉현 선배의 말은 모두 맞아요. 한 일간지가 하루에 800~1000개 기사를 포털에 보낸다는데, 기자 1명이 대체 하루 몇 건을 받아쓰고 베끼는 겁니까. 공들인 기사를 쓸 여력이 있어요? 포털 조회수 위한 날림 기사라고 하셨죠. 즉 조회수 때문에 저널리즘을 버린 건 언론입니다. 마당을 제공한 포털 탓이라 하면 상실감은 달랠 수 있어도 본질은 아닙니다. 


그런데, 저런 해법이라니. 언론들이 다같이 담합하거나 카르텔로 기사 수를 줄이자는 건가요? 아니면 포털에게 기사 전송 숫자 캡을 씌우라고 하는 건가요? 토론회는 '포털 책무'가 주제인데, 후자라면 이건 정말 슬픈 솔루션. 우리끼리는 도저히 조회수 낚시를 멈출 수 없으니 낚시터에서 우리를 말려줘, 금지해줘? 이게 아니라면 어느 언론사든 (결심만 하면) 전송 기사 숫자 줄이고, 공들여 취재한, 빛나는 기사들만 보낼 수 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저널리즘은 포털 책무 논하기 전에 언론사의 책무입니다. 


5. 십 수년 포털 탓만 하다가 


2003년에 다음과 네이버가 뉴스를 시작할 때에는 포털이 지금 같지 않았어요. 뉴스는 핵심 서비스로 떠올랐죠. 하지만 지금도 그럴까요? 네이버, 다음보다 많이 쓰는 카톡, 유튜브가 뉴스로 떴어요? 네이버는 커머스, 파이낸스 강화하는데요? 만약 뉴스가 없다면, 이라는 얘기는 오래 전에 유효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닙니다. 뉴스로 인한 혜택보다 책무와 고달픔이 더 많아서 맨날 국감 불려다니다가 사람 편집도 포기하고, 네이버는 이제 '랭킹뉴스'까지 포기했잖아요. 


그동안 언론은 저널리즘을 위해 뭘 했습니까? 영민하고 성실한 기자들이 제대로 취재하고 좋은 기사를 쓰는 환경을 만들었나요? 기자들 애쓸때 닷컴에 따로 인턴 고용해 포털용 어뷰징 일 시킨건 언론사 아녀요? 자사 기사 덜 주목받게 하고, 포털 마당 어지럽히고, 결정적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뉴스피로도가 높아지도록 한건 누구죠? 정말 언론은 포털만 없으면 저널리즘을 사수할 각오이긴 했던 겁니까? 


저도 언론 출신입니다. 기자들의 고민과 좌절, 분노 모르지 않습니다. 공감하면서 고민 나누려고 했어요. 근데 포털 책무 얘기하면서, '신문 진흥법'인 신문법을 '포털 규제법'으로 앞뒤 안맞게 바꾸신게 2009년이어요. 이후 책무를 앞세워 전세계에서 우리만 있는 규제 많이 만드셨잖아요. 저널리즘 책무를 함께 나누는건 좋은데, 그동안 뭘하신건가요.


포털은 '입'도 없고, '펜'도 없어서 이런 얘기 안하죠. 설혹 하더라도 실어주지 않겠죠. 뉴스 유통플랫폼 포털 책무가 없다고 주장하는게 아닙니다. 일단 좋은 뉴스를 생산하는 그 역할부터 다시 고민하시는게, 저널리즘 토론의 출발입니다. 


아침에 기사 보고 몹시 슬퍼서... 독서 클럽 다녀오자마자.. 이러고 있네요. 문제는 문제. 문제 정의를 다시 해보면 좋겠습니다. 저널리즘? 그거 언론에서 해결 못하는데 포털이 해결할 문제 아닙니다. 이러다 독자가 나서야 하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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