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그가 대통령이 됐다면...이 나라는 전혀 다른 나라가 되었을 것
베트남 전쟁 종전 협상에 착수했을 것이고, 그 결과 닉슨 행정부 시절 죽은 베트남인 200만 명과 미군 2만 명의 목숨을 구했을 것. 워터게이트는 평범함 임대건물로 남았을 것이고 워터게이트 스캔들에서 비롯된 환멸과 냉소주의는 없었을 것.. 젊은이들과 소수인종은 백악관에 자신들의 후원자를 두게 되었을 것이고.. 국민을 상대로 진짜 '불의'는 가난과 인종차별과 불필요한 전쟁이라고 설득했을 것이다. (31쪽)
운명은 되돌릴 수 없고, 역사는 바뀔 수 없으니 부질 없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저런 리더의 이야기는 마음을 움직입니다. 1968년 암살당한 정치인 로버트 케네디가 미국 대통령 선거를 위해 당내 경선에 출마했던 시기, 선거운동 82일을 기록한 책입니다.누군가는 그의 형 존 F 케네디 대통령 이야기인줄 알았다고 하더군요. 헷갈릴 수 있죠. 이 둘의 동생이자, 무려 47년 간 상원의원을 지내면서 오바마의 멘토가 됐던 테드 케네디를 우리가 잘 모르는 것 처럼요.
사실 왜 우리가 2020년 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가 더 흥미로운 부분이죠. #트레바리 #기막힌논픽션 11월 책. 번역자인 페북 인플루언서 박상현님이 꾸준히 이 책의 의미를 알린 덕분인지 다른 쟁쟁한(?) 책들 대신 멤버들 투표에서 1위. 심지어 대부분 로버트 케네디를 잘 모르면서요. 다행히 책은 술술 읽히는 다큐멘터리 스타일. 약간 위인전 느낌도 들지만, 생각보다 생각의 여지를 많이 남겼고, 우리 토론은 차분하면서도 뜨거웠어요.
고심했던 발제문입니다.
1. 왜 2020년에 로버트 케네디?
- 도덕성과 품위로 기억할까요? 가장 힘든 약자만 찾아다닌 정치인? 바비에 대해 인상적인 부분은요?
- 정치적으로 잃을게 많은 말만 하는 용기는 어때요? 끝내 비극을 부른 용기는요? 다른 선택이 가능했을까요?
- 바이든을 비롯해 많은 이들의 우상. 그들은 그의 뒤를 따르고 있는 걸까요?
- 일찍 떠났기 때문에 더 그리워하는 걸까요? 과연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 냈을까요?
2. 미국 사회와 1968년
- 1968년 이후 미국은 얼마나 진보한 걸까요? 국가 평가 기준이 '부'가 전부가 아니라면?
- 1964년 민권법은 통과됐지만, 차별은 중단되지 않았어요. 무엇이 문제일까요?
- '법질서'가 인종분리주의자들의 언어였다는 점을 어떻게 보세요?
- 차별, 혐오, 분노가 정치의 동력? 포용과 화해의 정치는요? 20세기 중반의 정치 풍경에서 2020년에 생각해볼 지점은요?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와 팀 쿡 애플 CEO가 모두 우상으로 꼽는 이. 너무 이상적이었을 수 있어요. 그의 생각과 언어는 매혹적입니다. 금수저 정치인인 그는 철저하게 약자 편이었습니다. 차별받는 흑인, 소수민족, 존엄성을 잃어버린 빈곤층에 매달렸습니다. "이웃의 삶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하지 않으면 우리가 인간으로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혜택을 생각하면, 우리는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큰 책임과 의무를 갖고 있지 않을까요? 그 책임은 미국 정부가 아니라 우리 각자에게 있습니다"
유력 대선 후보가 "그렇게 열정적이거나 무모하게 출마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존 에드워즈를 제외하면) 어떤 후보도 그만큼 빈곤 문제를 대선 쟁점으로 삼지도, 소수인종과 가난한 유권자를 들뜨게 하지도, 백인 노동자와 흑인 모두에게 신뢰를 받지도, 노골적으로 유권자를 비판하지도 않았다고요.
GNP로 나타나는 강대국의 성적표를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GNP에는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또는 놀이의 즐거움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GNP는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을 뺴고 모든 것을 측정합니다. 정작 우리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왜 자랑스러운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형인 JFK가 "이성적이고 침착한 인물"이라면 RFK(Robert Francis Kennedy 애칭은 바비. 전 로버트가 왜 바비인지 늘 신기)는 "열정적이고 직설적이며 까칠한" 인물. JFK가 현실을 수용한 반면 바비는 저항했어요. 형이 "로맨티시스트로 가장한 현실주의자"였다면, 그는 "현실주의자로 가장한 로맨티시스트". "바비는 자기가 옳은지에 대해 (형보다) 덜 확신했고, 더 주저했으며, 더 의심하고, 그런 사실에 대해 아주 솔직"해 보였고 "미국에서 삶의 근본을 바꾸고 싶어 했던 혁명가"로 기록됩니다. (107~109쪽)
1968년 미국의 민낯과 '법질서'
바비의 이야기는 그 시절 미국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67년 커너 보고서는 미국이 "서로 섞이지 않고 불평등한 흑인 사회와 백인 사회로 분열"되었다고 했다죠. JFK가 암살당한 뒤 대통령 직을 이은 린든 존슨은 1964년 민권법을 통과시켰습니다. 흑인 차별을 법으로 금지한 거죠. 그러나 미국 사회는 흑인의 권리를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1967년 디트로이트의 흑인 '폭동'에는 공수사단이 투입되어 시민 23명이 죽고 696명 다쳤다고 합니다.
그 시절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 미국사 교수인 친구 P에게 물어 예습 좀 했습니다. 민권법 통과되면 더 좋아졌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법적으로 투표권 등 흑인 권리를 인정하고, 형식적 평등을 만들어냈는데 이게 실제 현실에 먹히지 않은게 문제였다네요. 흑인들과 백인은 여전히 분리된 세계에서 살았고, 섞이기 위해 버스 함께 타기, 학교 등교 하기가 투쟁으로 등장했지만 갈등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답니다. KKK 린치는 불법화됐지만, 법은 당시 사람들이 차별하던 마음까지 바꾸지는 못한거죠.
대신 법질서(law & order)라는 새로운 언어가 만병통치약 마냥 등장했다고 합니다. 사회 기강을 잡아야 한다, 혼란을 무마해야 한다는 건, 정치적인 동시에 시대적 맥락이 담긴 언어입니다. 사소한 범죄도 다 잡아넣어 사회 정화를 모색했는데 당시 빈곤층이던 흑인들이 좀도둑 소매치기 마약 등으로 잡혀가기 시작했다죠. 2009년 기준 미국 내 흑인 남자 수감률이 백인 보다 7배라는 보도가 있네요. (호주엔 원주민 수감률이 압도적이라죠) 흑인 동네엔 남자 어른이 사라지고, 아버지의 부재가 심각한 문제가 되면서 공동체가 무너졌다고 합니다. 디트로이트 ‘폭동’을 꺼내지 않더라도,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정의사회구현'을 내세워 광주 시민들을 '폭도'라 했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대선을 노리던 로널드 레이건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1968년 암살당한 킹 목사 장례식에 불참하고 그 사건을 비폭력 불복종 철학 탓으로 돌리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우리가 법질서와 타협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이(예컨대 킹 목사가) 어떤 법을 지키고 어떤 법을 어길지 선택하면서 시작된 큰 비극"이라고요. 닉슨 진영의 미국 남부 득표 전략을 보면, 민권 문제에 대해서는 립서비스 정도로 공화당 중도층을 달래고, 다른 한 편으로는 '법질서' 같은 표현을 사용해서 인종분리주의자들에게 자신이 그들 편이라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법제도 자체가 새로운 짐크로법(흑인차별법)이라는 논문을 쓴 스탠포드 교수가 있다던데 말입니다.
반면 바비는 법질서를 강조하는 대신, 미국 백인이 흑인의 좌절과 폭력에 책임이 있다고 했습니다. 흑인들이 지금 이 나라의 선의에 대한 믿음, 평화적 수단을 통한 변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잃고 있다.. 희망이 좌절되고 신뢰를 상실할 때 절망이 찾아오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결국 폭력을 택해 거리로 나서기 때문에, 이들을 탄압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했답니다.
격렬한 '폭동'이 벌어진 디트로이트에서 그를 환영한 건 당연하지 않았을까요? 그는 폭력을 비판하는 발언을 할 때, 반드시 인종차별에 대해서도 똑같은 수준으로 비판했다고 합니다. 인디언 보호구역 도서관의 유일한 인디언 책에는 체로키 인디언이 백인 정착민 머리 가죽을 벗기는 그림이 있고, 교장은 바비에게 인디언은 이렇다할 역사나 문화가 없는데 그런 주제에 관한 책이 왜 필요하냐고 말하는 시대. 그는 이런 상황에서 불같이 화를 냈죠.
미국에 필요한 것은 분열이 아닙니다.
미국에 필요한 것은 증오가 아닙니다.
미국에 필요한 것은 폭력과 무법이 아닙니다.
서로를 향한 사랑과,
지혜와,
연민,
그리고 정의감입니다.
흑백을 초월해,
미국 내에서,
여전히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정의감 말입니다.
바비를 전설로 만든 그 연설. 킹 목사 암살 직후, 그는 이런 목소리를 냈습니다.
킹 목사 암살 이후 24시간 동안 미국 내 119개 도시에서 폭동이 벌어져 46명이 사망하고 2500명이 다쳤다고요. 하지만 갈등 많던 도시 인디애나폴리스는 조용했습니다. 당시 폭동 우려에도 불구, 7분 간의 즉흥 연설로 사람들을 달랜 바비 덕분이라고들 했습니다.
형을 암살로 잃은 정치인이, 리더를 암살로 잃은 이들에게 분노 대신 사랑과 정의를 말한 셈이죠. 유권자를 분열시키기보다 통합시키려 했고, 이슈보다는 태도와 품위를 강조한 정치인.
그는 과거의 오류, 잘못에 대한 사과도 주저하지 않는 정치인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베트남 문제에 관해 초기에 내렸던 여러 의사결정 과정에 관여했습니다... 저는 역사와 국민 앞에서 제가 져야 할 책임을 지겠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오류라고 할지라도 그런 오류가 지속되는 상황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 소포클레스 안티고네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지만, 훌륭한 사람만이 잘못을 인정하고 고친다. 유일한 죄는 자만이다." (80쪽)
어느 신문 서평을 보다가, 그의 이런 태도에만 집중한 느낌이 들어 좀 불편했어요. 화해, 관용, 용서, 품위, 도덕성, 이런게 그의 전부가 아니잖아요. 그는 철저하게 약자 편이었다니까요.
"또다른 종류의 폭력이 미국에 존재합니다.. 기업과 기관이 폭력입니다. 무관심과 복지부동, 그리고 서서히 진행되는 부패입니다." 언론은 "정치적으로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빈곤 문제를 계속 강조하고 있다"고 보도했어요.
복지와 의료서비스에 대해 그 돈은 대체 누가 낼거냐고 냉소하는 의대생들에게 "학생이 내야죠!" 라고 외친 정치인입니다. 그는 이런 말로 엄청 야유를 받았다고 합니다. "의과대학원에 앉아 있는 것은 백인입니다. 이 학교만 그런 게 아니라 미국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의 가장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은 흑인입니다."
그는 중도를 추구하는 타협주의자가 아니었죠. 빈곤, 차별, 기아가 잘못된 것이고 희생과 도덕적 용기는 옳으며, 이 사실을 미국인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대통령의 의미라 믿었던 사람입니다. 인종 간 화해에 대해 10분 만 말하면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는걸 한탄하면서도, 이 나라를 어떻게 뭉치게 할 것인지, 지치지 않고 얘기했죠.
별 승산 없이 시작한 선거운동에서 강력한 후보로 떠오르는 와중에도, 그는 소신이 먼저였어요. 오리건주에서 패배하고, 누군가 보좌관들 탓을 하자 반박했어요. "말도 안되는 소리예요. 제가 이겼으면 저 때문에 이겼다고 했을 텐데, 그럼 진 것도 저 때문에 진거죠. 떄론 제가 미국의 분위기를 제대로 감지한 건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완전히 틀렸을 수도 있죠. 어쩌면 사람들이 변화를 싫어하는 건지도 몰라요" 그의 말대로, 어쩌면 사람들이 싫어하는 얘기를 계속 하다니.
"어느 한 개인이 이상을 지키기 위해 앞에 나서거나, 타인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행동하거나, 혹은 불의에 대항해서 싸울 때마다 작은 희망의 잔물결이 퍼져나갑니다. 수백만 명이 에너지의 중심이 되어 그렇게 퍼뜨린 물결이 서로 만나서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내고, 압제와 저항의 벽을 무너뜨립니다"
도덕적 용기가 물리적 용기보다 더 어렵다고 말했다지만, 그의 선거운동은 정말 도박이었어요. 혹자는 '천천히 진행되는 자살'이었다고 할 정도로. 그는 "제가 백악관으로 가는 길에 총이 기다리고 있어요"라는 말을 남기면서도 아무런 보호막 없이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영화 <아이리시맨>에도 등장하는 지미 호파가 "바비 케네디 그 개자식은 손을 봐줘야겠어.. 자기 집에 경비원도 없어. 플라스틱 폭탄에 대해서 아는 것 좀 있나?"라는 말을 남겼다고 하고, 마피아가 그를 죽이기 위해 수십 만 달러 내걸었다는 FBI 보고도 있었다죠..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댕긴 정치인.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그를 정말 좋아하게 됐다고, 편파적일까 두려워 취재에서 빼달라고 할 정도로 모두를 매료시킨 정치인.
바비가 그렇게 떠나지 않았다면, 대통령이 됐다면 여전히 미국인들의 우상일까요? 도덕적 용기로 무장하고, 타협 없이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고, 약자의 편에서 새로운 정치를 말하는 정치인. 독서클럽 토론에서 몇 몇 멤버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했습니다. 바비와 비슷항 상황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바비와 닮은 매력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대통령. 비극적으로 떠난 이후에 다시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영원히 남아버린 분. 바비와 다른 점이 있다면, 실제 대통령이 되고 난 이후에는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을 잃었고, 모든게 그의 탓이라 만인의 미움을 샀던 정치인. 생전에 약자를 차별하던 백인들, 인종분리주의자들, 자본가들의 미움을 샀던 바비는 미국을 정말 바꿨을까요? 도덕적 강박까지 닮았던 두 사람의 운명은 어디쯤에서 갈라졌을까요? 노회찬 전 의원을 떠올린 이도 있었고, 아옌데 전 칠레 대통령 얘기도 나왔습니다. 미국의 전설적 정치인 이야기를 보면서, 노통을 떠올릴 수 있어서, 그런 리더가 있었다는 것이 고맙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느 지점에서 그를 잃어버린 걸까요.
질문은 이어집니다. 미국인이 사랑하는 바비, 분열의 시대를 맞아 그리워하는 바비는 정말 어떤 대통령이 됐을까요. 그가 변화를 만드는데 주저하지 않은 사람이란건 다 알지만, 정말 어떻게 됐을까요...
2020년 #Blacklivesmatter 외침 속에 미국은 1968년에서 그다지 멀리 오지 못한 느낌입니다. 68년에는 스스로 일어서던 흑인 운동이 있었지만, 1992년 LA '폭동' 이후, 사실 큰 변혁 없이, 여전히 흑인은 차별을 겪습니다. 도심 속 자신들의 게토에 갇혀 있거나, 자기들 내부의 다툼이 더 커지고, 여전히 희망보다 절망이 적지 않은 사회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역사적 상징이지만, 뿌리 깊은 차별을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미드 <미세스 아메리카> 보면서, (흑인을 노예로 계속 두기 위해 남북전쟁까지 벌였던) 남부연합기가 그 시절 공화당 집회에 등장하는 장면을 알려줬던 P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트럼프 지지 집회에 등장하기도 하고, 일부 주에서는 '역사'란 이유로 남부연합기의 흔적이 남아있다네요. 차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무너진 공동체의 댓가는 결코 가볍지 않고요. 그렇다고 해서 인구의 10% 수준인 흑인들만을 위해 뭔가 더 특별하게 챙긴다면 그건 미국인 다수가 공감할까요? P의 말을 들을수록, 거대한 벽에 부딪친 느낌이 들더군요. 2020년 미국을 바라보는 미국 바깥의 시선, 그리고 미국인들의 마음이 어딘지 불편한 것은 이유가 있겠죠.
왜 2020년에 바비 케네디를 봐야 하느냐, 그 답을 찾는 독서와 토론이었죠. 1968년의 미국, 그 이후의 미국을 들여다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2020년이라 유감이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정치인 이야기에 이렇게 몰입해본 건 오랜만. 이 분 이후 오랜만입니다. 이런 정치인도 있는 미국의 저력에 놀라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