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냐 정혜승 Dec 25. 2020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 사법 쿠데타일까


“언니, 일단 그 영화부터 보세요. 저는 OOO까지 좋아하게 됐다니까요. 브라질 검찰 대단하더군요. 검찰 그대로 가면 어찌 되는지 보여줘요.”
아침 통화에서 N과 얘기를 나누긴 했지만, 사실 작년부터 추천받은 영화입니다. 브라질 다큐. 집콕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어울리는 영화라고 해두죠. 전날 정경심 교수 1심 선고가 아녔다면 다른 영화를 봤을 수도 있겠지만요. 이건 전현직 브라질 대통령에 대한 수사로 끝내 탄핵과 투옥까지 성공시킨 검사/판사가 새 극우정부의 법무장관이 된 사연이잖아요. 2년 만에 사임하긴 했지만.

피를 먹고 자라는 민주주의

각국의 민주주의 역사는 닮았습니다. 정문태님의 책 <현장은 역사다>를 읽다가 소름돋았죠. 2010년 리뷰에 제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군요.


그런데 저 책을 통해 아시아만 봤네요. 군부 독재 정권이 수백, 수천을 고문하고 학살한 역사는 지구   대륙이라고 다를게 없었던거죠. 브라질도 그랬다는걸 이제 알았습니다. 영화 <두 교황>을 보면 아르헨티나도 그래요. 남미 각국 역사는 또 저마다 다르면서도 닮았는데.. 그게 또 몹시 슬프죠. 시위대의 저항과 진압 장면도 거칠고 맘 아픈데, 낯설지 않아요..

엄혹한 그 시절에 투쟁을 이끌며 군부 독재를 끝낸 노동자 영웅 룰라. 2003~2010년 2차례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그만둘때 지지율이 87%였다고요. 그는 빈민들이 더 굶주리지 않도록 월 지원금을 지급하고 교육받을 기회를 확대했습니다. 세계 경제 7위까지 올라갔다니 전성기를 누렸네요. 반면 후임 호세프 지우마 대통령은 경제가 휘청거리면서 시민의 저항에 부딪쳤고 시위 3주 만에 지지율이 27%나 빠졌다고 합니다. 돌파구로 그는 부패와의 전쟁에 나섭니다. 검찰이란 칼을 뽑은거죠.

수사, 기소, 재판까지 무소불위 브라질 검찰 

룰라의 전성시대를 도왔던 석유 기업 페트로브라스가 문제였어요. 수십억 달러, 즉 수조원의 거래에 리베이트 뇌물이 오갔던거죠. 저 나라 선거 제도와 구조 상 정치인들은 비자금이 절실했고, 여야 가리지 않고 받아챙긴 걸로 보입니다. 근데 브라질 검찰은 대단합니다. 압수수색과 도청은 기본. '  ' 불지 않으면 재판 없이 계속 구금할  있다고요. 게다가 기소  재판에서 판사 역할까지 겸임하는 희한한 제도라니. 여야 정치인, 기업인들이 줄줄이 잡혀가자, 브라질 기득권 엘리트들은 묘수를 짜냅니다. 대선에서 패한 야당 지도자는 선거 불복을 선언하고 탄핵까지 밀어붙입니다. 당시 지우마 대통령은 경제 실정까지 겹치면서 패를 잃었습니다. 약속과 달리 긴축정책을 펼쳤고, 노동자들은 일자리까지 잃었죠. 모든건 '지우마가 망쳤다'. 모든건 대통령 탓이라 했던 우리의 그 시절과 닮았습니다. 탄핵 사유는 이해가 안되지만, 하여간에.. 브라질 우파들은 좌파 정부를 몰아내기 위한 군부 개입을 지지하고, 독재 시절을 그리워합니다. 이들의 목소리도 그리 낯설지 않아요.

지우마를 몰아낸 테메르 부통령의 부패와 음모도 추가로 폭로되면서, 국민 80% 요구하는데 검찰이나 정치권이 기소를 거부한 것도 인상적 대목. 기소 독점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주네요. 룰라와 지우마 모두 노동당 기반으로 선거에 이길 수 없으니 보수정당과 '연정'으로 집권했는데, 그게 또 독배가 됩니다. 테메르는 연정 파트너였죠.

극도의 정치 불안은 전설을 다시 불러내고, 2018년 대선에서 룰라는 31%로 선두를 달렸습니다. 당시 보우소나루 후보 지지율은 15% 였죠.. 이게 스포일러가 될 수 없는 건, 이미 다 진행된 역사. 룰라는 '조작된 PPT 한 장' 외에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으나, 검사와 판사를 겸한 세르지우 모루는 단호했습니다. 뇌물 수수  돈세탁 혐의로 1심에서 징역 9 6개월 형을 선고받았고, 2심에서 12 . 대선 선거운동 와중에 1 후보가 부패 혐의로 수감되는 브라질이란 나라. 보우소나루가 이겼습니다.

 영화가 한국에서 화제인 이유는 너무 투명하죠? 모루  법무장관과 윤석렬 검찰총장에 대한 평행이론 기사까지 나왔군요. 모루는 전현직 대통령 부패를 성역 없이 수사한 영웅인 동시에, 노골적 언론플레이, 룰라 표적 수사 논란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국경을 넘어 본질은 검찰 권력의 힘입니다. 기소 수사권을 독점한 검찰은 때로 정의의 사도이지만 때로 몹시 정치적입니다. 기소권은 기소할 권리, 기소않을 권리 모두 무섭습니다. 이런걸  겪어봐야 알고, 남의 나라 사연 봐야  일은 아니고요.
룰라에겐 정말 죄가 없었을까? 위키 봐서는 모르겠어요. 우리 사회에서 최소한 수백 수천억 권력형 비리는 과거이지만, 룰라의 시대는 아직  정도로 투명하지 않았던게 아닐까 싶기는 합니다. 브라질이 선거마다 차떼기 하던 우리 과거와 닮았을 수도 있죠. . 사실을  모릅니다.

브라질 시민들의 갈라진 사투


브라질 시민들도 고단합니다. 독재와 싸워야했고, 잠시 룰라 대통령 호시절을 거친 뒤, 지우마 반대 집회 하느라 바빴고, 지우마 탄핵 시위에도 분주했고, 이후엔 테메르 정부의 부패와 추문에 반대 집회를 했고.. 물론 좌파와 우파가 다른 시위를 벌여야 하긴 했죠. 한쪽은 지우마 탄핵이 쿠데타이자 정치적 테러라 주장하고, 한쪽은 정당한 민주주의 승리라 외칩니다. 한쪽은 룰라를 지켜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한쪽은 룰라의 구금 소식에 폭죽을 터뜨립니다.

민주주의? 법치주의? 룰라 지지자인 감독의 마지막 내레이션은 건조합니다... 꾹꾹 눌러담은 절망이 아마 이런 다큐로 나왔겠죠. 민주주의, 망가지기 쉽고, 검찰과 기득권의 강고한 연대는 역사의 흐름을 끝내 바꿔냅니다. 개혁은 반동을 불러냅니다.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최근 코로나 백신에 대해,

 악어가 되거나 여잔데 수염이 나는 부작용이 생겨도 제약사에 항의를 못하니 맞지 말라고 했답니다. 마냥 웃을 수는 없는게 브라질은 최악의 코로나 피해 국가 중 하나입니다. 대통령이 코로나를 계속 음모론 취급하는 와중에 12월 현재 730만 명이 확진됐고, 약 19만명이 사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지지율은 안정적이라는 보도도 인상적이네요.

작년에 뉴욕타임스가 대대적으로 브라질 특집기사를 보도하면서 유튜브가 어떻게 극우 정치인 보우소나루를 당선시켰는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추적했죠.

How YouTube Radicalized Brazil

당시 미국 대선을 앞두고 살펴본 그 맥락을 감안해도, 체류시간을 늘리기 위해 더 선동적이고 자극적 영상만 추천해주는 유튜브 알고리즘에 대한 공포는 근거가 있습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지지율이 안정적인 것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시민들이 절대 지지하기 때문입니다.

브라질 정치가 아무리 혼란을 겪어도 흔들리지 않는 기득권 가문들도 봐야 합니다. 화무십일홍 정치권력과 달리 더 오래 가고, 힘이 센 권력들이죠. 또다른 수혜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테네르 정부는 미국 기업에 대해 특혜를 너무 많이 준 것도 논란이 됐거든요. 보통 많은 언론들은 브라질 노동자당의 부패와 타락이 문제라며 보도하지만, 본질은 미국의 기업결합체와 그들의 씽크탱크 AS/COA가 지우마 호세프와 룰라 다 실바를 ‘사법 쿠데타’를 통해서 끌어내렸다고 분석하는 기사 도 있습니다.

세상사,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조금 멀리서 '큰 그림' 보고 싶은 분에게 영화 강추합니다.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해요. 그래서 검찰은?


"놀라운 일은 사건 조작에 관여한 검찰들이 책임지기는커녕 아무도 사과하거나 반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나도 몰랐다’고 변명할지 모르지만 핑계다. 검찰이 공소에 불리한 증거는 숨기고 유리한 증거만 내놓아 사건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진실보다 성공에 집착하고, 잘못이 드러나도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검찰은 자정능력이 없음을 증명해왔다. 검찰은 강하게 장악하는 정부에는 앞장서 충성하고, 검찰의 자율성을 존중해주는 정부에는 오히려 달려들었다."  검찰은 왜 반성하지 않나[오늘과 내일/신연수]  마침 동아일보 12월24일자 신연수 논설의원 칼럼입니다.





무튼.. 사족으로... 저 장면을 어떻게 찍었지? 대통령 다큐는 저 정도 찍어놓아야 하는구나.. 놀랍기도 합니다. 인터뷰 영상 소스, 사적인 장면을 포착한 소스가 매우 풍부해요. 감독 역시 금수저로 대통령 쪽과 연이 닿았다 치더라도... 아. 저거 필요한데ㅠ


영화 공식 예고편입니다. 원제는 <The Edge of Democracy> 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세스 아메리카>성실하고 탁월했던 반페미니즘 선동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