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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Feb 01. 2021

<실명제 전봇대의 구구한 역사>

바쁜척 지나가려다.. 이 좋은 기사를 아침에 보는 바람에 잠시 정리했어요. 끈질기게 수년 간 보도해주신     금준경 님에게 감사드립니다. ^^


1. 같은 제도에 두 번의 합헙, 두 번의 위헌.

공직선거법 상 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가 위헌 결정을 받았습니다. 2021년 1월. 6대3.

이 조항은 두 차례나 합헌 결정을 받았던 과거가 있습니다. 다들 2015년 5대4 합헌만 기억하시는데 2010년에도 7대2로 합헌. 삼세판으로 위헌 받은 셈입니다.


실명제는 선거법 외 정보통신망법도 규정하는데 2012년 정보통신망법 상 실명제가 위헌 결정을 끝내 받았죠. 이 결과에 따라 다음이 공직선거법 실명제 헌법소원 냈다가 진 사건이 2015년 합헌 결정입니다. 세상에.. 그때도 놀라웠어요.


2. 실명제, 구멍 알고도 도입한 과거.


실명까지 반드시 쓰라는 건 아니라는 이유로 실명이란 '실명'도 못쓰고 '제한적 본인확인제'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비운의 제도. 실명제 도입을 촉발한 개똥녀 사건이나 연예인 악플 등은 사실 '완전 실명' 쓰던 사이트에서 비롯됐다는 건 중요한 아이러니.


당시 정서는 심각한 악플에 강경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쪽에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고 보입니다. 정부 여야 모두 찬성했죠. 대책 만든 정부와 국회만 탓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몰아간거죠. 큰일이다, 대책 세워라...


3. 실제 효과는 있었나.


요즘 실명 쓰는 페북이라고 악플 없나요? 악플 규제에 실명제는 정답이었던 적이 없어요.


실제 실명제 해보니 2008, 2009년 효과 없는 걸로 조사됐어요. 국가인권위원회가 폐지하라고 권고한게 2010년. 최시중 당시 방송통신위원장조차 아무래도 역차별 심각하니 재검토하겠다고 했죠.  2011년에는 기술발전 덕분에 실명제를 비웃다시피 회피하는 소셜댓글이 등장했죠.


4. 실명제의 댓가


"실명제 위헌? 이제와서 뭐하게요. 시장 다 망가졌는데".. 12년 위헌 결정 이후 어느 동영상 업체 대표님 말씀.


다음 tv팟이란 서비스가 UV(순방문자) 기준으로 잠시 1등 하던 시절이 있습니다. 유튜브에게 완전 넘어가기 전 얘기입니다. 유튜브는 2008~2009년 1년 간 PV와 UV가 각각 1000%, 2000% 성장했습니다. 역시 한국에만 있는 '저작권 삼진아웃제'와 맞물려 실명제 않는다는게 엄청난 장점이 됐어요... 당시 왜 국내업체는 유튜브처럼 실명제 불복종 않냐고 했는데, 쉽지 않은 얘기였죠.


5. 국민청원, 실명제 도입하라?


2018년 말 국민청원의 역기능을 지적하던 언론은 비실명이 문제라 했어요... 실명제 도입하라고요. 와우.. 실명제 역사를 아는 저는, 처음부터 소셜로그인을 택했는데요. 문제 해결에 실명제가 정말 도움이 될까? 고민했습니다...


정부가 민간 사이트에 실명제를 강제하는 건 위헌이지만, 각 사이트 선택에 따라 서비스 차별화로 실명제 도입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정부 사이트인데요. 그러나 실효성 없다는게 분명했습니다.


6. 공론장의 황폐화를 막으려면


실명 쓰는 페북도 그렇지만, 익명인 유튜브, 레딧에도 악플은 넘쳐요. NYT는 일부 기사 댓글을 '사전 검수후 선별 노출'합니다. 규모가 제한적이면 가능합니다. 제대로 된 토론이 되려면, 소통이 되려면 댓글은 지금과 다른 모습이어야 합니다. NYT 방식이든, 다른 방식이든 고민이 필요합니다.


7. 혁신을 막는 전봇대 비용


"2002년 불온통신에 대한 위헌 결정, 2010년 전기통신기본법 허위사실 유포 처벌에 대한, 이른바 미네르바법 위헌 결정, 2011년 공직선거법 온라인 표현 규제 위헌 결정, 그리고 2012년 실명제 위헌 결정.

매번 헌법재판소에 달려가야만 잘못됐다는 판정을 받다니, 사회적 비용 낭비 아닌가요?"


이거 예전 제 블로그에 올린 내용입니다. 히스토리도 다 제 블로그 자기복붙..ㅎㅎ  

사진은 2005년 모습. 역시 제 블로그에서 재발견. 시민사회도, 기업들도 모두 반대했어요. 국제사회도 우려를 표명했죠.. 그래도 했어요. 그 마지막 전봇대가 2021년에 뽑혔어요...  우리가 악플 대응을 고민하는건 당연해요. 하나의 정답이 있는게 아니라, 시대정신과 균형의 문제라 생각해요. 다들 찬성했던 시절도 있던거죠.. 해보니 아니라고도 했고. 십수년 우리 사회는 비용을 치렀습니다. . (그 시절 함께 머리 맞댔던 분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8.


이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국민청원에 실명제 요구하던 주장들이 떠올라서 그래요. 앞으로도 또 등장할 겁니다. 근데 이젠 다른 방식을 고민하자, 그건 해봐야 소용없다, 우리 사회는 비용을 많이 치렀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공론장을 가꾸고 키우는 일은 다른 차원에서 고민하겠습니다. 실명제가 도움이 된다면 과거와 다르게 어떻게 해볼까, 물론 고민해야죠. 일 터질 때 마다 대책을 선동하는 대신, 차분하게 논의하기를 바랍니다.


 2011.12

2011.12

2012. 3.


20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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