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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Feb 05. 2022

<미싱타는 여자들> 그들의 아찔한 소녀시대, 그리고

영화 도입부의 미싱타는 장면은 세 분의 웃음으로 더할 나위 없이 유쾌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일했다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하는 말이 아파요.

마지막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 극장 뒷편에서 박수가 시작됐다. 소매 끝으로 눈물 찍던 와중에 넘 고마워서 함께 박수를 쳤다. 극장에서 봐서 다행이다 싶은 #미싱타는여자들. 시작부터 끝까지 따뜻하고 유쾌한데 팩트는 절절한 다큐다. 45년 전 청계피복노조 활동으로 감옥에 다녀온 여성들의 인터뷰는 담담해도 담담할 수 없는 순간이 여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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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공부시킬 필요가 없다는 아버지 덕에 중학교에 가지 못하고 청계천 시다가 된 소녀. 또래 교복 차림 학생들은 할인받은 버스 회수권을 쓰는데 노동자는 어려도 일반 요금을 내는게 말이 되냐, 국가 손배라도 청구할 일이라고 열내는 장면에 갑자기 아득해진다. 배울 기회 대신 하루 16시간 노동에 내몰리면서, 일찌감치 차별받고 소외된 아이들.
앳된 소녀들은 종일 하늘 한 번 보지 못하고 미싱을 돌렸다. 명절이면 보름씩 잠도 못자고 일하다 미싱에 손을 다치고 다리미에 데던 1970년대.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던 소녀들은 어쩌다 육영수 여사의 지시로 공간을 얻어 노동교실에서 배움의 기쁨을 누렸다. 그 고마운 중등교육과정과 함께 10시 11시가 아니라 저녁 8시까지만 일하자, 노동권 공부하다가 빨갱이로 불릴지 몰랐겠지. 전태일 열사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수감된 성동구치소 앞에 찾아가 힘내시라고 '어머니' 외쳤더니, 어버이 수령이라 부르는 북한을 추종한다 했고, 9월10일까지 노동교실 공간 비우라는 건물주 요구에 9월9일 점거농성 했더니 북한 기념일 구구절에 행동한 빨갱이라고 경찰에게 죽도록 맞았다. 판사는 법정에서 북한의 지령에 따른거냐 물었다. 16살 임미경씨를 주민등록번호까지 조작해 소년원이 아니라 감옥에 보내버린 시절. 그 와중에 경찰서에 붙잡혀온 대학생들은 사식도 받고 속옷도 전달받았는데, 청계천 시다들에겐 보름씩 속옷도 못 갈아입게 막은 차별은 뭔가.

오늘의 음성과 함께 다큐에 담은 70년대 시다, 청계천 공순이들의 사진들은 너무 어려서 아리다. 그들의 기록을 10대에 읽은 기억이 어렴풋 살아난다. 생각해보니 그런 불온한  읽고도 괜찮은 10 소녀로 안온하게 자랐구나. 다큐가 전하는 사진  소녀들도 해맑다. 투사의 모습이 아니라 그냥 수줍거나 유쾌한 소녀들. 동시에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한채  시대 산업역군으로 혹사당한 소녀들. O 시다로 불리다가 노동교실에서 처음 이름을 찾았고, 배우는게 너무 재미있어서 10시까지 일하고  20 수업을 듣더라도 달려갔던 소녀들. 다큐 주역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님은 각자 소녀시절을 돌아보며 울고 웃는다. 용감했고 순수했던 동시에 한동안 꺼내보지 못했던 아픈 기억들. 영화가 시종 유쾌하고 다정한  주인공들 덕분이지만  묻어둔게 없었을까. 영화로 기록하는 과정이 치유였기를.


"1970~80년대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2만5000여명 노동자 중 80% 이상이 여성이었으며 청계피복노조원 대다수도 여성이었다"
다큐 주인공이기도 한 신순애님 인터뷰를 보면, 우리 사회는 그 어린 소녀들에게 빚이 많다.


그 소녀들에게 아직도 우리는 빚지고 있다는 건 최근에 알았다.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다.
팬데믹 이후 대기업과 스타트업 노동자들은 재택을 한다. 하지만 '필수노동자'는 사회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노동한다. 평범한 일상은 중단됐지만 그래도 사회를 지키는 최전선의 노동자. 가사 및 육아 도우미, 간호사, 돌봄 및 보건 서비스 종사자, 청소원과 환경미화원 등. 이런 필수노동자 4명 중 1명이 60대 이상 여성들이다. 불안정한 임시, 일용직에 최저임금을 감수하는 그들이 사라지면 대한민국은 마비된다. 그들의 노동 강도는 여전히 가혹하고, 대우는 하잘것 없다. 다큐 속 소녀 시다들이 딱 그 연배에서 그 일을 하고 있다.


그저 다른 친구들처럼 공부하고 싶었고, 일하면서도 배움에 필사적이었으나 존중은 커녕 고초를 겪었던 소녀들은 어떻게 됐을까. 사회가 기록하거나 주목하지 않은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단서를 필수노동을 지탱하는 여성 노동자 통계에서 찾는  가혹하다. 우리는 필수노동이라 부르면서  노동을 존중하는 법을 모른채 한다.

그럼에도 #미싱타는여자들  여자들은 여전히 씩씩하다.  시절을 버텨온 소녀시대 자신에게 "애썼다" 다독일  아는 현명한 여자들이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김정영, 이혁래 감독님에게 감사. 선진국 대한민국은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고 산업역군으로 한강의 기적을 만든 어른들의 세월 위에 컸다.  노동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채 사라졌거나 투명인간처럼 살아가는 여성들을 존중하는   다큐에서 단서를 찾는다. 친구 혜리, 존경하는 옥경 언니, 김탁환 작가님이 '강추' #미싱타는여자들.  보셨으면 좋겠다. 봉준호 감독님은 21 최고의 영화  하나로 꽂으며 “근래에  가장 아름다운 다큐멘터리 했다.

다큐의 주인공들이 부른 '흔들리지 않게' 뮤비.
다큐엔 '평화의 나무' 합창단이 부른 버전이 섞여 나오는데 진짜 멋졌다. 자막에서 김경애 선배 이름 보고 엄청 반갑고 고마웠다고 기록.


이건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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