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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ul 29. 2022

<원주 여넥스> 이렇게 멋진 언니들이 많은데 내 제목은


…원주역이라는 방송이 들리는듯 해 급히 에어팟을 빼다가 앞좌석 아래로 떨어뜨렸다. 양해를 구한뒤 기어서 간신히 줍고 어어어 허겁지겁 내렸더니 원주가 이렇게 황량한 곳인가? 서원주역이었다.

역 앞 52번 버스는 1시간 뒤 원주 복합문화교육센터에 내려줬다. 20분 거리로 계산했는데.. 뭐  여유 있게 오길 잘했지. 7000원 보리밥 백반까지 즐길 시간이 다행히 있었다. 골목의 식당이름이 #형님아우맛집 이라니. 반찬도 나물도 찐한 된장찌개도 푸근하고 깊은 맛이다. 아이 씐나. 금새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내내 들뜨고 즐거웠다. 일정 막바지, 발표 좋았다며 악수 한 번만 해도 되냐고 수줍게 묻는 젊은 언니에게, 한 번 안아봐도 되겠냐고 오지랖 반문한뒤 꼭 껴안고 토닥토닥까지. 자신의 아이들과 사진을 찍어달라고 청하는 언니도 만나고.. 진짜 멋진 어느 여름날이었군…



#여넥스, ‘여성기획자 넥스트 스테이지’ 행사는 1회가 부산 영도에서 열렸고, 이번에 원주에서 2회다. 원주 창의문화도시지원센터 사무국장 김선애님이 작년에 영도에서 호기롭게 낚아왔다고. 로컬에서 이것저것 만들어내는 여자들의 에너지가 환호성과 웃음 소리로 가득 전해진다. 아이스박스에서 커피 꺼내다 말고 2층 난간에 걸어둔 플래카드에 깜놀. 근엄한(?) 사진 대신 요즘 해방된 사진 보내길 정말 잘했지. 힙한 온니들 틈에 끼워주셔서 감사할뿐!


트레바리 클럽에서 만난 조원영님이 발표를 청했을 때, 그저 응원하는 마음이었는데 원주, 여기 이상하다. 멋진 언니들이 넘쳐나는데다 알차게 불렀다. 평화여행가 임영신님, 얼마전까지 공무원도 했던 가수 이윤신님과 발표 뒤 토크까지 잼났고, 페북에서만 뵙던 조선희님, 김옥영님을. 원주에서 뵐 줄이야.


일하는 엄마 기획자들 커뮤니티의 이혜윤님은 포스터 디자이너로서 알아봤다며 내게 싸인을 청했다. 사..사..싸인요? <동쪽의 여인들>이라는 강원 여성 창작자 네트워킹 프로젝트에 멋지게 나온 님의 싸인을 받았어야 하는거 아닌가.


힙한 이 공간은 원래 옛 원주여고. 전시와 온갖 행사를 열고 공유사무실,카페,키즈존,작가 레지던시 등이 자리잡았다. 문화도시가 전국에 열 몇 있다는데 다 원주 같은걸까? 궁금증은 진달래홀을 구경하다 놀라움으로.

1인 가구 테이블 등 시민들 니즈에 맞춘 다양한 기획(테이블)이 줄줄이 나온다. 오랜 극장을 살리고, 지역 주민이 만든 팸투어, 이야기 모임, 도시하루여행, 차등없는 예술교육, 책과 그림책 모임들.. 작고 단단한 에너지들이 온갖 작업으로 이어진다. 53개 주제의 각 테이블에 현재 참여하는 이가 700명에 육박하고, 지금껏 1.2만 명이 참여.. 전시 방문까지 따지면 10만 명이 원주의 문화기획을 경험한단다. 인구 36만 도시에서. 협동조합, NGO가 탄탄한 동네의 저력이 다른걸까.


토크 뒤 공연 들으며 부스에서 다회용 스테인레스 빨대를 샀고, 토크 때 만난 분이 파는 향, 인센스도 첨 사봤다. 커다란 연꽃이 담긴 꽃차를 맛보고.. 공연도 즐기고, 아아. 저녁도 최근 본 중에 가장 멋진 케이터링. 재활용이 가능한 오렌지색 다회용기도, 비건메뉴 영양톳밥도, 온갖 핑거푸드까지 뭐 하나 빠지지 않고 훌륭했다.


옛날 원고 때문에 알게 된 님이 예쁜 컵도 선물해주심. 역시 여넥스 굿즈.


정말 하라는대로 준비했는데 내 발표 제목이 ‘그 많은 여성들은 어디로 갔을까’.. 2년 전 세바시 발표 뒤 안해본 주제라.. 자료는 새로 만들었다. 대통령과 총리의 행사 사진을 뒤졌고..


선진국 대한민국인데 온통 꼴찌인 여성 인덱스들을 모았다. 세계경제포험 젠더갭 지수에서 우리는 106등. 끈끈한 이웃 일본이 120등이다. 유리천장지수가 16년 이후 21년까지 우리가 내리 꼴찌이고 일본이 꼴찌에서 두번째를 사수하다니 진짜 닮은건가.


BBC 다양성 보고서는 여전히 멋지다. 우리도 이런거 내는 미디어, 기업, 기관이 있으면 좋을텐데. 구성원 다양성 목표를 몇 년 만에 50, 15, 8에서 50, 20, 12로 상향조정했다. 젠더 비율 50, BAME(블랙, 아시안, 마이너 인종) 20, 장애인 12.. 다양성이 인재 확보와 조직 경쟁력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기업의 미친 실행력이다.


젠더 이슈도 투명성이 돕는다. OECD는 기업이 성별 임금 격차 공개하도록 권하는데, 우리나라는 비급여 부문만 공개하는 그룹에 있다. 선진 그룹에 들어가면 좋을텐데. 얼마나 더 열심히 떠들어야 변화를 앞당길 수 있을까. 성평등이 외려 후퇴하는 시절에 뭘 더 해볼까. 함께 모여 경험을 나누며 연대하는 언니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게 있을까. 일단 이런 기회를 사양 않은 나를 칭찬한다.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이걸 다 엄지로 치고 있는건 이유가 있다.

그 많은 여성은 어딨냐고 떠든 날, 멋진 언니들을 실컷 만난 날의 기록이다.


원주 뽀너스. 복숭아빵이라니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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