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냐 정혜승 Sep 11. 2022

<꽃을 보듯 너를 본다> 마음의 물기가 마르지 않도록


몇 년 만에 S님을 만나러 가는 휴일. 내내 애쓴 이와 만나기로 한뒤 미리 선물을 준비하는 센스는 없었으나, 마음 전할게 없을까 뒤지다가 나태주 시집을 발견했다. 책장에 오래 머물렀으나 내 눈길을 받지 못한 아이. 나보다 누군가에게 더 좋을 수도 있겠지.

한 시절, 힘들 때면 S님에게 달려가 하소연했고 툴툴댔다.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할 말을 조용하게 받아준 나의 대나무숲이었지. 그런데 떠나보내기 앞서 뒤늦게 슬쩍 펼쳐본 시, 아.. 이런 시.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만나지 말자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


=== ‘그리움’이란건 청개구리의 숙명이고, 원래 인생이 그렇구나. 돌아보니 다 맞네.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요,

나의 그리움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 와. 이런 미친…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 ‘사랑에 답함’까지 보니, 사랑이 얼마나 눈멀고 미친 짓인지 어이가 없네…


그리운 날은 그림을 그리고

쓸쓸한 날은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도 남는 날은

너를 생각해야만 했다.


=== ‘사는 법’이 이렇다는 것도 억장 무너지는 일이네. 으응? 나 왜 이렇게 삐딱하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

슬퍼할 일을 마땅히 슬퍼하고

괴로워할 일을 마땅히 괴로워하는 사람


남의 앞에 섰을 때

교만하지 않고

남의 뒤에 섰을 때

비굴하지 않은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미워할 것을 마땅히 미워하고

사랑할 것을 마땅히 사랑하는

그저 보통의 사람


=== 같이 늙어가는 그녀에게 이 시집이 괜찮을까 하다가.. 마음이 조금 나아진다. 우리는 다 그저 보통의 사람이다. 옛 동료를 만나러 간다.


‘안부’


오래

보고 싶었다


오래

만나지 못했다


잘 있노라니

그것만 고마웠다.


=== 오래 만나지 못한 이들에게 전하는 내 마음이구나.


‘아까지 마세요’


마음 또한 아끼지 마세요

마음속에 들어 있는 사랑스런 마음 그리운 마음

정말로 좋은 사람 생기면 준다고

아끼지 마세요

그러다 그러다가 마음의 물기 마르면 노인이 되지요


=== 적당히 덮으려다, 다음 장을 넘기면 또 마음이 촉촉해진다. 마음의 물기가 마르지 않게.. 아끼다 똥 되는 일 없도록.. 나는 마음을 퍼내고 퍼내고 퍼내련다. 퍼주고 퍼주고 퍼주련다. #남은건책밖에없다 #꽃을보듯너를본다


=== S님은 여전히 새벽에 눈을 뜨고, 걷고 공부한다. 유능하지 않은걸 참지 못한 세월이  길었던 언니.  고 노시라 말했지만, 내심 게을러진 나를 돌아보다니..아이고.. #부다스밸리 수다는 삶을 꼭꼭 눌러 쓰는 이를 다시 만난 시간으로 남겨두자.   보고, 말랑근육도 키우셈ㅎ #마냐먹방

매거진의 이전글 <쇳밥일지>어마어마하게 귀한 이야기인데 심지어 재미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