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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Sep 27. 2022

<키친 컨피덴셜>최장기 베셀 다운 폭로인데 진짜 매력은

한 요리사가 키친 현장에 대한 내부 고발 써서.. 취중진담? 더 뉴요커에 제출해버렸다. 1999년 4월 ‘이것을 읽기 전엔 아무것도 먹지 마세요' Don’t Eat Before Reading This 가 실렸다. 난리가 났다. 한 출판사가 책으로 내자고, 5만 달러를 제안했다. 당시 이 요리사의 주급은 850달러. 이 책은 44주간 NYT 베셀이었고, 22개국어로 번역됐다.


앤서니 보데인 Bourdain. 국내에 번역될 때는 보댕으로 소개됐지만, 그의 삶을 다룬 넷플 다큐 '로드 러너'를 보니 미국 친구들은 다 보데인이라 부른다. 오바마대통령과 지난 16년 베트남 대중식당에서 쌀국수를 먹던 그 분이다.  


"나는 르베르나댕(생선을 원산지에서 직접 사오는 것으로 알려진 별 네개 짜리 식당)에서 식사를 하지 않는 한, 월요일에는 절대 생선 요리 시키지 않는다. 나는 대부분의 월욜 해산물들이 얼마나 오래 된 것인지 잘 안다. 그것들은 대략 4, 5일 된 것들이다! 졸음이 오는 월요일 저녁 트리베카의 그렇게 나쁘지 않은 별 두 개짜리 식당에 들어가면 노란 참치, 기름에 볶아 끓인 회향열매, 절인 토마토, 샤프론 소스로 만든, 이름만 들어도 군침이 도는 특선 메뉴를 보게 된다. 당연히 먹고 싶지 않겠는가 메뉴부터 볼 때 우리는 확 띄는 두 단어는 바로 이것이다 월요일 그리고 특선 요리.
일요일의 해산물은 어떨까? 글쎄 가끔 먹는 거라면 뭐 괜찮겠지 그러나 비네그레트 소스를 곁들인 해산물 샐러드나 해물 프리타타처럼 오래된 재료를 처분하려는 의도가 명백히 보이는 음식은 절대 브런치 메뉴로 선택 할게 못된다. 브런치 메뉴들은 비용에 민감한 주방장들이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에 쓰고 남은 재료들과 정상적인 음식들을 모양에 맞게 썰고 남는 부스러기들을 처분하는 하치장이다. 살짝 구워서 레몬 한 조각 곁들여내면 훨씬 좋을 생선이 졸지에 비네그레트 소스를 잔뜩 뒤집어쓰고 나타나는 걸 본다면 메뉴에 “비네그레트 소스로 버무린’이란 것은 오래된 이거나 위장된 이란 뜻을 다름 아니다.
"

그는 '키친 컨피덴셜', 식당 주방의 비밀을 이렇게 폭로해버렸다. 음식재료 찌꺼기들을 활용한 음식들 이야기. 그리고, 그는 글을 정말 잘썼다. 난리가 난 것도 당연하다. 이야기도 그 매력적이지만 이 사람 자체의 매력에 빠져든다. 
미식가 부모를 따라다니며 일찌감치 맛을 어쩌고? 원래 다른 꼬마처럼 햄버거나 즐겼다. 다만 그는 '금기'를 깨는 도전, 저항에 더 꽂혔다. 어린이가 굴 맛을 아냐? 그런 탐험이 짜릿했다.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달콤했던 그 순간, 그 순간은 내가 지금까지 겪어 봤던 다른 수만은 최초의 경험들, 최초의 여자, 최초의 마리화나, 고등학교에 첫날, 첫 번째 출판 된 책, 기타 등등 보다 훨씬 더 생생하다 난 명예를 얻었다. 다들 나를 쳐다 보고 있었다. 동생은 여전히 물이 뚝뚝 떨어지는 번쩍거리고 아직도 살아 있고 어딘가 성기처럼 생긴 그 물건에 꽁무니를 빼고 있었다. 난 그것을 받아들이고 생 줄 아저씨가 가르쳐준대로 껍질을 입에 대고 기울인 다음 한 입에, 후루룩 소리를 내며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거기선 바닷물 막과 굴 맛 그리고 왠 일이지 미래의 맛이 났다. 이제 모든것이 달라졌다 모든것이. 난 살아 남아서 뿐만 아니라 기분이 좋았다."

레코드사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NYT 편집기자였던 어머니의 유복한 아이였으나 그는 늘 극단적 몰입, 저항에 꽂혔다. 휴양지 접시닦이 알바하다가 요리사의 마초적 아우라에 반해 대학을 중퇴, 요리학교 CIA에 들어갔고, 마약쟁이였고, 망한 셰프였다가 어느날 헤로인을 끊었다. 한동안 성실한 셰프로 살다가 저 글로 떴다. 해학적 독설가로 변신했고, 방송인으로 세계 요리를 소개했다. CNN의 간판스타였고, 한 해 250일을 해외에서 보냈고, 지구 26바퀴를 돌았다.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던 셰프였고 그는 어느새 요리 뿐 아니라 세계의 약자들까지 만나고 다녔다. 이 얘기는? 책이 아니라 넷플 다큐 '로드러너, 앤서니 보데인에 대해'를 봐야 그의 매력이 또 다시 보인다. 그의 사생활도. 그는 두번 결혼했고.. (알 수 없지만) 세번째 여자는 이탈리아 여배우이자 감독인 아시아 아르젠토였다. 다큐를 보면 들뜬 소년 마냥 행복한 연애에 빠진 중년 남자가 나온다. 아르젠토는 21살에 칸영화제에서 하비 웨인스타인에게 성폭행 당한 이야기를 21년 만에 칸영화제에서 '미투' 폭로했고, 보데인은 이 문제에 있어 아르젠토의 든든한 전우였다. 다만 늙은 남자의 젊은 연인은 타블로이드에 다른 남자와 함께 한 사진이 실렸고.. 보데인은 그 무렵 프랑스에 방송 촬영갔다가 자살했다. 진실은 알 수 없겠지.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잘 나가던 남자가 62세에 극단적 선택을 하다니. 음식에, 셰프의 세계에, 요리에, 방송에, 사람에 몰입하고, '영혼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 달려가던 그는 그렇게 멈췄다. NYT 최장기 베셀을 찍었던 이 책은 이런 인간의 매력을 한껏 드러내는, 글맛 좋은 에세이고. 

보데인과 아르젠토


"음식에는 힘이 있었다. 음식은 생기를 주고, 사람을 깜짝 놀래키며, 충격을 주고, 흥분시키고, 기쁘게 하고 또 감동을 준다.… 난 종종 내 인생의분기점을 찾아 내 삶을 되돌아 본다. 내가 정확하게 어디서부터 잘못 되어서 소리를 추구하며 쾌락에 목말라 하는 감각주의자가 되었으며, 내 영혼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 항상 충격적이고, 즐겁고, 위협적이며 교묘하게 이용할 거리들만 찾아 다니게 됐는지 궁금해 하면서." 


그가 드러낸 키친 컨피덴셜은 90년대 뉴욕의 잘나가던 식당 주방이 얼마나 마초적인지, 거친 해적들 마냥 난리쳤는지도 생생하다. 요리사가 되고 싶었던게 막 결혼한 신부가 피로연하로 온 식당의 셰프와 건물 밖 정사를 나누는 걸 보고 충격받은 덕분 아니겠는가. 무튼 좀 불편한 얘기들이 나오는데.. 그게 그 시절이겠지. 그는 여성들을 존중하지만 "일부러 더 멍청이처럼 구는 지옥의 라커룸 한 구석에서는 참고 견뎌야 할 일들이 많으며 그런 남성 호르몬이 넘치는 세계에서 살아남고 성공할 수 있는 여성들은 너무도 희귀"하기 때문이다.
군대를 가보지 않았지만, 책을 보다보면 주방은 딱 군대처럼 움직인다는 느낌이다. 실제 전쟁터다. 식당을 차리는 오랜 로망이 있었는데, 이 책 보고 마지막 미련을 접었다. 요리 좋아한다고 할게 아니다. 주방의 팀웍에 대해, 노동에 대해서도 밑줄 그은 대목이 꽤 된다. 


"제대로 이루어지는 분업 요리과정은 보기에도 아름다운 광경이다. 이것은 고속의 공동 작품으로 최고의 경지에 이를 때는 마치.. 발레나 현대무용과 흡사하다."
"최고의 경지에 이른 요리에 대해 대다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최고의 요리법도 아니고 최고로 기발한상차림도 아니며, 모든 재료와, 맛과 질감을 제일 창조적인 방법으로 결합 시킨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런 것들은 당신이 식탁에 앉기 이전부터 이미 준비되어 있는 것들이다. 당신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는 진짜 작업은 분업 요리 과정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일관성이 중요하며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변함 없이 반복 하는 행위, 정확하게 똑같은 방식으로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일련의 작업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자신만의 혁신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서 주방에 우리와 상차림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는 그런 분업 요리사는 아무도 원치 않는다."


"그들은 밑바닥에서 부터 일을 해서 올라온 사람들일 확률이 크다. 이들은 기름기가 잔뜩 낀 배수관을 청소하고, 접시에 남은 음식을 긁어내고, 새벽 4시에 물이 질질 흐르는 쓰레기 봉투를 내다 버려야 하는 일들이 어떤 것인지를 잊지 않고 있다. 바닥에서 부터 차례차례 배워 올라와 주방에 각 부서가 모든 요리법, 식당의 구석구석을 자세히 알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다른 누구보다 나의 방식을 배워서 익히는 그런 친구가 엄마 치마폭에 싸여서, 세상이 먹여살려 줄 거라 생각하고, 자기가 아는 게 좀 있다고 믿는 풋내기 백인보다 훨씬 쓸모 있고 오래 간다..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힘찬 경례와 복종이다."


그는 셰프일 뿐만 아니라 이야기꾼으로서 훌륭하다. 간만 몰입해서 달린 책. 그런데, 미안하지만 품절이다. 대신 책의 매력을 전달하는데 집중한 #김혜리의조용한생활 9월호 #책읽는의자 코너를 들어보시길ㅋㅋ
물론 이번 호 메인은 '헤어질 결심', '작은 아씨들'의 정서경 작가님과 혜리의 인터뷰! 추천한다. 

https://podbbang.page.link/XGB7h27acju6xb4n8


팟캐스트에서 함께 소개한 책은 기자 출신으로 이탈리아 요리 유학을 다녀온 권은중님의 <볼로냐, 붉은 길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스페인 미슐랭 식당 '엘 불리'의 페란 아드리아가 쓴, 주방 직원들 75명의 스탭밀 30일치 요리책인 <패밀리 밀> , 몇년 전 정말 재미있게 읽은 <포크를 생각하다>. 정말, 식탐과 요리에 대한 애정은 나도 꽤.. 다만 앤서니 보데인 만큼 이야기를 풀지는 못하니.. 책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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