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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Nov 08. 2022

<아젠다 세팅>새삼스러운걸 어렵게 쓴 교과서이지만 새삼


“영국 언론은 전혀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는데도 국가의 정치 담론을 위한 아젠다를 설정한다. 우파 남자 세 명이 언론의 75% 이상을 통제하는데도 말이다”
서문에서 인용한 가디언 논평이 인상적이라 기대했으나, #아젠다세팅 책은 미디어 연구자를 위한 교.과.서.

미디어가 공공 이슈 아젠다 세팅에 미치는 영향? 저자인 맥스웰 맥콤스 텍사스주립대 교수가 도널드 쇼 교수와 1968년 ‘채플힐 연구’를 통해 ‘아젠다 세팅’이란 용어와 개념을 정리한 얘기다. 즉 영향력 있는 미디어에 의해 여론이 조작될 수 있으며, 대중의 심리까지 조작될 수 있다는 얘기를, 학자들의 언어로 학자들을 위해 정리했다. 나름 박사수료자인 나는 박사가 아닌 탓인지 몹시 어려워 결국 중반 이후 휙휙 보다 말았다. 알고보니 함께 읽은 #초월회 다른 분들도 모두 절래절래. 다만 L님, Y님 두 분의 발제자 정리를 듣고, 언론학 박사인 M님 배경설명을 듣고서야 아. 그런 얘기였구나 했다. 이래서 같이 읽는거지.


여론은 어떻게 만들어지냐고? 미디어가 보도하는 게 여론이 되고 공공 아젠다가 된다는 얘기. <뉴리퍼블릭>을 창간한 월터 리프먼은 “여론이 환경에 반응하는게 아니라 뉴스 매체가 만들어 낸 가짜 환경에 반응한다”고 지적했지만, NYT 윌리엄 새파이어는 ”정치에서는 언론과 대중이 널리 인식한 것이 곧 진실”이라고 했다. 실체적 진실과 진실이라고 믿는 것 사이에 괴리가 있지만, 실체보다 ‘믿는 진실’이 현실에선 의미를 갖는다는 건데, 부인하기 어렵다. 실제로 뉴스는 현실과 종종 다르다. 책의 사례는 1993~1995년 미국의 실제 범죄율은 낮아지고 있었지만, 대중의 범죄 인식과 관심은 폭발한 배경. O.J 심슨 살인사건 등에 보도가 쏟아진 탓이다.


아젠다 세팅은 왜 일어나냐고? 우리는 주변을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를 타고났기 때문에 인지적 진공상태에 놓일 때마다 머릿속에 지도를 그리기 전까지는 불편함을 느낀다고. 이런 정향 욕구(need for orientation)가 현재 아젠다를 찾도록 한다는 건데.. 정향 욕구라니..원어 없었으면 이해 못할 번역ㅠ
사람들의 관심은 제한적이라, 공공 아젠다는 경쟁 끝에 2~6개만 살아남는 편이며 예전보다 더 빠르게 뜨고 꺼진다. 어려운 얘기지만, 관련성 높고 불확실성 낮은 이들은 기존 경향을 강화하려고 편파적 매체를 찾고, 관련성 낮고 불확실성 높으면 불확실성 낮추려고 더 균형 있는 매체를 찾는다는데 과연.

어찌보면 다 알만한 내용인데, 무지무지무지 어렵게 전문적으로 썼다. 소셜미디어 시대에도 레거시 미디어 아젠다 세팅 힘은 유효하다는데 역시 과연.

다만, 누가 미디어 아젠다를 설정하냐고? 1) 뉴스 출처 2) 다른 언론사 3) 저널리즘의 규범과 전통 이라는 설명인데, 뉴스 출처가 결국 취재원이다. 10.29 참사에서 기자들의 취재가 이어지지 않았다면 "경찰·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서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는 장관의 발언이 굳어질 뻔 하지 않았나? 그렇게 권력자가 아젠다를 선점해버리는 일은 종종 발생한다. 난데 없이 서해공무원 사건이 현안으로 재등장하는 것도 그런 거다.


나는 마침 #가짜뉴스의_고고학 책을 읽었던 터. 누가 아젠다를 세팅하냐고? 그건 언제나 권력자,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이었다는 역사를 살펴봤다. 그리고 권력과 결탁한건 늘 언론이었다는 사례도 넘치게 봤다. 아젠다 세팅이라는 고상한 개념이 아니라도, 미디어가 왜곡해온 일이 한둘이 아닌데 그 권력과 영향력이 소셜미디어로 넘어간다는 이유로 새삼 근심을 표하다니, 자성이 먼저 아닌가? 무엇보다 기자실에서 뉴스 공급자인 취재원 멘트를 받아쓰다보니, 주어는 언제나 권력자. 시민의 눈으로, 시민을 주어로 말하는 뉴스에 인색하잖냐. ’일부 네티즌‘을 앞세운 셀프 주어 말고.

10.29 참사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중요한 보도들은 받아쓴게 아니란게 포인트. 열심히 하는 개별 기자들에게 감사하지만, 언론은 아젠다 세팅에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 권력을 소셜미디어에 넘기네 마네 하기 전에. 새삼스러운 교과서이지만, 새삼 이 문제에 진지할 수 밖에 없다.


무튼, 이 연구 자체가 정치커뮤니케이션에서 나온 것이라는데, 정치권력 뿐 아니라 경제권력의 아젠다 세팅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는 R님 지적은 진지하게 접수. '가짜 현실'이 아니라 언론의 게이트키핑을 통해 '재현된 현실'이 전해진다는데 번역이 미디어 용어를 잘 몰랐을 가능성도 접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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