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일 한 나라의 왕자고, 엄청 똑똑하게 잘생겼는데, 왕국은 부유하고 국민들은 나를 사랑하고 나에게는 예쁜 여자친구도 있다면, 정말이지 남부러울 것 하나 없이 즐겁기만 하겠다. 자존감 같은 걸 고민할 이유도 없고. 하지만 그게 단지 남들 눈에 비치는 모습일 뿐이라면? 아버지는 비명횡사했고, 원래 나는 왕위 계승 서열 1위였는데 엄마가 삼촌과 재혼하는 바람에 나이 서른에 아직도 왕자라면? 아버지가 정복했던 옆 나라의 왕자는 벌써 전쟁을 이끌며 자기 못을 다해내고 있는데, 나는 아직도 방구석 여포일 뿐이라면?'
햄릿 얘기다. 갈팡질팡 하던 비극의 주인공인데 무튼 관점이 신박하다. #실례지만_이책이_시급합니다 이수은 님을 김민식 님이 재인용했다. 관점을 바꾸면, 이야기도 달라진다. 내 삶을, 당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관점은 어디를 향하는가.
Minsik Kim 님 새 책 #외로움_수업 후딱 완독했다. 예능 감각은 기본이고 오랜 글쓰기로 다져진 술술체 글이 쉽게 읽힌다. 뒷부분 3분의 1은 그를 만나러 가는 차에서 다 읽었다. 시작하면 그냥 끝까지 보는 종류다.
살면서 실수 않는 인간은 없다. 그도 그랬다. 2020년 12월 문제적 칼럼은 나도 기억한다. 왜 그러셨을까… 실수 이후의 대응이 관건이다. 그는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 사람은 언제고 똑같은 사고를 친다"며, "내 편을 모아 그 안에서 보호막을 치는 대신, 철저하게 혼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그는 신문 칼럼 연재를 그만두고, SNS를 비롯해 매일 써오던 블로그도 중단했다. 회사도 끝내 명예퇴직을 택했다. 그는 외로움에 스스로 가두고, "온전한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보냈다. 이 책은 그런 시간을 다시 쌓아올린 결과다. 실수 이후 지독하게 몰아붙인 과정의 기록이다. 초라하고 불만족스러운 나를 인정하는 여정이고, 인생을 리셋하는 도전이다.
그리고, 사실 서평에세이다. 다독가인 그는 커피술담배를 하지 않는다. 카페인, 알콜, 니코틴에 기대지 않고 인생 즐기는 비법이 그에겐 책이다. 인생의 질문을 풀어가는 것도 책에서 힌트를 얻었고, 그걸 고스란히 이 책에 풀었다. 부부 둘이 놀기 시작한 마당에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실질적 팁이 많은 것도 유익했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도 새삼 뭉클하다.
"이제는 제발 솔직하게 말해다오. 왜 내 그림은 팔리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그림을 팔 수 있을까? 돈을 좀 벌었으면 좋겠다"
기차 삯이 없어서 동생에게 물으러 가지도 못하는 고흐. 동시대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한 외로운 영혼이었다. 그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이, 그저 버틸 수 있도록 옆을 지킨 이는 누구였을까?
조용히 숨고 싶은 날, 나를 먼저 챙겨야 할 주어가 나다. 위대한 인물 고흐도 잘 못했던걸, 저자는 시도했다. 그리고 나도 할 수 있다. 외로움은 다정한 촉수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능력을 키우는 모양이다. 민식님 만나고 에너지 듬뿍 받고 돌아왔다. 옆지기가 누구 만나러 갈 때, 내가 따라가겠다고 나선게 민식님이 처음이다. 나도 촉이 좋다. #남은건책밖에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