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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Mar 14. 2023

<성냥과 버섯구름> 세상 모든 일에는 이야기와 맥락이


2000년 전 바그다드에 배터리가? 첫번째 에피소드를 보고 바로 알았다. 이집트 여행에 이 책 가져오길 잘했다. 유적의 미스테리에 더해 일상의 작은 물건을 중심으로 인류 역사가 이어진다. 현대 사회의 문제까지 모든게 연결된다. 끝내준다. 귀국 직후 녹음해야 하는 #조용한생활 #책읽는의자 2월 책으로도 바로 결정했다. #성냥과_버섯구름 어디서든 신나게 떠들 에피소드가 줄줄이다.


덕분에 친구 책을 소개하는 것에 대한 약간의 부담을 다 털어내고, 당당하게 전했다. 저자인 오애리 선배, 구정은과 신문사 국제부에서 함께 일했던 시절은 일은 즐거웠고, 눈은 높아지며 성장했던 시기다. 국제문제 전문가들이 무심하게 생략된 여러 이슈,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들의 뒷이야기를 정리해주다니 고맙지. 어느 나라 정부, 대통령, 어려운 얘기 말고, 국제뉴스는 알고보면 훨씬 재미있다.

https://podbbang.page.link/jAQNyq8Cy9ZNK8EJA


1936년 이라크 바그다드 인근에서 질항아리 하나가 발견됐다. 겉에서 보면 13cm 평범한 항아리인데 안쪽이 이상했다. 철로 만든 봉이 잇고 얇은 구리판이 주위를 돌돌 감고 있다. 원통 바닥과 윗부분엔 역청을 발랐고, 가장자리엔 납땜 흔적이 있었다. 철봉이 부분적으로 녹아 있어 와인이나 식초 같은 산성 물질을 담았을거란 얘기가 나왔다. 2년 뒤 오스트리아 고고학자인 빌헬름 쾨니히가 논문을 발표했다. 고대 이라크인들이 전류를 이용하는 도금 기수를 썼다는 가설을 담았다. 산성물질이 전해질 역할을 하고, 구리와 철봉이 양극과 음극 역할을 한다나? 배터리 얘기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4500년 전 이집트 석판에 전기장어를 이용한 치료법이 남아있다. 1800년 이탈리아 과학자 볼타가 배터리를 발명한 건 1800년대 얘기지만 그 과정에 다양한 실험이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자민 프랭클린(이제 내게는 가짜뉴스의 아버지 정도로 보이지만)도 1750년 비오는 날 열쇠를 연에 띄워 번개로 전기 실험했다. 1950년 알칼리 전지가 나왔고, 1970년 니켈 전지, 1980년대 중반 리튬이온전지가 나왔단다. 일본 아사히 케미컬 요시노 아키라가 다른 학자들과 함께 2019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게 리튬이온배터리 발명한 공로다. 와중에 이라크의 저 항아리는 사라졌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열흘 전 이라크 국립박물관에서 유물 1만5000점이 사라졌고, 아직 1만 점 행방이 묘연하다고. 이렇게 배터리의 모든걸 섭렵하고 나면 이거 너무 재미있잖아!


성냥, 이름은 '석류황'에서 나왔다. 가느다란 소나무 가지에 유'황'을 찍어 '돌'처럼 말린 조선시대 물건이다. 인류 문명의 역사는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 것을 몰래 훔친 이래, 불의 역사다. 140만년 전 호모에렉투스의 불 피우기부터 알프스 빙하의 5000년 전 미라 '아이스맨'이 가지고 있던 부싯돌과 말굽버섯 조각들. 인간이 불씨 지키기에서 벗어난 건 200년도 안된단다. 1826년 영국 약제사 존 워커가 성냥을 발명했다. 성냥개비와 사포를 짝으로 함께 팔면서 '매치'가 됐다고.

초기 성냥은 '독'이었다. #에놀라홈즈2 이야기처럼 백린의 독성 때문에 턱뼈가 변형되는 '인중독 성괴저' 환자가 성냥공장에서 속출했다. 1840~1850년대 성냥공장 안전 실태를 다룬 보고서가 쏟아졌고, (바로 그) 찰스 디킨스가 백린 위험성을 고발했고, 1888년 런던 성냥공장 '브라이언트 앤드 메이' 여공들이 파업했다. 그걸 지지한게 조지 버나드 쇼.. 인류 역사는 비슷한 풍경이 적지않은데, 수십년 경고 속에 1872년 핀란드가 먼저 백린을 금지했고, 프랑스가 뒤를 따르는데 25년 걸렸다.(1897년) 또다시 9년이 흘러 1906년 베른 협약에서야 국제적으로 성냥 제조에 백린 사용을 금지하기로 결의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지. 수천 도의 화염을 만드는 백린탄은 백린 공포의 끝판왕이다. 1980년 민간인 지역에 백린탄을 금지하자는 협정이 나왔으나 1997년 '화학무기 금지 협약'에서도 또 얘기해야 했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백린탄을 투하했다고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가 나선게 2009년이다. 2010년 시리아 전쟁, 2019년 터키의 쿠루드족 토벌에 이어 2022년에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인류가 뭔가 개선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종종 다른 욕심에 밀린다.


버섯구름 얘기도 잠깐 해보자. 프랑스가 남태평양 무루로아 환초에서 핵실험을 한건 193회. 전세계가 비판했으나 1966년부터 30년 동안 계속했다. 폴리네시아, 타이티 사람들 11만 명이 방사능에 노출돼 건강을 잃었다는 무루로아 보고서가 공개된 것은 또다시 한 세대가 지난 2021년 3월 일이다. 끝내프랑스의 보상을 받은건 이 중 63명이다. 프랑스는 식민지였던 알제리 사막에서도 핵실험을 계속했는데 어찌됐는지 보고 오라고 알제리 군인들을 보냈다. 핵실험 기니피그 논란의 실체다. 핵물질 1메가톤 위력은 나가사키 핵폭탄의 50배인데,  1945년~1992년 실험실이 아니라 대기중 혹은 수중에 쏜 핵폭탄이 545메가톤에 달한다. 미국은 1050여 차례, 소련은 700회.. 중국은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핵실험을 계속했다.


각 챕터의 이야기들에 홀딱 빠진 가운데, 팟캐스트에서도 강조했으나 여자들 몇몇 얘기는 남겨놓자. 일단 4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그리스 여성 철학자이자 수학자 히파티아가 끈질기게 구애하는 남성을 쫓아버리기 위해 사용한 생리대를 집어던졌다는 일화부터 시작한다..
접착띠가 등장한게 1980년대이니, 생리대가 쓸만해지기까지 오래 걸렸다. 그럼에도 '생리'는 뭔가 부끄럽다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았고, 한국 광고에서 파란색으로 표현되던 생리가 붉은 색을 되찾은건 2017년, '생리'란 이름이 등장한 건 2018년 일이란다. 미투와 함께 젠더 의식이 높아진 덕분이다. 2015년 기준 생리대가 없어 결석하는 여학생은 전세계 6억명. 원재료 값에 비해 40배까지 가격이 비싼 생리대 값도 논란이다. 여성 인권 필수품인 만큼 '탐폰세', '월경세' 세금을 없애자는 운동이 글로벌하게 펼쳐지고 있다. 생리 빈곤(period poverty) 이슈를 달리 어찌 풀어보려나.

1960년 등장한 경구피임약은 20세기 최고의 발명으로 꼽힌다. 여성의 사회활동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는데 이게 100년도 안된건 당연한건가.. 3800년 전 이집트 파피루스에는 아카시아 나무 진액을 질에 넣어 피임하는 얘기가 나오고, 하여간에 이 분야 인류 역사도 골때린다. 대추와 아카시아 잎사귀 반죽, 꿀 바른 양털을 질에 넣는 이집트 스타일, 악어 똥이나 코끼리 똥을 이용한 방법, 여기서 이 분이 왜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관계 전 질 안에 삼나무 기름을 바르라 했다고. 그나마 히포크라테스가 질 안을 씻는 방법을 권했다지만, 그리스 로마는 양의 창자, 물고기 껍질 등을 콘돔처럼 썼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도 이 책 덕분. 예루살렘에 대사관 둔게 미국, 과테말라, 코소보, 온두라스 뿐이라고? 그게 어찌된 일인가 하면...책을 보시라.
지브롤터 분쟁의 역사는 혼맥으로 엮인 유럽 왕가의 땅따먹기 덕분이란 것도, 이란과 미국의 오래된 갈등도 어이 없다. 윈스턴 처칠이 이란 새 정부를 제거하려고 트루먼 대통령에게 SOS 치고, 당시 한국전쟁에 바빴던 트루먼 대신 결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미영 합동작전으로 이란 쿠데타 작전 벌이고.. 애초에 처칠이 이란 정부를 바꾸겠다고 결심한 배경에는 OO가 있고..


재미있다고 다 소개할 수는 없는 법. 팟캐스트에서 욕심내다 힘들었다. 근데 너무 신나서 떠들었다는 평. 이 책이 그런 책이다. #남은건책밖에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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