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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Mar 15. 2023

<돈과 나와 일> 13인의 허심탄회 돈과 일 얘기

좋은 글은 어떻게 탄생할까. 고민 깊게 한 적 있다. 글값을 제대로 쳐줘야 한다고, 보상이 필요하다는 가설은 매우 자연스럽게 나온다. 평판 보상과 더불어 제대로 된 물적 보상이 필수다.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들이는 노력이 달라진다. 30만원 짜리 원고를 쓸 때의 마음과 100만원 원고를 대하는 자세는 다를 수 밖에 없다. 한결 같다고 하면, 세계관이 나와 다른 걸로 해두자.


원고료는요? 강연료는요? 이걸 먼저 꼭 물어보리라 다짐다짐하는데, 다짐할 만큼 어려운 일이다. 돈 얘기를 꺼내면 괜히 속물 같잖냐. 내 고고한 이미지에 안 맞는 것 같고. 연봉 등 온갖 돈 협상에 무능했던 주제에, 그거 잘하라는 강연도 곧잘 하고 다니니 나 진짜 웃긴 놈일세.  


밥벌이의 엄중함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왜 돈 얘기는 그리 어려울까. #돈과_나와_일, "우리 삶에서 돈과 일과 꿈을 조화롭게 배치하기 위한 방법론"이라는 책은 나같이 표리부동한 이에게 매우 흥미롭다. 배우, 소설가, 시인, 사진가, 요리사, 디자이너, 기자, 유튜버 등이 각자 돈 얘기를 솔직하게 끄집어냈다. 여행작가 음식작가 최갑수님이 엮었다.


글 잘 쓰는 배우, 김의성 옵바의 문장부터 빌려보자. 이거 쫌 멋지거든.


"세상일에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그리고 굳이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는 일이 많이 있다. 하지만 '내가 돈을 많이 받고 싶은 이유' 같은 건 어느 정도 멋지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번도 돈에 진지하지 못했던 내가 부족했다. 김 배우가 말하는 돈의 효과란 이렇다.


"프로젝트 당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다면 내가 참여해야 하는 프로젝트의 개수를 줄일 수 있다.. 당연히 프로젝트 당 기울이는 노력과 시간을 더 쓸 수 있다. 캐릭터를 더 깊이 연구할 수 있고, 연습을 더 많이 할 수 있고, 그만큼 내 연기의 밀도도 달라질 것이다.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는 더 좋아질 것이고, 그만큼 내 작업에 대한 나의 만족도도 커질 것이다."


완벽한 이유다. 돈을 많이 받아야 할 필요충분한 이유다.


좋은 글은 어떻게 탄생할까? 그 질문으로 돌아가서, 시간과 노력을 많이, 아주 많이 들여야 한다. 몇 번의 전화통화로 취재해 하루 몇 개씩 마감하는 인생은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가능할까? 아..이것도 돈이란 말인가..


하지만 김민식 피디님 책 #외로움_수업 에피소드를 보면, 고흐는 돈 못 벌면서 그림을 그렸다. 제대로 된 보상도 없이, 고단한 삶을 그림으로 채웠다. 돈이 늘 해답이고 열쇠일리 없다. 시간과 공을 충분히 들일 여유가 없는 이들도 가끔 전설이 된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니, 이것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천재들이 아니라 나같은 보통사람에게도 돈이 만능 치트키는 아니다. 하지만 돈에 집착하는 것 만큼 돈에 쿨한 것도 적당해야 한다.


소설가 김중혁 편을 인용해보자.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돈보다 중요한 건 재미라고 믿고 싶었다. 그렇게 얘기하고 다녀야 내가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 돈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순간 글을 쓸 때의 나의 진심이 훼손되는 것 같았고, 돈 때문에 어떤 일을 한다는 게 무척 자존심 상할 것 같았다. 스스로에게 '돈보다는 재미'라는 문장을 세뇌시켰고, 그렇게 한동안 믿기도 했다. 길지 않았다. 애초에 '돈보다는 재미'라는 문장은 유효기간이 짧을 수 밖에 없다"


내가 돈을 포기하고 재미있는 걸 찾아 헤맨 인간인데, 그 유효기간이 짧다고? 돈에 초연한척 하는 멋부림에 빠졌던건가?ㅎㅎ 뭐 이런들, 저런들.  


여럿의 돈 얘기는 삶 얘기이기도 하다. 오은 시인은 "지난 세기 후반에 사람들이 바쁘다고 말하는 경향이 증가한 이유는, 진짜 할 일이 많아서라기보다 그것이 '명예의 새로운 징표'가 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서구 유럽의 귀족이나, 조선의 양반 중 한량이나 한가할수록 추앙받은거 맞지. 바쁘게, 떼돈을 벌어야 인정받는 시대보다 그게 나은가? 그건 내가 귀족일 때만 좋은걸테다.


부부 둘이 놀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 부부 이야기가 됐다. 당장 돈이 문제다. 마침 암수술로 받은 보험금이 당분간 놀고 먹는 기반이 됐다. 인생 참 알 수 없지. 집 외에 여유자산이 별로 없는지라 막막할 법도 한데, 그냥 담담하다. 돈이 없으면 없는대로 조금 궁상맞게 지내면 되고, 언제든 전세 싼 빌라로 이사가면 해결되는 것도 있고, 책은 도서관에서 빌리면 된다고 생각하니 괜히 든든하다. 우리 삶을 온전하게 지속하는데 필요한 돈이 얼마나 될까? 둘이 프리랜서로 살아봐도 나쁘지 않겠다. 뭐든 재미난 '일'을 하면 그만이다. 돈의 노예도, 일의 노예도 아닌 삶은 이제부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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