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막연하게 멋지다. 문명과 함께 쌓아 올린 사상의 토대가 단단해 보이고, 합리적 이성으로 움직일 것 같다. 오리엔탈리즘과 반대로 이게 서구 사대주의의 영향이겠지. 이런 선입견을 흔드는 책이다. #오래된유럽
한때 한국 기자였던 저자는 스페인 남자와 결혼해 스위스에서 살고 있다. ‘당신들이 아는 유럽은 없다”는 부제를 내밀만큼 현장 경험을 쌓았다. 마침 유럽 여행을 떠나면서 이 책을 가져온 나를 칭찬한다ㅎ
유럽에 대한 책이지만, 사실 유럽이 아니라 세상이 보인다.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인간들이 무리를 지을 때 나타나는 특징들이 보인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적’을 만들어내고 배타적 선동을 하는 과정이 보인다.
유럽연합으로 뭉쳐 국경을 열었던 이들이 팬데믹, 아니 그보다 앞서 이민자를 막기 위해 국경을 닫았다. 기득권과 약자가 갈등하는 건 국가 단위에서도 마찬가지다. 부국과 상대적 빈국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부딪친다. 더 필요한 곳에 보조금을 주는 게 부당한가? 내 주머니를 위협한다면 그렇게 받아들인다. 약자를 위한 연대는 개별적으로나, 국가 단위에서나 어려운 일이다. 더 큰 공동체의 가치에 동의하고도 그렇다.
스페인 여행 중이라 책에 각별히 많이 인용되는 스페인 사례가 무척 반가웠다. 파시스트 프랑코가 ‘게르니카’ 학살까지 벌이면서 수십 년 독재에 성공했던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그의 사후 ‘정치적 사면’으로 피 묻은 과오를 묻고 지나간 건 몰랐다. 피해자의 용서 없이, 정치인들끼리 “우리 더 이상 과거를 묻고 따지지 말자”라고 합의했었구나. 진정한 통합, 화합이라 했구나.
한쪽에 극단주의가 있다면, 정치적 올바름을 향한 주장도 단단해진다. ‘친애하는 부모님’ 대신 ‘친애하는 부모님과 법적 보호자님’에게 보내는 스위스 가정통신문에는 그간의 많은 논의가 드러난다. 별 희한한 이슈까지 사사건건 국민투표를 진행하는 스위스 사례는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비록 투표율이 절반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국민투표를 계기로 현안에 대해 찬반 토론을 볼 수 있다. 우리가 국민청원을 할 때도, 그 사안의 경중에 상관없이 국민들이 원하는 이슈로 서로 떠들 기회가 됐다. 국민청원 답변은 찬반을 아우르면서 정부의 가치에 맞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책은 답보다 질문을 더 많이 담고 있다. 복잡한 시대에 정답이 없는 게 많다. 내가 믿는 정답을 반대편에 있는 이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는 게 먼 길이라 그렇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돌파구를 찾는 일이 거의 전부다. 표현의 자유와 부딪치는 혐오와 차별을 견제하는 것도, 무리의 이익을 위해 다른 이들을 배제하는 선동을 막는 것도 쉬운 여정이 아니다. 근데 더불어 살지 않고 답이 없다. 국경이든, 성벽이든, 아파트 담벼락이든 높게 세워 막는 게 답이라 믿는다면, 우리 얘기 좀 해봐야 하는 거고.
나의 소감은 이렇게 진지하고 밋밋하지만, 책은 사례 중심이라 훨씬 재미있다. 특히 축구를 둘러싼 온갖 일들이 인상적이다. 세계 평화뿐 아니라 진보를 위해 축구에 더 관심을. #남은건책밖에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