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똑똑하고 잘난 정부 인사들이 대형 사고를 쳤다. 1980년대 말 세제 개혁을 한답시고 인두세(poll tax)를 도입했다. 자산 대신 개인의 '머릿수'에 세금을 부과했는데 부자들은 세금이 줄었고, 약자들은 도저히 낼 수가 없었다. 25만 명이 거리로 나서서 저항했다. 이게 개혁이라고? 대체 왜 그런 판단을 한거지?
책임자들은 모두 부유한 명문가 자제들이었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출신이었다. 영지에서 꿩 사냥을 하고, 카드게임과 파티를 즐기는 이들이었다. 똑똑한 그들은 협업도 좋아했다. 그런데 다 같은 부류였다. 자기들끼리 현명하다는 착각에 빠졌다. 그들은 보통 사람을 보지 못했고, 이해도 못했다.
"동일한 배경을 지닌 똑똑한 사람들이 의사 결정 그룹에 배치되면 집단적 맹목 현상을 보이기 쉽다"
#다이버시티_파워, 왜 다양성이 중요한지 영국 기자가 추적한 책이다. 유유상종, 지들만의 세상에 사는 잘난 인간들만 모이면 리스크다. 기업도 그렇지만 정부 운영 사례가 가관이다. 2023년 우리 정부를 생각하면서 봐도 모든 사례가 통한다. 법대 나온 검사들끼리 뭐든 다하면 구멍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런거다. 현재 대통령실 1급 비서관들 자산이 평균 48억원이다. 세계관이 보통사람들과 다른게 당연하다. 요즘 대통령실 판단이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고? 그들은 뭐가 문제인지 인지하지 못한다. 왜? 다양성이 없는 집단이다.
이 재미난 책은 #조용한생활 4월호에서 떠들었다. 설명이 쏙쏙 들어온다고 방송전문가가 감탄했으니 들어보시라ㅋㅋ
다양성 부족이 왜 문제냐, 책은 시시콜콜 사례로 말한다.
2000년 영국 블레어 정부는 범죄를 줄이기 위해 폭력배가 체포되면 바로 현금인출기로 끌려가 그 자리에서 100파운드를 내게 한다는 방안을 고안했다. 폭력배 대부분은 현금카드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은행 계좌에 100파운드가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정부 누구도 생각 안했다. 바보같은 방안이지만 그들은 진지했다.
미국 CIA는 오사마 빈 라덴의 위험성을 간과했다. 1996년 아프가니스탄의 동굴에서 미국에 전쟁을 선포한 그는 긴 턱수염에 허름한 차림이었다. 당시 CIA 분석가들은 동굴에 사는 초라한 행색의 남자를 위협으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차림, 동굴, 모든게 컨셉이었다. 선지자 스타일이었고, 동굴은 신성한 상징이었다. 그걸 놓친 CIA는 다양성과 거리가 멀었다. 최고의 엘리트들을 뽑았더니 대부분 중산층 출신, 개신교 앵글로색슨 백인 남성이었다. CIA는 1967년 직원이 1만명을 넘던 시절에도 아프리카계가 20명도 안됐다. 여성들이 승진 차별을 이유로 소송을 걸자 100만 달러 이상 여러 차례 합의금으로 막았다. 그들에겐 '관점의 사각지대(perspective blindness)'가 너무 컸다.
관점의 사각지대
사람들은 서로 다른 준거 프레임(frame of reference)을 갖는다. 각자 속한 집단의 프레임이 강력하다. 미국인과 일본인에게 물고기 영상을 보여주는 실험을 했다. 미국인들은 사물을 기억했다. “큰 물고기 세 마리가 왼쪽으로 헤엄치는데 배 부분은 하얗고 분홍색 점이 있어요." 일본인들은 “조류처럼 보이는 물의 흐름, 물색깔은 초록색, 바닥에는 바위와 조개..." 상황을 봤다. 연구자들은 개인적 사회인 미국과 상호의존적 일본 문화의 차이라 했다. 둘 다 '관점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불완전한 관점이다. 둘을 묶어야 통찰력이 더 커진다.
요즘 세상사는 혼자 감당하기에 지나치게 복잡하다. 인간의 창의성에서 가장 중요한 트렌드는 문제 해결의 주체가 개인에서 팀으로 바뀌는 거다. 집단의 수행능력에 다양성은 필수다. 서로 비슷비슷한 의견에 동조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대신, 서로 다른 의견을 활발하게 교환하는 과정에서 해결 방안이 나온다.
책의 부제는 '다양성은 어떻게 능력주의를 뛰어넘는가'. 다양성이 올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다양성이 능력주의 보다 결과가 낫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다양성과 탁월한 능력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던 미국 스칼리아 대법관은 틀렸다. 능력 위주로 구성했으니, 정부 고위직에 다양성 없는 건 문제없다던 윤석열 대통령도 틀렸다.
사실 3월8일 여성의날 특강을 준비하며 '그 많던 여성들은 어디로 갔을까' 세바시 내용을 업글하는데 큰 도움을 받은 책이다.
맥킨지는 몇년 째 계속 다양성 얘기다. 2015년 보고서로 세바시 강연 준비했는데, 그새 더 나왔다. 경영진의 젠더 및 인종 다양성 상위 기업의 자기자본수익률은 하위 그룹보다 66% 높다고 한다.
컬럼비아대 연구팀은 살인 미스테리 풀기 실험을 했다. 친구 넷이 한팀인 경우와 친구 셋에 아웃사이더 1명을 포함한 팀이 겨뤘다. 정답률은 아웃사이더가 섞인 팀이 75%, 동질그룹은 54%, 개인은 44%다. 아웃사이더 팀은 의견 충돌이 이어졌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도 확신을 못했다. 동질그룹은 대부분의 시간을 서로 동의하느라 보냈다. 틀릴 가능성이 높은데도 자신들의 답이 옳다는 확신은 더 강했다.
기업들이 확실히 빠르다.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애쓴다. 돈을 쓰고, 조직을 바꾼다. (우리 기업들은 과연 언제쯤..)
애플 다양성 보고서, 수치 좀 보소..
#조용한생활 녹음에서는 책 한권을 더 소개했다. 다양성이 부족할 때의 문제, 젠더 데이터 공백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명저. 역시 발표에 큰 도움 받았다. 이 두 권의 책 덕분에 여성의날 특강에서 반응도 좋았고, 흐뭇했다는 후기를 남겨본다.
++ 트레바리 기막힌논픽션 클럽 발제!
<다이버시티 파워>
1. 당신과 다양성
- 다양성이 능력주의를 뛰어넘는다는 주장에 동의하나요? 둘은 상충되고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은요?
- 당신의 조직은 다양성을 확보하고 있나요? 그런 고민이나 논의는 있어요?
- 고립된 네트워크에 속한다는 것을 자각한 적 있어요? 원래 유유상종이 편한 것 아닌가요?
- 당신은 어떤 다양성을 생각해요? 대중 첩보 파트에 중국인도 포함되면 되요? 종교? 인종? 국적? 성별? 세대? 학력? 인구통계적 다양성 혹은 인지 다양성?
2. 우리의 다양성
- 같은 배경을 지닌 똑똑한 사람들끼리 의사결정하면 집단적 맹목 현상을 보이기 쉽다는데, 우리 사회 기득권은 다 그렇지 않아요?
- 관점의 사각지대를 극복하는 것이 다양성 외 다른 노력으로 가능할까요?
- 다양성이 성과를 높인다는데, 왜 우리 사회와 기업들은 세계적 추세에 아랑곳 않는 걸까요?
- 다양성을 늘리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톱다운 의사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은요? 다양성의 한계나 문제점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