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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un 23. 2023

그들을 기억하는 법, 에든버러와 런던, 서울의 차이

D, 사진도 잘 찍는구나


남들 다 관광명소 사진 찍는데 엉뚱한 데 꽂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게 통하면 반갑다. D가 보여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사진 한 장에 내가 흥분했다. 일단 배경은 길이 2.5km의 포스 브릿지. 1890년에 완공된 스코틀랜드의 상징이다. 지금도 관광명소이자 다리 역할에 충실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D의 눈에 들어온 건 부근 붉은 기념비다. Forth Bridge workers memorials. 한때 4600여명의  '브리거(briggers)' 노동자가 공사에 참여했고 유지 보수도 간단치 않았던 이 다리에서 73명이 숨졌다. 산재였다. 기념비에는 그들의 노고를 기리며 이름을 함께 새겼다. "To the Briggers, past and present, who built, restored and continue to maintain this iconic structure"

1890년, 그리고 그 이후 희생된 이들을 기리고자 2005년에 위원회를 만들었고 2012년에 기념비를 공개했다. 알려진 것과 달리 '숨겨진 희생자'들을 찾는 작업은 2019년까지 이어졌다. 잊혀진 죽음을 찾아내는데 100년이 더 걸린 셈이다.

D의 눈길을 붙잡은 기념비


그 세월, 가슴 무너진채로 가족과 친구를 떠나보낸 이들이 수백명일테고.. 이들을 기억하는데 마음 보탠 이도 분명 그 이상 되리라. 관련 BBC 보도다.


산재공화국 대한민국은 산재 희생자들을 기억하는데 인색하다. 태안화력발전소의 고 김용균씨, '구의역 김군' 외에 한해 1000명에 육박하지만 이름 없이 묻힌다. 성석제 작가의 '투명인간'들 현실이다. 우리나라 도로, 다리, 지하철, 건물, 산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자리? 있긴 있다. 1968년 완공된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에는 순직자 위령탑이 있단다.  준공기념탑 만큼 잘 안보이고, 샛길 너머 어딘가 숨어있는 느낌이라지만, 하여간 있다. 공식적으로 77명, 실제로는 수백 명이 공사 중 사고로 숨졌다고 한다. 


D의 에든버러 사진에 울컥한 나는 4월에 다녀온 런던의 한 장소를 얘기했다. 나같은 인간만 꽂힌줄 알았더니, 5월에 런던 다녀온 D도 그 장소를 알고 있었다. 관광명소인 총리 관저인 다우닝스트리트 10번지 부근, 처칠 War Rooms 바로 옆에 회색 구체가 있다. 호기심을 부르는 형태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2002년 인도네시아 발리 폭탄 테러로 희생된 202명, 그 중에서도 23명의 영국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념비였다. 그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관광객의 눈에는 너어어무 명당 자리인데다, 런던도 아닌 발리에서 발생한 재난사고의 희생자들을 이렇게 기억하는게 낯설었다. 그런데 억울한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아픔을 나누는 거, 그게 공동체의 역할 맞다.

왼쪽은 나의 직찍, 오른쪽은 펌 사진이다.

인도네시아 발리 테러 현장에도 기념비가 있다. 역시 난데없는 테러 공격으로 희생된 무고한 이들의 이름을 남겨놓았다.

역시 펌 사진


이처럼 재난도 기억 대상이다. 전북 이리시가 익산군과 통합 뒤 익산시로 이름을 바꾼 것은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 이미지를 지우려 했다는 얘기도 있던데....

D는 런던 대화재 기념비, The Monument 사진도 보내줬다. 1666년 The Great Fire를 기억하는 곳이다. 재난도, 기념비도 작명조차 직진이다. 당시 한 제과점의 오븐에서 시작된 화재로 세인트 폴 대성당을 비롯해 13,200 채의 집이 불탔다. 공식 사망자는 8명? 불타버린 빈민가에선 집계가 정확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지옥불처럼 여겨졌던 재난은 이후 도로를 넓히고, 목조 대신 석재로 집을 짓는 등 런던의 발전 계기가 됐다. 그리고 재건의 일환으로 As part of the rebuilding, 영원히 기억할 기념비를 세웠다. 불이 시작된 부근이란다. 세인트 폴 대성당을 재건축한 크리스토퍼 렌 경이 이 기념비도 맡았다. 도시가, 공동체가 앞으로 더 나아가려면, 그 재난을 지우고 묻어버리는 대신, 기억해야 한다. 

D!  사진 자체도 훌륭

홈페이지에 역사 자세히 나온다


우리는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로 희생된 502명을 따로 기억하기 어려웠다.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선 그 자리에는 작은 비석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땅 팔아 보상금을 마련해야 했던 서울시나, 인근 주민들이나 추모 조형물을 혐오시설 취급했다. 결국 지하철로 3개 역 떨어진 양재시민의숲에 조금 난데 없이 위령탑이 세워졌다.

펌 사진


성수대교 붕괴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비는 한강 둔치에 있다. 강변북로 부근에서 지나가다 봤지만, 진입이 까다롭다. 헛, 여기 있었네 하면서 스쳐 지나가곤 했다. 도보나 대중교통 접근은 안된단다. 서울숲 부근인데 그쪽엔 표지판도 없다. 

둘 다 퍼온 사진이다. 못가봤다..

#같이_가면_길이_된다 책에는 "문득 삶이 무료해지거나 세상이 너무 뻔하다는 생각이 들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누리집에 서둘러 가보길 바란다"는 내용이 있다. 사이트 상단에 '사고사망속보'가 빠르게 흘러간다.

[6/19, 서울 강서구] 벽면 페인트 사전 작업 중 사다리에서 떨어짐(1.4m)
[6/19, 부산 강서구] 판넬 구조 변경 작업 중 떨어짐

[6/20, 강원 홍천군] 코킹작업 중 떨어짐
[5/16, 경북 김천시] 지게차로 하역하던 자재(1.5톤)가 넘어져 맞음


보고 있으면 아득하고, 이상헌님이 언급했듯 '접기'로 '사고사망속보'를 숨기면 갑자기 아무 일 없듯 안전한 세상이다. 그 이름을 기억하기는 커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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