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는 원래 피겨 스케이팅 선수였다. 하지만 올림픽 대표 후보에서 탈락했다. 그는 패션 잡지 [보그] 에디터로 취직했다. 잘나갔다. 15년 만에 회사를 그만둘 무렵, 그가 편집장 자리를 놓고 경쟁한 인물이 안나 윈투어. 맞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그분이다. 베라는 마흔에 결혼하면서 난관에 부딪쳤다. 맘에 드는 웨딩드레스가 없었다. 베라 왕이라는 전설적 웨딩드레스 디자이너가 늦깍이로 탄생한 것이 본인이 답답해서 시작한 일이라니. 나이 따위 여전히 상관없다. 왼쪽이야 리즈 시절 사진이라고 치고, 오렌지색 스포츠브라 사진이 71세, 오른쪽 사진은 며칠 전 인스타그램 사진이다. 현재 74세.
[우리는 매일 새로워진다]는 한국어 제목은 점잖다. ‘나이의 편견을 깨고 독립적인 삶을 꿈꾸는 여성들에게’라는 부제는 좀 더 직관적이다. 원제는 ‘Glorious Freedom’, 언니들의 눈부신 자유, 해방 느낌이다.
"어느 날 나는 서핑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 마흔아홉 살이었다”, 첫 에세이부터 온갖 언니들이 나이 신경 끄고 자유롭게 도전을 이어가는 얘기들이 이어진다. 직접 쓴 에세이, 작가가 만난 인터뷰, 작가가 조사한 프로필까지 다채롭다. 어쨌든 베라 왕을 보면, 마흔은 뭐든 새로 시작하기 좋은, 아니 이른 나이랄까?
닥터 차정숙 실화를 보자. 스테파니 영은 잡지 칼럼니스트로서 여성 건강에 대해 글을 쓰던 잡지 칼럼니스트였다. 53세에 아예 의대에 입학했고, 60세에 레지던트에 지원했다. 나이 많다고 받아주지 않는 미국 의대에 좌절하는 대신 도미니카 의대에서 공부했다. 그녀는 이 무렵 자신의 구상에 대해 “당신은 나한테 묻지 않았잖아”라고 반응한 남편과 헤어질 결심도 했다. “나를 행복하게 해줄 일을 내가 해도 되는지 다른 사람에게 물을 필요”는 없었다. 25년 결혼생활을 끝내고 ‘그냥 내 느낌대로’ 자신의 길을 찾았다.
1893년생 비어트리스 우드는 베라 왕보다 앞서서 직접 만드는 삶을 택했다. 1930년대에 맘에 드는 찻주전자 디자인을 찾지 못하자 직접 만들기로 하고, 도자기 강좌에 등록했다. 원래 손재주가 없다고 생각한 분이었다나? 하지만 그 길로 꾸준히 달렸다. 90대에 가장 복잡한 조각을 만들었고, 105세로 세상과 이별하기 전까지 거의 매일 작업을 이어갔다. 14년 동안 주부로 엄마로 지내던 에밀리 킴벌은 48세에 야외 레크리에이션 매니저에 도전했다. 60세 생일 후 3200km 하이킹에 나서고, 자전거로 7500km를 달려 미국 대륙을 횡단했다. 80대인 그녀는 라이프스타일 컨설팅 회사 대표다. 게이코 후쿠다는 남자들만 인정하던 유도 유단자 자격을 60세에 땄다. 98세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단수의 여성 유도 명인이 됐다. 40대 중반에 유방암 진단을 받고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는 제니퍼 헤이든은 그 경험을 토대로 그래픽노블 작가로 데뷔했다.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인생 34년을 보낸 뒤 50 중반에 사진과 글쓰기를 시작해 책 다섯 권을 낸 분도 나온다. 책을 번역한 박찬원님은 마흔셋에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했다. 못할 건 하나도 없구나.
41세 생일 전날 잘 알지도 못하는 스무살 카우보이에게 “나랑 섹스할래요?”라는 제안을 받은 싱글 여성은 이런 일이 여전히 종종 벌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을 만큼 현명했다. 마흔 중반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사연이나 나이 50에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하고 인생의 가능성이 더 무한하게 열렸다는 어느 고백도 사랑스럽다. 인생의 변곡점에 ‘늦었다’고 할 일도, 나이를 따질 이유도 전혀 없구나.
작가 리사 콩던은 서른한 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 마흔 살까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고 마흔네 살에 첫 책을 냈다. 이제는 여덟 권의 단행본을 출간한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예술가다. 이런 멋진 이야기에 직접 일러스트를 그릴 수 있는 자유야말로 부러운데, 늦게 시작해도 할 수 있다는 산 증인이다.ㅡ
“해가 갈수록 나는 더 용감해지고, 더 강해지고, 더 자유로워진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내게는, 대단한 만족을 주며 많은 것에서 해방되는 과정이다. 나는 예전보다 타인에게 더 친절해졌고…자신감 없이 지독한 불안 속에 전전긍긍하며 오랜 세월을 살고 나니, 용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나만의 길은 그저 그뿐임을-나만의 유일한 길임을 나이라는 지혜가 가르쳐주었다." - 리사 콩던
다정하고 귀여운, 자유로운 인간으로 나이드는 것이 요즘 내 목표인데 이런 책을 만나다니, 운명이다. 서점 알바하다가 표지 그림이 예뻐 들춰본 이 책은 에너지를 한껏 나눠준다. 멋진 언니들 얘기가 다 그렇지. 당장 40대 친구들의 생일 선물로 전했다. 이런 이야기는 더 널리 나눠야 각자 에너지가 서로 시너지를 만든다.
한가지 인상적 팁을 덧붙인다. 중년 여성들은 자기 사업을 시작하거나 소설이든 뭐든 글을 쓰고 싶어지면 충분한 지식이 없다고 생각해서 배움을 얻으러 학교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러지 말라'고 한다.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으니 그냥 부딪치며 시도해도 된다는 얘기에 깊이 공감한다. 뭐든. 와이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