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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ul 17. 2023

<철학자의 뱃속> 초식동물 루소, 술꾼 칸트?


원서 표지가 훨 예쁨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고 했는데...먹는 것도 그렇단다.

무엇을 먹을지 고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신. 실존의 선택이기 때문에 먹는 걸 보면 그 사람이, 그 사상이 보인다는 신박한 책 #철학자의_뱃속. 먹는데 진심인 내게는 당연히 솔깃했다.


P님을 만나러 가는 길, 드릴 책이 없을까 책장을 스캔하는데... 와. 완전히 잊어버린 책이다. 이쯤되면 잃어버린 책 같다. 나한테 이런 책이 있었다고? 도입부, 웃겼다.


"아무데서나 방귀를 뀌어대고, 광장 한 가운데에서 천연덕스럽게 자위를 일삼던 디오게네스가 자신의 향연에 철학사의 문제적 인물들을 초대한다. 편집증적 채식주의자이자 서민 취향을 예찬했던 루소, 알코올 중독과 윤리학의 화해를 꿈꾸는 건강염려증 환자 칸트,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의 요리로 자기 몸속의 프로이센 흔적을 제거하려한 게르만족 혐오자 니체, 음식 전쟁의 열정적인 전략가를 꿈꾼 몽상가 푸리에, 환각제 메스칼린의 도움으로 바닷가재의 악몽에서 벗어나려는 집요함의 사상가 사르트르..."


도입부, 참 프랑스적이다.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데 말 많고 화려한 느낌이다. 저자는 미셸 옹프레. 59년생 프랑스 좌파 어르신이다. "무신론자, 쾌락주의자, 무정부주의적 자유주의자, 반란의 철학자로 알려져있다"는 건 셀프 설명이겠지?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 정당이 본선에 진출하자 교직을 떠나 시민대학을 설립했다. 2018년 '노란조끼운동'을 지지한 유일한 좌파 철학자라는데. 정말 유일했다고? 일단 이 아저씨 만만찮은 분이구나 느낌 온다. 모든 설명이 프랑스적이지 않나? 그게 뭐냐고? 따지지 말자.


디오게네스에 대한 화려한 설명을 읽다보면, 아 이분은 문명을 거부하고, 불도 싫어해서 날고기를 드셨구나.. 기억만 남는다. 위선 대신 투명성을 따진 분이라 거리에서 자위하는 걸 뭐라 하니까 "배고픔도 배를 문질러서 해결된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는데.. 알렉산더 대왕에게 햇빛 가리지 말고 비키라 했던 그분 답기도 하고.. 저 정도 해야 2000년 뒤 후손이 기억해주는구나.


꾸며진 맛, 인위적인 맛을 싫어하고 최고의 양식이 우유라 했던 루소.

루소는 [누벨 엘로이즈]의 주인공 줄리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감각적이면서도 맛있는 식사를 추구하는 그녀는 고기도, 라구도, 소금도 좋아하지 않았다. 물을 타지 않은 와인도 입에 대지 않았다. 신선한 야채, 계란, 크림, 과일이 그녀가 즐겨 먹는 일상적인 음식이었다."

근데 이게 자기 얘기였다니ㅎㅎ 금욕과 고행인가. 초식동물에 가까운 루소는 육식을 하면 호전적이고 채식 하면 평화를 사랑한다는 단순한 공식을 밀었는데..저자는 채식으로 유명한 사람들 둘을 꼽는다. 공포정치의 상징 생 쥐스트. 그리고, 아돌프 히틀러. 무슨 말이 더 필요하냐고? ㅍㅎㅎ



알콜 중독에 가까웠던, 메독 포도주를 사랑한 칸트. 술은 혀와 마음을 풀어주고, 심지어 좀 더 도덕적 인간으로 만들기까지 한다는 논리는.. 좀 당혹스럽네. 솔직함이라는 도덕적 성질을 끄집어내는 취기를 예찬해? 순수 이성이 따르라 하는 정언명령의 엄격함에도 불구하고 늘 취한채로 취기를 옹호하시다니ㅋ


칸트는 향연을 '무절제로 향하는 특별한 초대'로, 도덕적 목적과 지혜에 이르는 무언가, 소통이 가능한 자리라 봤다. 근데 인원수가 뮤즈의 숫자인 아홉을 넘어가면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얄팍한 소통만 나누고 수단이 목적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비도덕적 행동을 하고 만다고 했단다. 그래서 주로 셋이나 다섯이 모였다고ㅎㅎㅎ


여기서 #프렌즈 진화인류학자 로빈 던바 아저씨가 떠오른다. 5명이 넘어가면 대화 그룹은 둘로 쪼개지고 8명 넘어가면 셋으로 쪼개진다고 했었지. 그래서 요즘 내가 한 테이블 넘어가는 자리를 덜 선호하지ㅋ


P님은 볼테르의 캉디드를 인용해 나를 놀라게 했던 분이다. 루소나 칸트의 음식관이 세계관, 철학으로 이어지는 책을 선물해도 괜찮은 분 아닐까? 책을 반도 못 읽고 드렸지만 임자 찾아드린 기분이다. 역시 난 철학자의 글, 프랑스 학자 글은 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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