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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Aug 15. 2023

<오펜하이머> 내게 인상적인 8가지 포인트

인상적인 포인트, 정리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다. 


1. 인간, 너 어디까지 해봤니?

"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

개인에게 오롯이 저 무게를 감당하라고 하면 무섭다.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 준 댓가로 영원히 고통받는 프로메테우스에 비견된다는 것은 영예이자 지옥불이다. 자신이 지휘해서 만든 폭탄이 22만 명을 순식간에 학살했다.


2. 인간, 그렇게 좋아?

문제적 폭탄의 실험 장면. 모두 환호했다. 적을 무찌를 수 있다는 자신감,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신의 폭탄을 만들었다는 짜릿함, 2년간 20억 달러 쓴 결과물을 만들었다는 쾌감, 뭐라 부르든 그들의 환호가 몹시 불편하다. 이 영화, 일본 개봉 어찌하려나, 내가 걱정해줄 일도 아니지만, 일본의 항복을 가져온 원자폭탄 영화를 8.15 해방에 맞춰 개봉한 전략도 뒤늦게 불편하다.

나치 독일, 혹은 오펜하이머가 주장했듯 무인도 대신 일본 대도시 두 곳에 폭탄을 투하하는데 내심 인종차별 없었을리가. 과학자는 양심이 흔들리는데, 수십만의 죽음은 내 결정이라고 당당한 트루먼 대통령.


3. 인간, 빨갱이 사냥이 더 중요하지?

원자폭탄 얘기인줄 알았더니 매카시즘 영화였다는게 남편의 한줄평. 애국심으로 원폭 만들었으나 뒤늦게 핵을 통제하기 위한 국제 거버넌스를 얘기하고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했던 그는 빨갱이, 소련 스파이 의혹을 받는다. 알고보니 그 마녀사냥의 판은 또다른 욕망의 인간이 깔았다. 빨갱이 저격수를 움직인 그는 그래서 어찌됐나?


4. 인간, 이념이 뭐길래

그시절 미국 지식인은 노조에, 공산주의에 진심이었구나. 파시즘과 싸우는 스페인내전에 공산주의 깃발 아래 참전도 하고, 공산주의는 한때 유럽의 트렌드였구나. 매카시즘, 인정한다. 불과 몇십년 만에 마녀사냥으로 그들을 몰아냈다. 그게 2023년 한국의 대통령이 "공산세력이 민주, 인권, 진보로 위장했다"고 광복절 축사랍시고 떠드는  풍경까지 이어졌다. 하필 광복절에 "일본은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라고 한 것도, 뭐. 하여간에 매카시즘이 얼마나 못된 지랄인지 #굿나잇앤굿럭, #트럼보, #오펜하이머 헐리웃이 계속 애쓰는 와중에, 아직도 빨갱이 사냥이 통한다는 그의 신념. 그게 실제 일부 통하는 2023년 한국.


5. 과학자들의 모럴

과학자들끼리 당연히 부딪친다. 원자폭탄 만들어놓고, 또 싸운다. 과학의 열망으로 만들 때는 즐거웠지만, 만들어놓고 보니 끔찍하지. 자칫 세계가 멸망할 확률이 '0'가 아니라 'near 0'인 물건이다. 오펜하이머가 흔들리는 모습은 지금 AI를 만들고, 우주탐사를 말하는 혁신가들, 엔지니어들의 언젠가 모습일게다.

레오 실라드와 70명의 과학자는 1945년 7월17일 트루먼 대통령에게 청원서를 제출했다. 그들은 히로시마 원자폭탄을 막지 못했다. 천재들의 모럴에 기대는 건 바보같은 짓이다. 그렇다고 정치인들에게? 끔찍한 일이지. 이게 고민이지.


6. 놀란의 여성, 이너서클엔 안 끼워주지 

오펜하이머의 첫사랑? 진 태트록이 그의 삶에서 분명 중요한 여자란 거 인정해도 영화에서 플로렌스 퓨를 굳이 벗긴 놀란 감독. 현실 세계에서 노브라 시스루 차림으로 등장, 내 가슴이 불편하냐고 당당하게 밝혔던 플로렌스 퓨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특히 다들 옷입고 있는 앞에서 그 장면, 매카시즘 청문회에서 발가벗겨진 기분, 탈탈 털리는 상황을 보여주는데, 그 장면이 넘나 불편해서 공감하게 된다. 근데 오펜하이머보다 진에 대한 관음이잖아? 
한편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놀란 감독이 무시한 맨해튼 프로젝트 배후의 여성들'을 주목했다. 수백 명 중 여섯 소개했는데, 하여간에 영화엔 존재감이 없다. 


7. 놀란의 남자, 킬리언

킬리언 머피를 처음 기억하게 된 영화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켄 로치 감독의 2006년 작품이다. 당시 칸 영화제 심사위원 9명이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안겼다. 76년생 킬리언 머피는 당시 서른 무렵인데, 의사 때려치우고 IRA 아일랜드 독립군으로 싸우는 이상주의자 데이미언으로 나와서, 그.. 그.. 보리밭을 배경으로 칙칙한 복장인 남자의 눈이 세상 파랗게 빛나서 홀렸던 기억이 있다. 이 영화 먹먹한 느낌은 지금도 아련하다.

이후 아쉬운 역할을 맡을 때 마다 괜히 아쉬워했는데, 배트맨비긴즈, 다크나이트, 인셉션까지 놀란 작품마다 최선을 다하더니 오펜하이머로 인생작을 만났구나. 그의 눈이 파랗게 빛나는 장면은 역시 와우. 


8. 놀란의 배우 낭비에 땡큐

배우들을 펑펑 낭비하는 것도 요즘 감독의 자기증명. 우리의 아이언맨, 로다주가 갑자기 늙은 역할이라는데 괜히 서글프긴 했지만 이 영화의 팽팽한 리듬 한 축은 그가 이끌었다. 

그 옆에 데인 드한 닮은 아재? 역시 데인 드한이었고, 조시 하트넷은 맷 데이먼 만큼이나 몸을 불린 아재라 당황. 닐스 보어 역할의 케네스 브래너 만큼이나 트루만 대통령 역할의 게리 올드만 알아본 나를 칭찬해. 라미 말렉? 여기 왜 나오는데? 오펜하이머가 네번째 남편이었다는 키티, 에밀리 블런트의 기세는 대단했으나 일단 그녀의 서사는 조금 아쉽. 배우들이 나와 함께 늙어가는 모습은 어쩐지 인생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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