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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Sep 13. 2023

죽음을 너머 특별한 동행, 1600년 전 토기는 귀엽고

귀엽잖아. 반달로 휘어진 눈웃음에 헤벌쭉 웃음까지 사랑스럽다. 개인지, 돼지인지 알게 뭐람. 따라 웃게 만드는 미소다. 1600년 전, 경주 탑동의 무덤에 묻힌 이는 이 아이와 동행했다.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죽은 뒤 영원으로 가는 길에 망자와 함께 한 토기들 전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소문난 전시, 10월 초 종료를 앞두고 마침내 만났다. 이현주 쌤 초대로, 이상미 학예연구사님 설명까지 곁들여 호사를 누렸다.


삼국시대, 그중에서도 신라와 가야의 무덤에는 사람과 동물, 사물의 모습을 담은 토기와 토우가 가득했다. 불교가 들어오기 전, 사후세계에 대한 상상은 다정하고 유쾌하다. 이집트, 그리스, 로마의 문명을 둘러본 탓인지 삼국시대 유적에 큰 감흥이 없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표정이 살아있어 슬며시 웃음이 나고,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길, 세심하게 챙기는 마음이 따뜻하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그 다음 세상으로 이어지는 길. 노잣돈 챙기듯 껴묻거리(부장품)을 챙겼겠지. 낙타인지, 말인지, 염소인지, 쟤도 웃고 있다.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는 것은 새들이다. 오리를 닮았는데 볏이 있고, 어떤 녀석은 다리가 셋, 넷이다. 영혼 옆을 지키는 상서로운 동물로는 용이 빠질 수 없다. 몸통은 거북인데 얼굴은 용이라니. 용이 영혼을 태워 승천한다는 것은 도교의 세계관이란다.

새가 흥한 시대를 지나고 말이 등장했단다. 역시 탄생과 죽음을 알리는 신성한 동물이었다. 말 안장부터 재갈, 마구들을 한땀한땀 재현했다. 갑옷을 입은 무사는 창과 방패를 들고 말을 탔다. 전쟁의 시대, 갑자기 김유신이 애마의 목을 치게 된 일화가 생각나는 것은 뭐지..


말을 타고, 사후 세계로 가는 그 신비한 체험을 국립중앙박물관은 전시로 기획했다. 벽을 채운 영상에서 말을 탄 이가 어디론가 달려간다. 죽음은 무섭거나 외롭지 않다. 그저 또 하나의 여정이다.

와중에 박물관 나들이 일행들은 이집트 여행팀이었는데, 카이로 박물관엔 귀한 유물이 넘치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엔 쎈쓰와 품격이 넘친다는데 다들 동의. 이 영상을 비롯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귀엽고 재미난 기획들이 과하지 않게 흐른다. 빛과 그림자를 절묘하게 쓰는 것도 멋지지만 토기를 전시한 유리박스 자체가 디스플레이 화면으로 쇼를 보여주는 것 미쳤다.  


6세기 무렵 경주 금령총에 묻힌 말 탄 이들. 주인과 시종이다. 말과 장비, 모자 하나까지 주인 간지가 우월하다. 저 날렵한 눈매에 오뚝한 콧날. 잘생겼다.


집 모양 토기가 여럿 나오는데 고양이가 지붕에 앉아있다니. 기둥과 벽을 세우고 지붕을 씌우면서 고양이를 빼놓지 않는 조상님들 센스가 무엇이오.

춤을 추는 이들, 절을 하는 이들 사람들이 모였다. 남근은 불끈 솟구쳤고, 가슴도 뾰족 섰다. 죽음 옆에는 생의 모든 장면이 함께 하기 마련이다. '헤어짐의 축제'에서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하는 죽음은 생의 또다른 얼굴 같다. 고구려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처음엔 곡하고 울지만, 장례를 치를 때에는 북치고 춤추며 풍악을 울리며서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딘다. 신라라고 달랐을까. 화끈하게 놀았던게 분명하다.

토기에 거북이, 뱀이 나오는 건 여상한데, 불가사리, 가재, 해..해삼이라고요?


항아리를 장식한 토우는 거의 연극 무대 분위기. 남자와 새, 성적인 장면, 새와 물고기, 현악기를 연주하는 새, 거북..


6세기 신라는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면서 새로운 통치 이념으로 불교를 받아들였다. 생명이 있는 것은 업보에 따라 다른 존재로 태어난다는 윤회의 불교적 세계관.. 온갖 토기, 토우들과 떠들석하게 내세로 여행 떠나던 시절은 끝났다. 이 무렵 거대한 무덤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고, 대신 죽은 이를 기리는 '토용'이 등장했다. 그릇이나 장식이 아닌 독립된 상. 옷차림에서 신분을 확인할 수 있다는데 난 얼굴만 봤다.


이 전시의 엔딩은. '신라의 피에타'. 가슴을 드러낸 여인이 얼굴을 천으로 덮은 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소중한 이를 떠나보내는 순간은 16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리 없다.  


보너스 컷 1. 영차토우, 작명 끝내주고, 걷는 영차토우, 화병을 들고 있는 토우. 다 귀엽다 귀여워!


보너스 컷 2. 박물관 동행에 이어 저녁은 #이촌동 #솜씨. 성게알과 마를 넣은 비빔밥... 으로 향긋하고 산뜻하게 먹기 시작해 돼지고기와 참나물무침, 된장찌개, 명란마전.. 마무리는 매콤한 낙지비빔밥. 과식을 불사하게 하는 맛. 밥 종류만으로 달렸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찐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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