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여행 산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냐 정혜승 Oct 15. 2023

군산, 고창의 인물들>서정주, 이영춘, 이인식,배수연



1. 서정주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미당 서정주 문학관이 고창에 있었다. 학교를 개조한 건물인데 옥상에서 고창을 바라보는 전경이 끝내준다. 멀리 곰소항, 바다 건너 부안이다. 가을 바람이 제법 매서워서, 그를 키웠다는 바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왜 그랬을까?

와중에 이런ㅋㅋ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 다고 해도. 그의 친일, 5공 찬양은 도를 넘었다. 정치는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한들, 적어도 그의 시를 폄하할 수 없다고 한들, 이 정도였나.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

귀국대원의 푸른 영혼은

살아서 벌써 우리게로 왔느니"


서정주는 친일을 인정하면서도 "이것은 하늘이 이 겨레에게 주는 팔자"라고 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모진 삶을 희생한 독립운동가들에게 부끄러워서라도 할 수 없는 고백이다. 성찰도 반성도 아니다.


멋쟁이로 살았던 삶과 더불어 그의 행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문학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2. 이영춘


일제강점기 군산의 슈바이처다. 기생충, 결핵, 성병 등 당대 3대 질병과 싸웠다. 치료보다 예방이 더 중요하다며 최초로 학교에 양호실을 만든게 1938년 일이다. 위생교육을 강화했다. 고용주인 일본인 지주에게 요구해 농촌위생연구소를 설립을 추진했으며, 끝내 미 군정 시기에 문을 열었다. 간호사를 육성했고, 민간의료보험조합을 만들었다.

그가 살던 집은 군산 일대 여의도 10배 땅을 갖고 있던 일본 대지주의 별장이었다. 군산의 적산가옥은 땅투기에 나섰던 일본 지주들의 흔적이지만 '이영춘 가옥'은 그 시절 농민들을 위해 헌신한 의사의 영혼이 각인된 곳이다. 어렵게 마련한 집을 농촌위생연구소 명의로 하고 부를 탐하지 않았던 의사다. 그도 창씨개명을 했고, 일본인 지주가 고용했다지만 한국 소작농들에게 온 힘을 다했다. 자본가 투자를 받아 신기술로 사람을 구했다. 미당과 뭐가 다른지 한참 생각했다. 비교불가.


3. 이인식 문형모 장영규

마침 일제 수탈의 관문이던 임피역에 임피면 인물소개가 있었다. 만석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3.1 운동 당시 보성중학교 대표로 시위하다 감옥에 갔고, 이후 전 재산을 상해 임시정부에 헌납하고 독립운동에 힘보태다가, 해방 후 임피중 교장으로 취임해 사재를 털면서 아이들을 키워낸 이인식 선생.


의병으로 항일투쟁을 시작, 비밀결사대원으로 활약하며 만주에서 일본군과 싸웠고, 임시정부를 위해 고국으로 잠입해 헌신했던 문형모 선생.


수확량의 70%까지 소작료를 착취했던 일본 지주들과 달리 소작료를 올리지 않았던 지주이자 해방 후 옥구중, 임피중, 고려대에 재산을 기부하며 인재 양성에 애썼던 장영규 선생

같은 시대 서정주와 사뭇 다르게 살아간 이들이 있다. 서정주와 달리 잊혀진 분들이지만 올곧은 삶이었다. 할 일을 한다는 건 뭐냐고.


4. 배수연


500년간 고창에서 옹기를 구워온 집안의 7대손이다. 백자나 청자와 달리 옹기는 서민들을 위한 물건이었다. 황토를 반죽해 3일 동안 구워내면 숨쉬는 옹기가 되어 장맛을 살렸다. 고창에는 한때 열네 가구의 옹기쟁이가 있었다지만 배수연님 할아버지 대에는 이미 그분 혼자 남았다. 도예과를 졸업한 그녀는 가업을 이었지만 옹기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전국에 규모 있는 옹기 공장은 서넛 수준으로 알려졌다. 아버니 대까지 썼다는 동네 가마는 불씨가 꺼졌고 현대식 가마는 굽는 시간을 3일에서 12시간으로 줄여줬다. 그래도 고된 옹기공장 노동을 감당하는 이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미식관광을 하다보니, 식문화까지 살피게 되고 옹기장인 배수연 님을 찾게 됐다. 다른 일을 접고 옹기공장 일에 함께 나선 남편과 함께 그녀는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옹기를 둘 마당 혹은 넓은 베란다는 꽤 있겠지만, 옹기에 담을 장을 담글 수 있는 능력은 희소하다. 500년 전통을 이어가는데 21세기 비즈니스로 답을 찾기 어렵다. 비빔밥을 담거나 샐러드볼로 쓸 예쁜 옹기 그릇 두 개를 1.6만원에 샀다. 작은 제품을 늘릴 수도 있겠지만, 숨쉬는 옹기의 장점은 된장, 고추장, 식초를 담을 때 최고다. 이런 전통장인들을 지자체가 연금으로 보조할 방법은 없을까? 이번 여행에서 응원의 마음이 생겼다. 그녀는 독립운동가도, 슈바이처도 아니지만 전통을 지키는 투사다.

뭔가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삶을 바라본다. 알량한 위신과 부귀영화를 지키는 삶 말고.

매거진의 이전글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비 맞으며 4시간, 초간단 정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