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냐 정혜승 Dec 30. 2023

<어른을 키우는 어른을 위한 심리학>중년의 심리적3중고

슬로우뉴스로 발행한 리뷰다.


요 책 리뷰


중년은 심리적 3중고에 시달린다. 자녀에 대한 불안, 연로한 부모에 대한 걱정, 여러모로 내 인생의 정점을 지났다는 자각. 내 앞가림만 잘하면 되는게 아니라 부모 돌봄에 더해 독립이 늦어진 아이들까지, 여러 겹 부담 속에 나부터 휘청거릴 수 있는 시기다. 여기까지 듣고 이 책은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다. #어른을_키우는_어른을_위한_심리학, 딱 내 얘기잖아.


다독가이자 다작하는 정신과전문의 Jee Hyun Ha 하지현 쌤과 함께 나이들고 있다는 걸 그가 내는 책마다 실감한다. 의사로서 다양한 환자를 보겠지만, 하쌤네 아이들이 성인으로 자라면서 하쌤 스스로 집중하는 이야기가 세월 따라 달라졌다. 나 역시 애들 어릴 적에는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에 열광하며 직딩맘 필독서라 떠들었다. <심야치유식당>부터 <고민이 고민입니다>, <공부중독>, 다 때가 있었다. 애들이 성인이 된 지금은 이번 책이다. 같이 나이드는 전문가가 너 요즘 이런 고민 없어? 슬쩍 풀어주는 얘기들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기분이다. 부제가 ‘성인 자녀를 키우는 부모를 위한 마음 수업’이다.


부모도 완벽할 리 없고, 개인은 늘 흔들린다. 불안을 지우기 위해 자녀를 위해 대신 선택하고 가장 좋은 길을 제시하겠다고 했겠지. 그러나 부모가 자신의 불안을 자녀에게 쏟아붓는 것은 괜찮지 않다. **”좋은 부모란 완벽한 모습을 보이고 정답을 제시하며 앞서나가는 부모가 아니라 내면의 불안과 욕망을 잘 다스리는 부모”**라는 말에 찔리지 않을 부모가 있을까 싶다. 다들 그러하니, 이런 조언이 유효한거다.


책은 온통 꿀팁이다. 구체적인 가이드다. 예컨대 부모는 아이에게 주도권을 내어주는 훈련(continuously letting go)이 필요하다. 아동기에 10만큼 내줬다면, 청소년기 40, 성인기 70… 계속 붙잡고 있으면 부모와 아이 둘 다 망한다. 주도권을 내어주는 것은 결정권도 따라간다. 질풍노도 청춘들의 무모한 시도가 한편 부럽고, 한편 불안한 와중에 자녀의 결정에 따르는 일이 늘어난단다. “부모와 자녀 사이 기울기가 점점 평등해진다”는 시기다. 내 힘을 줄이며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권위적 부모가 되는게다. 다 큰 아이의 삶에 개입하고 통제하려고 하면 분노와 무력감, 서운함만 남는다.


중년 그 자체도 문제다. 새로운 일에 흥미를 느끼고 목표를 향해 달리는 즐거움은 젊은 시절 다 겪었다. 이제는 의무와 책임감이 더 크고, “뭘 해도 다 아는 것처럼 뻔하고 고만고만해 보인다”는 연배다. 삶이 무료해 권태에 빠지기 쉽다. 한편 변화도 달갑지 않다. “내 기준에서 벗어나면 죄다 거슬린다”는 때다. “좋게 말하면 취향과 가치관이 완성된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내가 만든 틀에 갇힌 것”이란다.


이런 내 상태를 주의깊게 바라보지 못하면 그냥 꼰대로 사는 거다. 어느순간 꼰대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둥, 쿨한척도 해봤지만 저건 고립되는 지름길이다. 절대 저리 가지 않으리라..


여기에 더 나쁜 건 외로운 마음에 자식을 친구 삼으려는 욕심이다. 매일 통화하고 취미생활이든 일상이든 함께 하려 하고, 자주 만나지 못하면 야속해하고, 이건 부모 자식 모두에게 비극이 된단다. 기대지 말라는 얘기다. 원래 내 지론도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든지, 내가 홀로서기 잘해야 가족도 좋다는 쪽이라 이 부분은 자신 있었다. 근데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괜찮은 ‘궁극의 태도’는 좀 어렵다.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 알아주든 몰라주든 나대로 행복하면 된다는 건데 나름 방임형 부모라는 프라이드도 은근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거였구나… 이렇게 내가 부인했거나 무심했던 나를 발견하는 것이 이런 책의 묘미다.


생생 사례들이 대부분 남 일 같지 않은 와중에,  대학 자퇴까지 생각한 아이를 휴학으로 붙잡는, 딱 우리집 같은 케이스가 나온다. 물론 부모가 아무리 애태운들, 성인인 아이의 선택을 마냥 막을 수는 없다. 여기서 유용한 팁은 “돌이킬 수 없는 데미지만 예방하라”는 것. 마치 오토바이를 타려는 아이에게 헬멧은 꼭 쓰라고 하는 것처럼, 휴학을 이어가는 것도 역시 방법이란다. 휘유.. 사회에서 검증받는 시기를 미루고 ‘공부 중’을 연장하는 아이의 심리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이를 계속 냅두는 것도 위험하단다. 어엿한 한 사람 몫을 하지 못한다는 자존감 저하가 만성이 되면 안된다. '공부 중' 푯말을 단 자녀를 부모가 마냥 기다려 주다가는 같이 침몰할 수 있다고.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충분히 좋은(good enough) 어른이 되는 것.” 나부터 경제적으로 안정돼 자녀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고, 건강해서 돌봄 부담을 최소화하고, 좋은 관계를 갖는 게 좋은 어른란다.


반면 부모가 ‘하지 말아야 할 말’ 세 가지. 1) 이미 여러 번 말한 똑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하지 않기, 2) 지나치게 감정적인 말을 쏟아붓지 않기, 3) 자녀가 듣고 싶지 않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기어코 다하지 않기.. 이것도 몹시 찔린다. 찔려… 생각나는 장면이 왜 이렇게 많은 건지ㅠㅠ


‘잘해보라’는 말은 응원이 아니라 ‘잘 좀 해봐라, 쫌’ 비난처럼 들릴 수 있다든지,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는 말은 평소 시원찮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든지, ‘의지로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은 의지를 꺾을 수 있다는 팁도 몹시 유용하다. 물론, 안다고 다 되는 건 아니지만.. 잔소리 타이밍에 대한 조언도 있다. 대니얼 카너만에 따르면 가장 좋았던 시기와 마지막 순간이 전체적 인상을 결정하기 때문에, 중간에 칭찬 넣고 그 사이에 짧게 잔소리 하고 마지막은 좋은 이야기로 마무리하라고. 이건 사실 아이 뿐 아니라 조직 내에서도 늘 써먹던 방법 아닌가? 아쉬운 점을 조언하기에 앞서 감탄하고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여라? 이것도 머리는 알고 있다…


오스카 와일드는 삶의 두 가지 비극을 이렇게 말했단다.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것, 그리고 원하는 것을 갖는 것. 욕망에 집착하면 이루지 못해도 비극이고, 성취해도 황폐해진다. 행복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추구하는 순간, 오히려 행복이 멀어진다는 조언도 챙겨보자. 나는 사실 행복을 목표로 해본 적도, 어떤 구체적 성공을 욕망해본 적도 없는 인간이라고 으스댔지만, 한번 넘어져보니 욕망덩어리 였구나 싶은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아직 나도 고작 50대라 배우고 깨닫고 또 성찰한다. 너만 그런게 아니라 다들 저글링하면서 그 시기를 보낸다는 전문가 얘기가 아마 당신에게도 훅 다가올거라 생각한다. 우리 잘 살자.


#남은건책밖에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과 혁명>, 글 잘 쓰는 법 - 김탁환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