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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an 21. 2024

<폐후의 귀환>, <여장성> 마라맛 중국 언정소설

존경하는 R쌤 추천으로 봤다는 애기부터 하자. #페후의_귀환. 예사롭지 않은 제목부터 표지까지. 막장 오브 막장, 마라맛 중국 웹소설이다. 추천자의 권위를 빌려 부끄러움을 조금 덜어본다. 쌤은 이런 종류의 언정소설 오조오억개..원조라고 추천했다. 言情小说, 말로 사랑을? 로맨스 소설을 뜻한다는데, 과연.

황자에게 반해서 억지로 결혼한 명문가의 딸 심묘. 결국 이용만 당한 그는 집안 말아먹고 아들딸 본인까지 궁중암투에 밀려 죽는다. 소설은 이런 '폐후'가 십대 소녀로 환생해서 두번째 삶을 온통 핏빛 복수로 채운 얘기다. 잔혹한 복수극이란 표현이 부족하다.


황실도 명문가도 일단 첩을 두는 풍조가 비극의 씨앗이다. 적자의 정통성을 질시하는 서자들은 끊임없는 모략과 음모로 권세를 탐하다가 끝내 처참하게 죽는다. 근데, 이게 바로 인류 역사 아니던가? 고대 그리스 비극이 막장의 원조라면 중국인들. 셰익스피어부터 온갖 문학 역시 뼈대는 비정한 암투다. 그놈의 서자 울분도 지겹고, 피의 정통성을 부르짖는 쪽도 답답하지만 그렇게 수천년을 살아왔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내 요즘 화두인데 화무십일홍 권력을 탐해서 알량한 권력의 한 조각을 누리면 좋은가? 내 새끼에게 부귀영화를 물려주면 남을 해치고 세상이 망해도 상관 없나? 민생 안정을 위해 애쓰는 군자도 일단 전쟁부터 이겨야 한다. 수많은 이들만 덧없이 희생되고, 새 권력자들은 또 암투를 이어간다. 복수를 해서 얻는 건 또 뭐란 말인가.


여주인공 심묘의 기기묘묘한 책략이 끝내준다. 남주 사경행에 대한 묘사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이게 언정소설이구나, 오글거리는 표현 만으로 저 사내를 상상하게 만드는구나 감탄했다. 무튼 언정소설은 웹소설에 빠진 내게도 심각한 수위의 뽕. 클스마스에 추천받았는데 한달 내 완독해버렸다. 카카오페이지에 지른 캐시 플렉스...


그리고 역시 R쌤이 추천한 같은 작가의 #여장성. 이건 네이버에 쿠키를 상납했다. 사촌을 대신해 남자의 삶을 살다가 전장에서 장군이 되어버린 용맹한 여주인공 화안은, 사촌에게 그 명예를 내어준뒤 결혼당하고 암살당한다. 하지만 하늘도 슬퍼할 억울한 사연 덕분인지, 다른 소녀로 태어나 다시 한번 남장하고 전장의 병사, 무장이 되면서 복수하는 얘기.

한번도 보지 못했던 중국 소설을 둘이나 같이 봤는데, 표현도 번역도 고전적이거나 어색한 건 어쩔 수 없고. 삼국지 서유기의 대륙 답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재주가 끝내준다. 다 알면서 계속 끌려간다. 천산다객 작가님, 한국팬도 넘어갔습니다...


여자들에게는 조신한 아내가 되는 것 외에는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던 시절. 집안의 음모로 남장여인으로 살게 됐지만, 주인공 화안은 다른 세상에 눈을 떠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다른 여자들도 저처럼 양주위의 눈, 제양성의 물, 사막의 커다란 달, 광활한 산천과 바다를 본다면, 그러고도 여전히 기꺼이 후원에 갇혀 부군의 총애나 다투고 자기 상황에 만족하며 멍청하고 무감각하게 살려 할까요?”


제가 보기에 이 세상 남자들은 바로 이점을 염려하여 수많은 황당한 규율들로 여자를 속박하고, 삼강오륜으로 여자의 날개를 꺾고,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현명하고 아름다운 아내’ 등의 말로 여자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멍청할수록 남자들은 안심할 수 있겠지요. 분명 자기들이 그리 만들어놓고 도리어 ‘역시 여자들은 식견이 얕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들도 아는 것입니다. 여자들에게 ‘선택’의 기회가 생기면 절대 후원에서 손을 뻗으며 부군이 와 먹여 주고 길러 주기를 기다리는 꽃병이 되려 하지 않을 것을요. 우수한 여자들은 장령, 협객, 문사(文士), 막료(幕僚)가 되어 남자들과 함께 자신을 뽐내기 위해 경쟁할 것이고 남자들이 이기리라는 보장은 없지요.”


여주인공 화안이 워낙 당당하고 귀엽고 재치있고 뻔뻔하고 능력 만렙이라 보는 즐거움이 쏠쏠한데.. 남주가 미쳤다. 저런 시절에 문무겸비, 여주 한정 관대하고 다정한데 다른 모든 이에게 냉정하고 싸가지 없는 능력자라니. 이들의 사랑이 무르익는 과정이 재미있으니 역시 언정소설. 표현은 이런 식이다.


"달빛은 은 같고 별빛은 비처럼 쏟아지는 밤, 붉은 촛농 녹아내리는 곳곳에 봄바람이 깃들었다."


15세, 아니 12세 관람가 느낌이라 언정소설인건가? 오조오억개 다른 걸 보게 될지 여부는 모르겠다. 일단 R쌤에게 보고한 뒤 다른 추천작을 받아보고...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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