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 슬로우뉴스로도 발행
브런치 본진용>
아무리 옷을 사도, 입을 옷은 없다. 입는 옷은 맨날 거기서 거기다. 우리는 왜 옷을 살까?
패션 감각 좋은 젊은 여성이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당돌한 주장을 담아 책을 냈다. 한때 별 생각 없이 틈날 때 마다 옷을 사던 이다. 신나게 쇼핑을 즐기다가, 맘에 드는 패딩이 1.5달러란 것을 발견했다. 싸도 너무 싼 옷에 문득 질린 순간이다. 이래도 괜찮을까? 찬찬히, 꼼꼼히 추적했다. 과소비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쓰레기 문제, 환경오염, 글로벌 공급망의 노동 초착취로 굴러가는 패션 산업에 눈 감아주던 시절이여, 안녕.
패스트 패션. 빨리빨리 디자인 기획하고(베끼고) 생산해서 내놓는 옷들이 너무 많이 팔린다. 자라, H&M, 유니클로, 다 그런 종류다. 전 세계에서 매일 최소 2억 벌의 새 옷이 나온단다. 2000년 이후 옷 생산량이 2배 이상 늘었다. 패스트 패션보다 더 빠른 ‘울트라 패스트 패션’도 등장했는데, 자라가 일주일에 두 번 신제품을 내놓을 때 영국 아소스(ASos)는 매주 4500개 신제품을 선보인다. 중국 쉬인(Shein)은 2021년 하반기에만 1만 개 디자인을 새로 내놓았다. 한국에서도 패스트 패션 시장은 2007년 3000억 원에서 2017년 약 3조2000억 원으로 10배 이상 커졌다.
시장이 커지면, 경제에 좋은 건가? 화려한 물량 공세에 가려진 팩트는 이렇다.
“세계 물 소비량의 20%가 옷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매년 의류 제조에 물 93조 리터가 쓰이는데, 이는 무려 500만 명이 생존에 쓸 수 있는 양이다…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 물이 약 7000리터, 티셔츠 한 장을 만드는 데는 약 2700리터가 필요하다…지구 전역에서 배출되는 탄소의 약 10%가 패션 분야에서 나온다.”
아토피에 시달리는 나는 면 제품을 선호하는데, 전 세계 농약 사용량의 10%, 살충제 25%가 목화 재배에 쓰인다. 식용이 아니라고 저렇게 뿌려대다니. 옷에 가려진 비용은 더 있다. 자꾸 살수록 자꾸 버린다. 옷 쓰레기가 충격적이다. 국내 섬유폐기물은 2018년 451만 톤인데 8년 만에 약 4배 증가했다.
헌옷수거함에 넣었으니 재활용될 것이라는 오해는 기만에 가깝다. 옷 쓰레기 중 5% 정도는 빈티지 옷으로 다시 팔리지만, 나머지는 인도, 캄보디아, 칠레, 케냐 등으로 넘어가 대부분 쓰레기 산으로 쌓인다. 그 장면만 봐도 우울해지는데, 석유를 원료로 하는 합성섬유는 미세 플라스틱을 남기게 마련이라 돌고 돌아 우리에게 다 되돌아온다.
“나를 위한 보상심리 같아요. 고생하는 내게 주는 선물이죠. 진짜 마음에 들고 필요해서 사는 건 일 년에 한두 번 정도여요.”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나면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요. 지쳐서 누운 채로 인터넷 쇼핑을 하죠.”
책을 함께 읽은 독서클럽 회원들의 말이다. 온갖 세일, 한정판, 어느 모델의 그 제품 등 소비욕구를 자극하는 광고 홍수 속에 자연스럽게 쇼핑한다. 그런데 잘 샀다는 뿌듯함은 오래 가지 못하고 헛헛함만 남는다. 스스로 현명한 소비가 아니라고들 했다.
저자는 ‘다시입다연구소’ 조사를 인용, 사람들은 옷장의 옷 중 20%를 더이상 입지 않는다고 했다. 와아.. 살 빼면 입겠다고 옛날 옷을 쌓아둔 나는 저 통계보다 훨씬 많은 옷을 입지 않고 보관 중이다. 한 분이 말했다. 날씬했을 때 옷을 언젠가 다시 입거나, 딸에게 물려주겠노라 스스로 합리화하고 있다고. 안 입는 옷들을 그대로 두고, 우리는 계속 옷을 산다.
저자도 인정한다. 쇼핑을 멈추는 건 생각보다 큰일이라고. “기분이 안 좋을 땐 뭐라도 사라고, 기분이 좋으면 그에 맞게 쇼핑을 하라고, 그게 네가 존재하는 방식이자 이유라고 온 세상이 외치고 있다”고 했다. 쇼핑의 자유가 자유 맞나? 저자는 그게 착각이라고 지적했다. 인정욕구이자 타인의 시선에 따라가는 욕구다. 쇼핑이라는 철창 안의 자유다.
“우리는 친구와 잘 어울리고 싶어서,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내가 주인공이 되고 싶어서 여러 방법을 고민하다가 그중 하나로 옷을 주문한다. 누군가는 적당히 남들 눈에 띄고 싶지 않아 옷을 샀고, 누군가는 남들보다 눈에 띄고 주목받고 싶어서 옷을 샀다.
그런데 당초 우리가 해소하고자 한 욕구는 어떻게 됐을까? 우리는 쇼핑을 통해 혼자 있는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났는가? 스스로 당당할 수 있는가? 옷이 정말로 우리의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해주는가? 오히려 기존에 옷을 구매하고자 한 본래의 이유 따윈 잊어버린 채 옷을 사는 자체에 집착하게 되진 않았는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무척 신경 써서 입었다는 것을 얼마나 알아줄까? 저자는 “무슨 가방을 들고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지 않아도 우리는 괜찮다, 사람들은 당신의 반짝이는 눈과 생글거린 입매를 기억한다”고 쓰자마자 바로 거짓말이라고 토로했다. “사실 다른 사람들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크게 관심이 없다”고. 사람들은 타인이 자신을 신경 쓸 확률을 과대평가한다고.
남들 눈을 신경 쓰는 건 명품에 대한 욕구로 이어진다. 저자는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 조사를 인용, 한국은 1인당 명품 소비 1위 국가라고 지적했다. 2022년 한국 명품시장 규모는 전년보다 24% 성장해 168억 달러(약 21조 원)에 달했다. 사치품(럭셔리)을 ‘명품’으로 그럴듯하게 작명한 탓일까? 사치품에 관심 없는 에코백 애용자로서 나는 줄 서서 그 비싼 것들을 사는 마음을 모르겠다. 섣부른 해석도 하지 않겠다.
2013년 방글라데시 라나 플라자 의류공장이 무너져 1134명이 숨졌다. H&M, 베네통, 망고, 월마트 등이 그 공장에서 옷을 만들고 있었다. 사실 아르마니, 랄프로렌, 마이클코어스 같은 브랜드도 방글라데시에 공장을 두고 있다. 하루 일당이 24센트에 불과한 게 방글라데시의 경쟁력이었다. 360만 명이 옷 만드는 일에 종사하고 수출의 77%를 담당한다. 중국에 이어 전 세계 2위의 의류 생산국이다. 방글라데시 공장은 약 3500여 개로 H&M, CAP 등에 제품을 공급한다.
그동안 방글라데시 최저임금은 노동자들의 목숨 건 투쟁으로 월 12500타카(약 15만 원) 수준까지 인상된 상태. 노동자들은 2만 타카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한때 한국 여자들이 그 역할을 해냈다. 청계천에서 옷 만들던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바꿔 달라고 전태일 열사가 분신했다. 개발도상국, 저개발국의 노동자들이 차례로 노동착취를 감내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저자는 의류 산업의 구조에 반론을 제기했다. 자라 설립자 아만시오 오르테가, H&M 회장 스테판 페르손이 2012년 기준 세계 5위, 8위 부자라고 했다. 포브스의 2024년 억만장자 순위를 보면 아만시오 오르테가는 12위로 떨어졌으나 재산은 773억 달러(약 103조 원)로 12년 조사 당시보다 2배로 늘었다. 현재 세계 1위 부자는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다. 사치품 왕좌에 앉은 그의 재산은 2210억 달러(약 282조 원)에 달한다.
옷을 만드는 이들은 가장 밑바닥에서 비참한 노동을 감수하는데, 옷을 파는 이들 클래스가 이 정도라면 게임의 규칙 자체가 이상한 것 아닌가? 옷 덜 산다고 경제 망한다는 걱정은 우리 몫이 아니다. 제3세계 노동자를 싼값에 부리면서 쓰레기는 다 떠넘기는 비즈니스가 지속가능하면 그게 더 문제다.
의류업체들도 이미지를 먹고 사는데, 이런 불평등, 옷으로 인한 지구 파괴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친환경, 지속가능한 패션에 대한 마케팅도 늘어났다. 그러나 속임수다. 저자는 변화하는 시장재단(Changing Markets Foundaton) 조사를 인용, 친환경 표방 패션 브랜드 대부분이 ‘그린워싱’, 친환경으로 위장했을 뿐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얼마나 더 깐깐해져야 하는가?
개인적으로 나는 이미 옷을 사지 않는 쪽이다. 지구에 나로 인한 쓰레기를 늘리기 싫어져서 물건 자체를 덜 사려고 하는 편이다. 파타고니아 책을 읽고 간만 물욕 솟구쳤지만 그 기업 철학에 맞춰 당근에서 중고를 구했다. 파타고니아 정도면 그린워싱은 아니지 않을까, 일단 믿고 있다.
옷을 덜 사고 말고는 각자 판단이다. 다만 파타고니아 같은 기업을 응원하는 동시에 나쁜 기업에 대해서는 나쁘다고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토론 당시 나이키 사례를 꺼냈다. 나이키는 아동 착취 기업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실제 애썼다. 1996년 ‘라이프’지 기사와 사진이 큰 반향을 일으켰고, 나이키 설립자 필 나이트는 1998년 노예 임금, 초과 근무, 학대 등을 인정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 의지를 천명했다.
“미국 놀이터에서 모든 아이들의 목표는 득점입니다. 시간당 6센트를 받고 축구공을 꿰매는 파키스탄 아이들의 목표는 생존입니다.”
시드니 H. 샨버그, ‘시간당 6센트’ 중에서
사실 이 문제는 1992년부터 불거졌는데, 버티고 버티다 항복한 뒤 환골탈태에 가깝게 애쓴 나이키를 보면, 소비자는 좀 더 끈질기고 독하게 예민해져야 한다. 수익을 최우선한답시고 국경 너머 환경오염이든 노동착취든 신경 안 쓰는 기업들에게는 강력한 정부 규제가 필요하고, 방향을 바꾸는 건 소비자의 의지다.
저자는 홀로 옷을 사지 않는 외로운 소비자가 되는 대신,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책을 썼다. 기특하지 않은가? 패션 산업의 실체를 탐색하며 옷을 사지 않기로 결심하는 과정을 보여준 덕분에 설득력 있다. 옷을 사지 않아도 잘 입는 방법은 책 앞 부분의 저자 사진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방법이 있다. 연대하는 것을 주저할 수 없었다. 옷을 사지 않는 건 원래 하던 대로 계속하고, 응원의 마음으로 리뷰라도 남긴다.
책은 #트레바리 #기막힌논픽션 클럽에서 2024년 1월에 함께 읽었다. 나의 발제다.
1) 나를 돌아보는 질문들
책 보고 찔렸나요? 혹은 당신도 미니멀리스트? 옷장 속 안 입는 옷은 얼마나 돼요?
옷을 사도 입을 옷은 늘 없죠. 뭐가 문제일까요?
당신이 합리적 소비자라고 생각하나요? 대체 ‘합리적’ 소비자가 뭔가요?
저자의 문제의식, 생각해 본 적 있어요? 어디에 가장 공감하게 되나요? (쓰레기, 오염, 자원낭비, 노동착취..)
2)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옷을 안 사면 경제가 망한다? 소비 경제는 지속가능할까요? 제3세계로 문제를 떠넘긴 건 괜찮아요?
가족이나 친구들과 옷 얘기해 볼 생각이 들어요? 연대가 가능할까요?
사치품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요? 한국이 유독 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을 신경 쓰지 않고, 유행에 연연하지 않고 싶어요? 가능할까요?
옷을 사지 않겠다는 마음은 어디로 연결될까요? 우리는 어디까지 착해져야 해요? 그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