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삶을 이야기로 만들긴 쉽죠.
하지만 그보다 어려운 건
실제 기억을 견디는 거예요"
낸 골딘(Nan Goldin), 당대의 난년이다. 불편한 리얼리티를 적나라하게 담아, 사진 예술의 힘을 보여줬고, 최근 몇년 그는 또다른 전설이 됐다.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변화를 만들었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제목부터 쨍한데, 다큐 감독이 로라 포이트러스(Laura Poitras)다. 그의 전작 <시티즌포>도 당대의 저항가 스노든, 시민의 반란 이야기 아니었던가. 믿고 봐야지. 게다가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이다. 다큐가 이 상 받는게 두번째라고? 그런 것 치고는 개봉관 참 없다.
다큐는 낸이 주도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시위로 시작한다. 예술계의 큰손 후원자 새클러(Sackler)를 저격한 시위다. 전세계 온갖 박물관에 새클러관, 새클러센터를 둔 우아한 골리앗 새클러 가문은 제약회사 퍼듀 소유주다. 퍼듀가 만든 옥시콘틴이라는 오피오이드 계열 마약성 진통제로 떼돈을 벌었다. 훗날 일가가 빼돌린 것으로 확인된 회사 자산만 100억 달러(약 14조원)를 웃돌았다. 그 오피오이드로 2009~2019년에만 5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낸은 수술 후 진통제로 옥시콘틴을 복용했는데, 하루 3알에서 순식간에 하루 18알을 삼키게 됐고, 중독됐다가 죽다 살았다. 그녀가 이끈 P.A.I.N.(Prescription Addiction Intervention Now)은 본인이 지옥에서 돌아왔거나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이들이 주축이다.
이들의 시위는 예술적 상상력과 과감한 기획의 결정체. 비장하고 슬픈데 아름답기까지 하다. 구겐하임, 루브르까지 달려가 새클러의 이름을 내리도록 요구했는데...
다큐는 낸의 지난날도 교차 편집한다. 언니의 자살은 가족의 모순이 결합된 사회적 살인.. 일찌감치 독립해 가장 밑바닥 노동까지 경험한 낸에게 사진은 무기였다. 그 시절 터부시되던 모든게 그녀의 전선이 됐다. 약물중독과 거친 폭력을 비롯해 성소수자 친구들과 자신을 거침없이 포착했다. 감독이 인용한 낸의 작업들은 날 것의 비명을 담고 있다. 그녀가 대담한 작업들을 통해 사회적 억압에서 스스로 해방됐다면, 그건 매순간 처절한 투쟁 덕분이다.
낸의 삶을 보면, 개인의 고통은 지독하게 사회적이다. AIDS는 이제 관리만 잘하면 생존하는 질병이지만, 1980년대 미국 정부는 동성애에 대한 혐오로 방치했다. 오피오이드로 인한 죽음도, 성소수자 정체성으로 정신병자 취급받던 언니의 죽음도, 제대로 지원받지 못한채 AIDS로 죽어간 낸의 친구들과 당대 예술가들도 사실 모두 지킬 수 있었다. 정부와 사회가 지켜야 했다.
이야기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결말은 현실이라 더 짜릿하다. 고상한 척 나댔던 자본가가 얼마나 저열하게 굴었는지 투명하기도 하지. 너무 많은 이들이 희생된 시절. 우리가 다만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갔다면 모두 투쟁 덕이다. 성패와 상관 없이 계속하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
너무 적은 관객 수에 아쉬워서, 바이럴에 곰손이라도 보태는 마음에 리뷰를 남긴다.
“dedicated to all the girls of another side”
어찌 거들지 않을 수 있을까. #낸골딘_모든_아름다움과_유혈사태 #마냐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