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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un 09. 2024

<존 오브 인터레스트> 생각을 하고 살자.


그림 같다. 빛나는 강물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쉬는 가족들. 고급 자동차로 달리는 우거진 숲길. 단란한 이 가족은 여유롭고 평온하다. 온실에 수영장까지 갖춘 정원은 공원급이고, 집안일을 도우는 하인급 사람이 좀 많은, 기이하게 멋진 저택의 풍경. 낙원이 따로 없다. 담너머 굴뚝에서는 연기가 멈추지 않는다. 유대인을 소각하는 아우슈비츠다.


#존오브인터레스트. 아우슈비츠 인근 40km 지역을 뜻한다.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 중령의 가족들이 사는 낙원이다. 악은 평범하다? 평범하면 악해도 되나? 회스의 아내 헤트비히(산드라 휠러)는 누군가의 모피코트를 챙기면서 주머니속 립스틱도 무심하게 발라본다. 출처가 분명한 고급품들 사연을 모를리 없다. 낙원 플렉스에 취해 생각이란 걸 안할 뿐이다.


정성으로 정원을 가꾸고, 사랑으로 아이를 돌보면서 다른 생각은 하지 않는 삶. 딸 잘사는 모습에 흐뭇했던 친정 엄마가 하룻밤만에 깨닫는 것을 보지 않고 듣지 않는다. 인사이동을 고민할 뿐, 더 빠르게, 더 많이 사람을 죽이고 치우는 건 성과라고 생각한 이가 수용소 책임자였다.

영화에서 수용소의 유대인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울음소리, 총소리, 기괴한 소음으로 낙원의 담장 너머 지옥도를 귀로 인식하게 한다. 음악조차 불편하다. 카메라는 아름다운 꽃들의 시커먼 속으로 향한다. 구체적 폭력 대신 짐작만 남긴다. 아름다운 평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소름이다.


일상이 귀한 이들이 남의 인생은 잘도 짓밟는다. 이것은 히틀러 시대의 이야기이자 21세기 풍경이다. 실화를 미치도록 정확하게 구현했다. (가족사진도 남은) 회스 가족들의 이야기는 검색하면 다 나온다. 집단학살 피해자 유대인들은 이제 담너머 다른 이들의 비명에 무심하다. 살기 바쁘다고 세상에 눈감으면 유죄라고, 감독의 외침이 느껴진다. 강추강추강추.


영화 <추락의 해부>에서 인상적이던 산드라 휠러, 사실 이 영화로 이름을 먼저 들었던 배우다. 가족 풍경을 더 완벽하게 만들며 영화에 나온 개가 진짜 그녀의 개라고.


#인간의_정의는_어떻게_탄생했는가. 당시 상황을 추리소설 마냥 그려낸 책과 이 영화는 닿아있다. 유대인들은 기차 플랫폼에서 옷을 벗고 머리를 밀었다. 그 머리카락으로 매트리스를 만들었고, 이 책 저자 할머니는.. "말케의 삶은 열차에서 내린 뒤 15분 만에 끝이 났다"는 말로 정말 끝났다. 새삼 그 책 리뷰를 찾아봤다. 한동안 서점에서 잘 팔았는데 최근 절판됐으니, 남은건 리뷰 뿐인가.


영화는 말미에 관객을 현실로 소환하는데, 잠시 숨멎. 생각을 하고 살자. 영화에서 유일하게 '진짜 인간' 같은 소녀도 생각을 했으니 그랬겠지. #마냐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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