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장 고성의 아침을 놓치지 마시길.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실사 영화 느낌이다. 우리 숙소(Saturday hotel)가 남쪽이라 부근만 산책했는데 번화가는 담에 가보기로.
다들 아침은 사먹는 나라. 저렴하고 맛있다. 남문 입구 부근 식당에서 오랜만에 피단죽. 버섯죽 풍미 못지 않다. 빠오즈(만두)도 괜찮고, 채소볶음은 끼니 때마다 모두의 최애로 등극했다.
리장에서 2시간 차로 이동한 곳은 호도협(虎跳峽). 5596m 옥룡설산과 5536m 하바설산의 깍아지른 산줄기 가운데 깊은 계곡이 있다. 강물이 해발 1800m 인데 이 부근 옥룡설산이 4900m 정도라고 하니.. 3km 이상 아찔한 골짜기다 호도협은 이름 그대로 호랑이가 강을 건넌 협곡. 옛날옛적 하바설산에서 사냥꾼에 쫓기던 호랑이가 강 중간 바위를 딛고 건너편 옥룡설산으로 건너갔다는 전설이 있다. 중국인 관광객이 너어어무 많고, 스피커로 울리는 안내 소리가 너어어무 커서 신경이 곤두설 무렵. 에스컬레이터로 한참 내려간 곳에서 쿠르릉 물소리에 모든게 묻혔다. 물줄기가 거 칠게 부딪치고 휘몰아치는 힘이 아찔하다. 겨울에는 파란 물빛이 예쁜 대신 수량이 적고, 여름에는 황토빛 물줄기가 포악하게 삼킬듯 덤벼든다.
여기서 20분 정도 차로 이동하면 중도객잔이다. Halfway 객잔으로 서양인들에게 먼저 유명해진 곳으로 하바설산 중턱에 있다. 와. 무협지에서나 보던 객잔에! 우리는 끼니때마다 매번 더 감탄 감동하는 중인데 객잔의 점심도 역시 기대 이상 훌륭했다. 토마토계란볶음은 왜 한국과 맛이 다를까. 입에서 녹는다. 채소와 버섯, 고기 볶음의 변주인데 여섯 명이 여섯 큰 접시 싹싹 비웠다.
중도객잔 옥상의 타이거벅스 커피를 마시며 테라스에서 감상하는 풍경이 또 예술이었는데..이날 오전 호도협의 감동은 중도객잔에서 흐릿해졌고, 이 감동은 오후 관음폭포와 차마고도를 걸으면서 또 묻혔는데…
(그나저나 중도객잔 탁 트인 화장실도 빼놓고 가면 섭하지)
중도객잔에서 왕복 1시간반 정도 거리에 관음폭포. 차갑고 세찬 폭포 물줄기에 근심과 걱정, 죄를 씼어내리는 것도 뒷전.. 나는 이제야 무협지 주인공들이 왜 그리 자주 절벽에서 추락하는지 알았다. 산 중턱 좁은 길 한편은 내내 천길 낭떠러지다. 적들에게 쫓기다 추락하는 건 넘 당연한 코스잖아. 그 중간에 꼭 무공비급이 있는 동굴이 있어 목숨을 건진다고? 있을 법 하다. 너무 깊어서, 떨어지면 뼈도 못 추릴 절벽이 이어졌다. 그들이 경공의 고수가 되는 이유도 알겠다. 절벽을 수직으로 오르내려야 쫌 한다 할 동네다.
옥룡설산은 나시 족의 신산. 깎아지른 수직 벽에 온통 돌과 풀 뿐이라 이쪽에선 사람이 오를 수 없다. 위엄을 더하는 것은 뾰족한 산봉우리에 내려앉은 구름. 와, 이래서 우화등선하는 이야기가 탄생하는구나. 이런 비경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으면 신기할 지경이다. 재주가 있으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 도무지 표현할 길이 없다.
우리의 마지막 일정은 다시 중도객잔에서 차마객잔까지. 본격 차마고도 길을 걸었다. 예전에 나시 족 사람들은 차를 30~60kg 씩 짊어매고 짚신 신고 이 길을 걸었다. 티벳까지 가서 차를 팔고 말을 가져오는 길이다. 차마(tea horse) 객잔까지 가는 길 내내 비현실적 신선 세계에 들어온 기분이다. 까마득히 높은 산이 병풍처럼 바로 옆에 서 있는 건 낯선 풍경을 만든다. 절경인데 해상도까지 높다.
오른쪽 하바설산은 티벳 사람들의 8대 신산 중 하나란다. 산양도 키우고, 3000m 윗쪽에서는 야크도 키우는 등 사람이 사는 산이지만 곳곳이 기암절벽이다.
영국 BBC가 예전에 세계 3대 트레킹 길로 소개했다는 말에 처음엔 웃었다. 세계 3대 어쩌고 하는 건, 다 그 동네 사람들끼리 하는 소리 아닐까? 그러나 걷다보면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를 딴 세상이다. 기억 가물가물한 융프라우나 돌로미티와 또 사뭇 다르다. 옥룡설산은 히말라야 산맥의 동쪽 끝이라, 높은 산들의 능선이 신들의 영역 마냥 아스라히 이어진다. 대부분의 중국 관광객들은 호도협을 구경하면 바로 샹그릴라로 넘어가기 때문에 차마고도엔 사람이 많지 않아 호젓함까지 비현실적이다. 해발 2400 정도까지 차로 올라와서 이 길을 걸을 수 있다는게 가장 큰 장점ㅋ
나시 족 로미오와 줄리엣들은 집안의 반대로 사랑을 이루지 못하면 옥룡설산에 순정하러 갔다고 한다. 사람이 살 수도, 갈 수도 없는 산에 오르는 동반자살을 순정이라 부르다니. 그런 사랑은 젊을 때나 하는 거라고, 우리끼리 피식 웃었지만, 사랑이 뭐길래.
2시간 채 안되는 짧은 트레킹 끝에 차마객잔이다. 저녁은 한국식 오골계 백숙에 중국식 고기버섯볶음. 옥수수로 만 든 바이주를 곁들여 다들 행복했다. 하지만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일몰. 테라스에서 옥룡설산을 바라보며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데 갑자기 산 정상 부분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해 주홍빛으로 타올랐다. 기묘한 각도로 지는 해가 만들어낸 판타지. 우리가 대체 어디에 온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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