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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May 07. 2016

<변월룡전> 듣도보도 못한 당대의 거장

남북한 모두 외면한 러시아의 고려인 화가

20세기 한국 현대미술사의 사각지대에 이처럼 훌륭한 화가가 있었다는 것은 정녕 기쁨이었고, 내가 변월룡이라는 화가의 존재를 몰랐다는 것은 부끄러움이었다.


기사의 저 대목에 꽂혔던 것 같다. 물론 기사 중에 나오는 그림, '판문점에서의 북한포로 송환' 그림도 인상적이었다. 1953년에 저런 그림을 그린 한국인이?

판문점에서의 북한포로 송환


저녁에 시내 나갈 일이 생겨서 조금 일찍 버스를 탔다. 덕수궁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미술관에도 많았다. 어쩐지 안심 되더라.

한줄 트윗 요약만 전하면..러시아 화가 변월룡. 뼨 봘롄(왈롄). 기대 이상 좋았다. 잃어버린 퍼즐 같다. 한반도의 한 시대와 사람들이 암흑이라..


러시아어 B는 영어 F처럼 윗 이빨로 아랫 입술을 긁는다. 붸.. 혹은 웨..에 가까운 발음. 뼨 왈롄 이라는 이름을 지켰던 고려인. 당대의 화가. 1916년 연해주에서 태어나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공부했다. (개인적으로 미술관의 매혹에 흠뻑 빠졌던 첫 경험이 상트페테르부르그의 에르미타쥐 박물관.. 저 도시가 그리 간단한 곳이 아니다. 러시아란 나라가 문학, 음악 뿐 아니라 미술에도 깊이가 어마어마하지..)


독설 고재열기자의 이 기사는 2012년. 눈 밝으셨네ㅎ

북한은 그의 발걸음을 거부했고 남한은 그의 그림을 거부했다. 그는 죽어서도 경계인이었다.

이 대목에서 다시 그를 보게 된다...


무튼, 고맙게도 촬영을 막지 않아서.. 내 멋대로 몇 컷.

그는 에칭.. 동판화를 꽤 많이 남겼는데.. 그 선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6.25 전쟁의 비극 (1962)


조선분단의 비극(1962)


조선의 모내기를 그린 그림인데.. 그림 오른 편에 보면..  각 인물들을 각각 미리 그려본 습작들. 이 대가는 습작도 엄청 남겼다. 연습하고 연습하고...


초상화도 많이 남기셔서.. 총 4개의 전시실 중 두번째 전시실은 초상화. 미대 동료들, 문인들..발레리나, 안무가, 의사, 원로들.. 당대의 인물들을 담았다. 한 사람 한 사람, 사실 그 우주를 담는게 초상화. 그리는 사람과 모델의 관계와 사연이 더욱 상상력을 부추기는 그런 그림들. 그 와중에 이 분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갈리나 쏘끄또브... 라는 한글 서명이 눈길에 가서 봤고.. 아 그런데...


이 그림 오른쪽 아래에는 '어머니'라고 한글로 남겼다. 1985년 작품. 늙은 러시아 화가는 조선옷을 입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역시 나이 든 어머니의 얼굴을 그린걸까. 그림도, '어머니'라는 단정한 글도 오래 눈길을 붙든다.


평양 재건 (1953)

화가는 러시아의 전문가로서, 북한의 미술교육을 지원하는 임무를 띠고 북에 들어간다. 1년 남짓 북한 생활이었을텐데.. 그는 적지 않은 북한 그림을 그 이후에도 오래 그렸다. 북한은 영구귀화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그를 두 번 다시 받아들이지 않았고. 한국과 소련의 수교는 그가 눈을 감을 무렵에야 성사됐으니.. 그가 본 고향은 북녘의 산하. 그 짧은 시간을 그리 오래 기억하다니.

개성 선죽교


압록강변 (1954)
대동강변의 여인들 (1954)


이 분은 김용준이라는 분. 내가 알 리가 없는 분. 설명을 보니.. 경상북도 출신 화가, 미술평론가. 1946년에 서울대 회화과 교수가 됐던 대단한 분. 전쟁 이후 월북했다. 평양미술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이 분이 변월룡 선생에게 보낸 편지도 전시되어 있다. 교과서에서나 봤을 월북 지식인. 별로 관심도 없었는데..갑자기 나의 무심함이 부끄럽기도 하고. 잊어버리라 하고, 지워버렸을 이들에 대해 미안하고.


심지어 최승희에 대해서도... 앗, 그 분도 월북자였나? 새삼 놀라고 (이건 나의 무식함..탓)

아이들을 가르치는 최승희, 무대 의상의 최승희... 어후.. 그 시절에.


평양의 아츰

아침도 아니고 아츰..  에칭화. 저 시절의 북한 아이.

나홋카의 초등1년생들

이것은 러시아의 아이들. 이러나 저러나 그냥 아이들.


스톡홀름을 그린 건데..(그러니까, 그는 프라하, 스톡홀름 등을 그렸던 그냥 코스모폴리탄)

그냥 종이에 마커펜으로 그렸다고.... ;;;


상트페테르부르그의 넵프스키 거리..... 에칭화 라는 걸 재발견하는 기분...


변월룡 선생은 그 시절 소비에트 공화국이 요구한대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담아 작품 활동을 했다. 그러나 예술가란 '가이드라인' 대로만 그리지는 않는 법. 그 시대가 별로 좋아하지 않던 풍경화를 비롯해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인민 계몽을 위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데..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그저 좋은 그림에 감탄하고.. 어떻게 이렇게 까맣게 모를 수 있었을까.. 한반도 남북한 사람들은 정말 절반의 진실 밖에 본 적 없는 건가.. 남북한에게 환영받지 못했던 경계인, 남북한 사람들 모두 닮은 '한'을 지닐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이제는 그조차 희미해진 '한'. 내 아이들은 이런 느낌을 모르지 않을까 했는데.. 아마 엄마처럼 나중에.. '배운 적 없고, 들은 적 없는' 역사와 사람들에게 놀랄지도 모르겠다. 뒤늦게라도 변월룡 선생 그림을 봐서 다행이다.  


전시가 8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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